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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도 아닌 것이 촉촉이 가슴을 적셔오고, 바람도 아닌 것이 비틀거릴 만큼 마음을 흔들어 댑니다. 고향을 갈 때 서두르지 않고 조금만 돌아가면 지나질 수 있는 길옆저수지, 벌초를 하러 가던 새벽길에서 향불처럼 물안개를 피워 올리고 있는 저수지를 만났습니다.

 

벌초하러 가는새벽길에 만난 아침 물안개

 

사춘기 때야 따뜻한 커피 한 잔만 있으면 몸도 마음도 물안개와 함께 피워 올릴 수 있었지만 지천명으로 접어든 나이엔 노안으로 찾아온 시력만큼이나 물안개에 다가서는 것조차 짝사랑이 되었습니다.

 

가을안개라고 해야 할지, 물안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무슨 비밀을 쌓으며 그리 뜨거웠는지 연탄불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 속의 물처럼 물도 아니고 바람도 아닌 것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여명의 가을아침, 꼬물꼬물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맴도는 저수지 가를 또박또박한 발걸음으로 따라 걸었습니다. 물안개만 보지 말고 자기도 좀 봐달라고 떼를 쓰듯 아침 이슬이 바짓가랑이를 적셔옵니다.  

 

꼬물거리는 안개 너머로 움찔거리는 뭔가가 느껴집니다. 간유리처럼 뿌연 시야에 잡히는 잠상은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입니다. 밤새 손맛을 낚았는지, 세월을 낚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을아침 저수지에 드리운 강태공의 모습은 물안개에 맺힌 이슬 한 방울입니다.  

 

이미 할머니가 된 동창들이 있고, 100미터쯤을 달리고 나면 한참이나 헐떡거려야 할 만큼 노쇠해진 몸이지만 가을 물안개를 바라보는 마음은 연애편지에 가슴 콩닥거리던 사춘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타고난 운명을 아는 때'라고 해서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다는 나이 50에도 타고난 운명을 알기는커녕 가슴에 이는 물안개조차 감추지 못하는 게 물안개 피어오르는 가을아침에 저수지를 서성거리고 있는 아상(我相)이며 현실입니다.

 

몸뚱어리는 어느덧 가을 단풍으로 물들며 시들어 가는데, 철없는 마음은 아직도 연록빛깔 새싹이니, '아뿔사!' 몸과 마음이 따로 임을 걱정하는 고뇌의 시간입니다.


태그:#물안개, #지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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