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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인디아나 존스'에 반해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했고, '은하철도 999'를 잊지 못해 5년이 넘는 시간동안 배낭매고 60개국을 떠돌았으니 이런 질문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수십 번 같은 질문을 받았어도 아직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인생 중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라는 반문으로 얼버무린다.

지구상에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유적유산들은 수없이 많다.

나일의 선물 피라미드,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 지중해를 자신의 호수로 만든 로마, 신들의 휴식처인 바라나시, 강력한 기마민족의 상징인 만리장성 등.

그때 그때마다 그리운 곳이 달라지지만 캄보디아의 앙코르는 항상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앙코르의 작은 사원
▲ 앙코르 멀리서 바라본 앙코르의 작은 사원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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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꼽아보자면 보존성이 탁월하다.

13세기에 사이암족(태국인)이 국경을 넘어 침공해오자 크메르족(캄보디아인)은 자신들의 수도인 앙코르를 버리고 현재의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으로 도망갔다.

하지만 호탕하게 진격하던 사이암족도 숙적인 버마가 자신들의 본토를 침공했다는 소식에 앙코르를 구경도 못하고 철군하였다.

원 주인은 프놈펜으로, 새 주인이 될 뻔 했던 사이암족은 본국으로 돌아가버리자, 앙코르는 그냥 비워진 상태로 700년의 시간동안 정글에 묻혀 원숭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하던 크메르제국은 쪼글아들어 한쪽 귀퉁이에서 연명하다 결국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19세기 중엽이 되자 프랑스의 나비연구자인 Henri Mouhot는 현지인들을 앞세우고 희귀나비를 찾아 캄보디아 정글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비를 쫓아서 였는지, 길을 잃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근처의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높은 곳에 올라 먼곳을 바라보자, 편편한 정글의 빽빽한 나무들을 뚫고 군데군데 인간이 세운듯한 탑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해서 전설의 도시 앙코르는 700년 만에 정글속에서 나와 인간과 다시 만났다.

두번째는 유적의 섬세함이다.

예술에 나의 무식과, 천년이라는 시간의 괴롭힘에도 앙코르의 곳곳에 새겨진 압사라(Apsara, 춤추는 무녀상)의 몸매와 미모는 여행에 지친 몸에도 성적인 에너지를 체울 만큼 아름답다.

비전문가인 내게 있어서 유럽은 채색의 평면도, 이집트는 간단명료, 오리엔탈은 강건한 느낌의 예술이 많았다면 이곳은 오밀조밀 섬세하며 부드럽다.

심지어 심지어 여행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음기를 가진곳으로 통하는 인도의 예술과 비교해도 더욱 여성적이다.

앙코르를 마음에 두는 이유야 수없이 많지만,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앙코르 왓(Ankor Wat)의 존재다.

크메르 제국의 수도인 '앙코르'의 사원이라는 뜻의 앙코르왓은 다른 문명의, 예를 들어 이슬람의 8대 모스크, 유럽의 4대 성당, 인도의 힌두사원, 중국의 불교사원들과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아름답다. 내가 못 가본 모슬램의 성지인 메카의 모스크가 이곳에 필적할지는 모르겠지만, '잠자던 숲속의 공주' 만한 매력은 없다고 생각된다 .

그렇기에 감히 세계 최고의 사원이라 부르고 싶다.

고대 크메르제국의 수도였던 앙코르를 들어가기 전에, 앙코르의 건물들과 특히 사원들에 대한 조금의 이해는 필요하다.

첫째로 900년 전의 앙코르도 현재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죽어 백골만 남은 시체를 보며 '저 사람은 살았을 때도 저 모습이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찮가지이다.

둘째로는 거의 모든 앙코르의 사원들은 한가지 법칙을 따른다.

사원의 구조는 한국적으로 생각해서 하나의 거대한 탑이라 생각해도 좋고, 이집트나 장군총과 같은 피라미드구조라 해도 좋다.

그리고 그 층수는 5층을 기본으로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45도 각도로 가파르게 올라가지도 않거니와 넓은 정사각형 공간 위에 좁은 정사각형을 쌓아가는 구조도 아니다. 앙코르 사원들은 일층의 높이는 지상에서 단지 몇미터 높지만, 일층 난간에서 이층 벽면까지의 거리가 몇십 미터에서 몇백 미터이다.
그러다 경사도가 점점 높아져서 4층과 5층의 높이차이는 몇십 미터에, 난간과 벽면 거리는 몇 미터에 불과할 정도로 좁아진다.

층층이 쌓여진 이집트 피라미드라 해도 좋고, 탑이라해도 좋을 앙코르의 사원들은 앙코르 왓을 필두로 해서 모든 사원에서 보여지는 일관된 특징이다.

새벽에 어슴프래이 보이는 앙코르왓
▲ 해뜨는 앙크르왓 새벽에 어슴프래이 보이는 앙코르왓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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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왓은 크메르 제국의 전성기인 12세기 초에 수리야바르만 2세(Suriyavarman 2)에서 의해 세워져서 그의 장례식에 사용되었다.

명목상으로는 비쉬누(인도의 3대 주신 중의 하나)를 모시고 있지만, 앙코르제국의 왕은 비쉬누의 화신으로 생각했기에 왕을 위한 사원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일단 이곳은 크메르인이 생각하던 세계를 이곳 건설의 기본 개념으로 삼았다.

가로세로 1.5, 1.3 km의 거대한 직사각형의 사원은 육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너비 300미터의 인공호수는 바다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육지의 중심이자 가장 높은 곳에는 신들이 산다는 수미산으로서 본당이 자리한다.

앙코르왓의 시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 호수를 건너기 전의 대문이다.

이곳에서 긴 몸통으로 호수에 다리를 만들어 순례자를 안내하는 나가(Naga, 코브라신으로 힌두교와 불교와 많은 관련을 가진)의 머리부분을 볼 수 있다.
앙코르왓을 둘러싼 호수와 다리도 앙코르왓의 일부이니 만큼 1층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1층에 위치한 나가의 다리가 끝나면 2층 난간에 세워진 3.6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테라스식 복도와 대문을 만난다.

이 테라스식 복도에는 지루할 만큼 많은 벽화와 몇몇의 석상이 자리하고 있었겠지만, 세월의 흐름속에 벽화는 유실되었다.
따라서 거의 4킬로미터나 되는 이 복도를 따라 2층을 둘러보는 여행자는 몇주씩 앙코르에만 머물며 즐기는 장기 여행자들이 대부분이다.

1층 호수를 거너는 다리위에서 2층 입구와 그들을 연결하는 복도를 찍었다. 다리의 난간은 코브라신인 나가의 몸통이며 난간너머 호수가 보인다.
▲ 앙코르 다리 1층 호수를 거너는 다리위에서 2층 입구와 그들을 연결하는 복도를 찍었다. 다리의 난간은 코브라신인 나가의 몸통이며 난간너머 호수가 보인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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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와 입구를 연결한 복도에는 앙코르왓의 하일라이트 중 하나인 신화부조가 새겨져 있다.
▲ 2층 호수에서 바라본 3층의 가장자리 복도와 입구 입구와 입구를 연결한 복도에는 앙코르왓의 하일라이트 중 하나인 신화부조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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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의 대문과 테라스에서 3층의 대문과 테라스 사이의 거리는 300미터 정도이며, 그 안에 원형의 호수 2개와 그 호수를 내려다보는 전각이 있다.
이 전각들은 본당건물과 떨어져 독립적으로 위치하며, 수행자의 휴식처나 접객시설로 보인다.
일층은 앙코르왓에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윗층처럼 화려하거나 개성적이지 않다.
그리고 지금은 관리가 편한 민둥 잔디밭이지만, 호수의 위치와 전각,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돌길 등을  생각해 봤을 때 이곳은 나무로 가득한 정원이었다.
잔디의 민둥한 평지와 회색의 고대건물인 이곳은 그 나름대로 아름답지만, 숲이라고 불러도 좋을 거대한 정원에 둘러싸여 황금과 옥으로 치장한 앙코르 왓을 상상하니 숨이 막힌다.

3층에 드러서면 2층과 같은 구조의 대문과 테라스복도를 볼 수 있다.
하지만 2층에 비해 사각형의 한 면이 몇백미터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2층 테두리 회랑을 장식했던 예술품들은 상대적으로 쉬운 벽화였다면, 3층의 테두리 회랑 부조조각을 새기고 그 위에 색조를 넣었다.
물론 지금은 부조 위에 입혀진 색조는 모두 세월에 싯겨져 사라져서 지금의 회색 돌빛만 남았다.

이들은 800년 전의 부조라고 생각 할 수 없을 만큼 보존성이 탁월하다.

심지어 햇볕이 안드는 구석진 곳을 살펴보면 부조 위에 칠해진 색조조차 조금씩 남아있다.

3층 정문에서 오르쪽의 복도(서향 벽면의 남쪽방향)로 걸어가면 앙코르 왓의 주신인 비시누의 여덟번째 화신이자, 유명한 마하바르타의 주인공인 크리슈나의 일대기를 볼 수 있다.

크리슈나는 아직도 많은 힌두교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유가 신이면서도 인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에게 반기를 든 형제, 친구들과 싸움에서의 인간적인 고민들과 그에 대한 또 다른 영웅인 아르주나의 충고가 아직도 그들에게 구전되어 온다.

크리슈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복도가 왼쪽으로 직각으로 꺽이면서(남향 복도) 앙코르 왓을 세운 자야바르만의 승전행진을 만난다.

승전행진에 나오는 지휘자들은 여러개의 파라솔을 장착한 마차 위에 있다.
이들 파라솔의 숫자가 높을 수록 높은 지위를 나타내며 중앙에 14개의 파라솔을 가진 자야바르만 7세의 모습이 보인다.

동향의 복도로 들어서면 힌두교의 유명한 신화인 우유의 바다를 저어 불로불사약을 만드는 92명의 신과 88명의 악마의 단결된 모습이 나온다.

힌두나 불교에 있어서 신조차 윤회의 바퀴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신과 악마는 단결하여 우유의 바다를 저어 불로불사약을 만들려 했다.

이들 신과 악마의 중앙에 위치하는 신이 바로 비쉬누이다.

크메르인들은 신과 악마의 단결된 힘에 의해 자신들의 제국이 불로불사하기를 갈망했다.

지나가며 말하자면 인도에서는 여기에 덧붙여진 이야기가 있다.

신과 악마의 단합된 노력의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불로불사약이 아니라 세상을 멸망시킬수도 있는 극독이었다.

그래서 힌두 3대 주신 중의 하나인 쉬바가 세상의 멸망을 막기위해 그 독약을 먹어버렸다.

그로인해 쉬바가 죽지는 않았으나 독기로 인해 몸색깔이 파랗게 변해버렸다.

사실 벽면 부조에 등장도 하지않는 쉬바의 이야기는 인도 힌두교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쉬바를 섬기는 사람들이 첨가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쉬바만이 아니라 다른 힌두신들의 피부도 모두 파랗다.

동향 복도의 후반부는 천국과 지옥을 표현했다.

이때부터 벽을 상, 중, 하로 나눠서 각기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상단의 그림은 천국을 중단은 압사라를, 하단은 지옥을 표현했다.

어느 종교에서나 보이듯이 지옥에 대한 표현은 사람 몸을 갈가리 찢거나, 짐승에게 먹이고, 쇠몽둥이를 입속에 집어넣는 등의 하드코어적이다.

천국은 즐겁고 행복하며, 중간의 압사라들은 이들 양극단의 경계를 만든다.

동향복도가 끝나고 왼쪽으로 꺽으면 북향복도가 시작된다.

북향 복도에는 앙코르가 정글에 몸을 숨긴 초기이자 크메르 제국이 불교로  개종한 이후 몇몇 승려들이 이곳에 와서 새긴 것이다.
당연히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다만 부처가 힌두교에서는 비쉬누의 9번째 화신이라 알려졌기 때문에 2층 복도에 세겨진 이야기의 흐름에는 무리가 없다. 

북향 복도를 지나 다시 왼쪽으로 돌아서면 정문이 있는 서향복도의 북쪽 면(정문에서 왼쪽편)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손오공의 모델인 하누만이 등장하는 라마야나의 이야기를 만난다.

주인공인 라마의 아름다운 아내 시타가 랑카(현재의 스리랑카)의 마왕에게 납치된다.

화난 라마는 인도의 모든 왕족들에게 격문을 띄워 일어난 전쟁을 준비하지만, 세력이 약했다.

그때 원숭이의 왕인 하누만의 도움이 라마를 승리로 이끈다.

그래서 아직까지 인도에서는 이 원숭이의 왕, 하누만을 신으로 섬긴다.

금전적인 성공을 바란다면 원숭이나 한마리 키우기를 권한다.

힌두교에서 원숭이의 왕인 하누만은 상업과 금전의 신이기 때문이다.

이 라마야나 이야기는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등의 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중국, 동남아, 몽고, 심지어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민간설화처럼 내려온다.

나조차도 어릴적 불교신자이셨던 할머니가 간간히 들려주셨기 때문에 특히나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할머니가 들려주신 라마와 시타의 행복한 결말은 간곳없고, 시타가 순결을 의심받자 분신자살했다는 사실이 씁슬하다.

호메로스 서사시 '트로이 전쟁'의 헬레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를 트로이 왕자인 파리스가 납치하여 트로이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동화들이 나이가 들수록 잔인한 이야기로 변해가는 것이 정말 씁슬하다.

이렇게 정교한 부조가 사방으로 몇백미터에 걸쳐 빼곡이 새겨져 있다. 구석진 곳을 조심히 살펴보면 아직 벗겨지지 않은 회벽과 그위의 채색을 확인할 수 있다
▲ 3층 복도에 새겨진 부조 이렇게 정교한 부조가 사방으로 몇백미터에 걸쳐 빼곡이 새겨져 있다. 구석진 곳을 조심히 살펴보면 아직 벗겨지지 않은 회벽과 그위의 채색을 확인할 수 있다
ⓒ 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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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쉬누는 신과 악마의 중간에 위치하여 그들이 당기는 나가의 몸이 끊어지지 않도록 유지한다. 사실 학자들의 해석을 그대로 싣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지의 신'인 비쉬누가 신과 악마의 줄다리기 사이에 위치하여 그들의 균형을 맞추는 부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 불로불사약을 만드는 신과 악마 비쉬누는 신과 악마의 중간에 위치하여 그들이 당기는 나가의 몸이 끊어지지 않도록 유지한다. 사실 학자들의 해석을 그대로 싣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지의 신'인 비쉬누가 신과 악마의 줄다리기 사이에 위치하여 그들의 균형을 맞추는 부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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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은 중앙본당의 바로 밑이다.

사실 앙코르 왓을 탑이라 표현했지만, 1층과 2층만을 본다면 무리가 있다.

하지만 3층에서 4,5층을 바라보면 탑의 형태가 완연히 드러난다.

옛날 이곳을 방문했던 중국 여행자들은 앙코르왓을 '오형제탑'이라 불렀다.

그 이유가 4층에는 동서남북으로 거대한 탑이 위치하고, 그 중앙에는 오층을 두어 가장 큰 탑을 세웠다.

그렇기에 멀리서 보면 이들 다섯개의 탑만이 눈에 드러오니 그런 별명이 붙었다.

4층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복도는 볼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2층의 가장자리 복도가 벽화와 거대 석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3층의 것에는 아름다운 부조가 있었기에 더욱 화려한 4층을 기대했다.
하지만 먼지하나 안날만큼 깨끗하리만치 아무것도 없다.

아마도 이곳을 아름답게 하고 있던 것들은 프놈펜 왕실사원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높이 60센티미터, 한 덩어리의 에메랄드를 조각해서 만듬)이나 황금 불상(90킬로그램의 순금, 거기에 9585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 가장 큰 다이아는 25캐롯)과 같이 비교적 작은 것들이

었다고 생각한다.

프놈펜으로 도주 시에 안가져 갈 리가 없다.

그나마 중앙 석탑 주변에 조각된 춤추는 압사라들에게서 위안 받는다.

아니... 차고 넘친다.

몸에는 흘러내릴 듯한 하늘하늘한 천을 두르고, 머리에는 황금줄기로 만든 금관에 목에는 이 지역 특산품인 에메랄드 목거리가 하늘거린다.

양팔에는 인도식 팔찌가 흘러내리며 아담한 발과 발까락의 발찌까지 눈에 띈다.

유방은 풍만하나 결코 쳐짐이 없고, 허리의 부드러운 라인은 현제의 어떤 여배우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머리작고 어깨좁으며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하고 허리 잘록하며 키는 작지만 상대적으로 긴 다리를 가진 동남아 미인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슴아프게도 내 첫사랑을 회상시키는 얼굴을 가진 압사라도 있다.

훼손이 비교적 적은 압사라이다. 수십개의 압사라 중에서는 발만 남겨진 것도, 목이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온전하게 남겨진 그들의 부분부분들을 퍼즐 맞춰가면 정말 사랑스런 동남아 미녀를 보게된다
▲ 압사라 훼손이 비교적 적은 압사라이다. 수십개의 압사라 중에서는 발만 남겨진 것도, 목이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온전하게 남겨진 그들의 부분부분들을 퍼즐 맞춰가면 정말 사랑스런 동남아 미녀를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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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로 연결된 석탑의 중앙에는 열반에 든 부처상이 모셔져 있다.
▲ 5층 중앙탑에서 바라본 동쪽 석탑 복도로 연결된 석탑의 중앙에는 열반에 든 부처상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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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의 본당에는 4층에서 시작된 5개의 탑의 꼭대기를 연결한 곳이다.

이들 중앙 탑을 제외한 4개의 탑들은 각자의 석굴을 가지고 있으며 그안에는 비쉬누의 석불이 위치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동향의 석굴에는 열반에 드는 누운 부처상이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다시피 부처도 비쉬누의 9번째 화신이니 특이할거 없다면 특이할 것도 없다.

다만 힌두교 입장에서는 신흥거대 종교이며 교리마저 상반되는 불교마저 자신의 일부로 흡수해 버리는 포용력이 놀랍다.

인도에서 예수 그리스도마저 비쉬누의 10번째 화신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만났으니...


태그:#앙코르,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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