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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사랑하는 청소년 역사모임' 회원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은 2009년 8월 25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인종차별 조장하는 언론과 기업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평화를 사랑하는 청소년 역사모임' 회원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은 2009년 8월 25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인종차별 조장하는 언론과 기업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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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어떤 색일까?

백의민족답게 '흰색'일까? 아니면 월드컵 4강 신화의 '붉은색'일까? 옛적에는 '흰색'을 좋아했다면 요즘은 '붉은색'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선호하는 색은 '살색'이 아닐까?

김민하(19·성남외국어고 3학년) 등 '평화를 사랑하는 청소년 모임'(평사모) 회원 5명이 25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시킨 이유는 바로 '살색' 때문이다. 이들은 프레스센터 앞에서 살색을 남발하는 언론과 남용하는 기업에 대해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평사모 회원들은 진정서에서 "100만 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살아가는 다문화사회로 바뀌었음에도 뿌리 깊은 인종차별 의식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런 배경에는 언론사의 인종차별 조장, 기업체들의 인종차별 표기 남발, 정부당국의 관리감독 소홀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인종차별과 인권침해가 없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인권위는 2002년 8월 1일 '살색' 표기는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면서 기술표준원에 한국산업규격(KS)을 개정하도록 권고했고, 기술표준원은 2005년 5월 17일 '살구색'으로 개정 고시하면서 '살색' 표기는 공식적으론 사라졌다. 하지만 언론과 기업은 물론 국민 의식에 뿌리박힌 '살색'이 여전하자 평사모 회원들이 인권위에 진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평사모는 서울과 성남지역 고교생들로 구성된 모임으로 2007년 8월 15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정부의 사죄를 촉구하기 위해 도쿄 우에노 공원 등지에서 항의시위를 한 바 있다.

매니큐어, 속옷, 포르노, 키스신... 말초적인 살색 저널리즘

평사모 회원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살색'을 표기한 여성 속옷 제품들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평사모 회원들과 외국인노동자들이 '살색'을 표기한 여성 속옷 제품들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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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 조철봉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여자의 종아리를 보았다. 그 순간 조철봉은 숨을 삼켰다."(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 1506회 중)

"유해 판단의 기초는 살색이다. 이를테면 가슴에 살색비율이 70%를 넘으면 일단 걸린다. 최근에는 이를 의식한 듯 옷을 입고 성교하는 장면도 많아졌다."(조선일보, '하루 50편 포르노 봐야만 하는 남자' 2005년 8월 31일)

"[뉴스 in 뉴스] 거무튀튀 남자들아, 살색 선크림 써 보시라"(중앙일보, 2009년 6월 26일)

"아파트에서 살색의 라텍스 옷을 입고 몸이 묶인 채 머리에 2발, 몸통에 1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으며 경찰은 변태적 성관계 도중 살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연합뉴스, 2009년 6월 16일)

'살색' 표기를 일삼은 신문 기사다. 이들은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기사를 쓸 때 '살색'을 즐겨 표기했다. 언론이 '살색'을 남발하는 배경은 '본능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대중의 인기를 끌어 이득을 얻으려는 보도 경향'(센세이셔널리즘)이며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면서 신문 시장을 장악하려는 천박한 '황색저널리즘'의 습관성이다.

결국 사회 책임 또는 언어 순화엔 관심 없는 이들 언론들은 대중들에게 피부색=살색이란 고정관념을 뿌리박도록 펌프질한다. 배타적 단일민족 의식에 사로잡힌 대중들은 덩달아 '살색'을 피부 깊이 새긴다.

비인권보도 <중앙> 압도적... <오마이뉴스> '인권보도' 으뜸

평사모 회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평사모 회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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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모 회원들은 인종차별을 확인하기 위해 '살색'을 키워드 삼아 검색했다.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의도로 쓴 기사는 '비인권보도', 인종차별 및 인권개선 의도로 쓴 기사는 '인권보도'로 나누었다. 검색기간은 인권위가 '살색' 표기에 대해 '평등권 침해' 판정을 내린 2002년 8월 1일부터 올해 8월 20일까지 7년간이다.

그 결과 <중앙>, <조선>, <동아>, <문화> 등 보수신문과 <매경>, <한경> 등 경제지의 살색 남용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살색' 남용이 가장 심한 신문사는 <중앙>이 162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다음은 <조선>이 77건, <오마이뉴스> 64건, <매경> 63건, <한경> 62건, <동아> 51건, <문화> 33건의 순으로 나타났다.

방송3사의 '비인권보도'가 낮게 나타난 것은 '뉴스'만 검색한 한계가 있다. 예능 및 오락, 드라마 등으로 확대했다면 인종차별 발언 노출은 컸을지도 모른다. <경향>, <한겨레>, <서울신문> 등 진보신문은 상대적으로 적게 보도했다. 신문사 10곳과 방송3사 등 13개 언론사 가운데 <오마이뉴스>는 '인권보도' 분야에서 가장 많이 보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매체인 <오마이뉴스>가 '비인권보도' 분야에서 세 번째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검색을 세밀히 해보니 의문은 곧 풀렸다.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살색' 표기는 보수신문들의 선정 기사와는 질적으로 달랐는데 '살색'은 주로 시민기자들의 문화 및 생활 기사에서 표기됐다. '살색'이란 단어가 우리의 삶과 의식 속에 얼마나 깊숙이 뿌리 박혔는지는 시민기자들의 표기가 드러내준 셈이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옅은 살색으로 밝게 처리하였고, 윤곽선과 눈·코·입 등은 옅은 갈색으로 그렸다."(오마이뉴스, 보령권의 문화유산답사 ② 매월당 김시습 2009년 7월 7일)
"엄마가 무슨 색깔을 좋아하나? 그래서 살색을 가져왔어."(오마이뉴스, 연지쁜지 육아일기(1) 2008년 4월 25일)

인종차별 질타하는 보수매체의 따끔한 훈계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살색'으로 검색하자 우측 상단에는 연관검색 단어로 '인종차별'과 '살색 언론'이 등장했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서 '살색'으로 검색하자 우측 상단에는 연관검색 단어로 '인종차별'과 '살색 언론'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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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색'에 대한 우리의 너무나 독선적인 상식이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럽기조차 하다. '살색' 때문에 그들이 겪고 있는 한 맺힌 사연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문화일보, 시론 '어떤 색이 살색인가', 2001년 12월 5일)

"외국인노동자를 인종 없는 인종주의의 제물로 만든 것은 한국사회의 단일민족 의식, 강고한 국가주의, 천민적 경제 지상주의, 그리고 위계서열의 가치관이 공모한 결과이다. 한국의 단일민족 의식은 인종차별주의의 요람이나 다름없다."(조선일보, 시론 '단일민족'과 인종(人種)차별 2003년 5월 19일)

"사람의 피부는 흑색·황색·백색 등 다양한데도 특정한 색깔만 '살색'이라 부르다 '살구색'으로 바꾼 게 불과 2년 전이다. 그만큼 우리는 인종차별 문제에 둔감했다. 유엔 보고서는 단일민족 신화와 닫힌 민족주의에 빠진 한국 사회를 향한 뼈아픈 충고로 받아들여야 한다."(중앙일보, '사설' 유엔도 걱정하는 '단일민족 국가' 관념 2007년8월20일)

보수신문 논조이다. 이 신문의 '사설'과 '시론'들은 '살색'에 대한 우리의 독선적 상식으로 인해 외국인노동자들이 겪는 '한 맺힌 사연'을 걱정하면서, '한국의 단일민족 의식은 인종차별주의의 요람'이라고 지적하고, '한국 사회를 향한 뼈아픈 충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매체든 진보매체든 인종차별 개선을 촉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중성이다. 한쪽 얼굴로는 도덕선생을 자처하면서 또 다른 얼굴로는 음란서생 노릇을 하기 때문에 언론의 훈계는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언론의 이중성은 왜 지속되나? '살색' 금칙어로 지정해주세요!

평사모 회원과 외국인노동자들이 국가인권위에서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평사모 회원과 외국인노동자들이 국가인권위에서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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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이중성은 왜 지속 반복되는 걸까?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편집권이 통일되지 않은 언론사 내부 구조와 인식전환을 꺼려하는 언론인들의 보수성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김 교수는 "'살구색' 표기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설을 게재하고도 다른 지면에선 '살색'을 남발하는 것은 악의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소통되지 않는 언론 내부체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회부에선 '살색'의 평등권 침해 사실에 대해 보도하지만 문화부에선 '살색'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편집의 불일치가 계속 벌어지는 원인은 소통되지 않는 언론사의 내부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한 "인종차별 표기가 계속되는 것은 '살구색'으로 개정 고시된 사실을 보도하고도 정작 언론사와 언론인들의 사고체계와 행동이 변화된 체계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며 "이런 문제는 보수언론뿐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보매체에게도 해당 된다"고 꼬집었다.

평사모 회원들의 지적도 따끔하다. 이들은 언론사에 대해 "인종차별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사들은 선생님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문제의 대상자를 지탄하면서 사회 문제로 삼기도 하지만 그럴 자격이 있느냐"면서 "이런 사건의 책임은 인종차별을 조장한 언론에 있다"고 항의했다.

이들은 언론사들에게 '살색'을 금칙어로 지정하고, 인종차별 표기를 남발하는 기자들은 인권교육을 시켜달라고 호소했다. 훈계에만 익숙한 언론사들이 원칙 있는 편집권 행사와 기자 자질 향상에 힘써달라는 청소년들의 호소를 새겨들을지 궁금하다.


태그:#살색, #인종차별, #언론, #국가인권위원회, #살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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