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렇게 앉으니 청문회하는 것 같네요."
"사실대로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정운찬 총리와 다릅니다. 하하."

16일 저녁 부산 민주공원 큰방.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김재규 민주공원 초대관장이 사회자 최광기씨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부마민주항쟁30주년사업추진위원회·(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부마민주항쟁 30년 및 민주공원 개관 10년 기념식"을 연 뒤 대담을 연 것이다.

"부마민주항쟁 30년,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제목의 대담이 16일 저녁 민주공원에서 열렸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김재규 전 민주공원 관장이 방송인 최광기의 사회로 대담을 가졌다.
 "부마민주항쟁 30년,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제목의 대담이 16일 저녁 민주공원에서 열렸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김재규 전 민주공원 관장이 방송인 최광기의 사회로 대담을 가졌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이들은 "부마민주항쟁 30년,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제목으로 '시대와의 대담'을 가졌다. 대담은 1시간 가량 열렸는데, 이규정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이부영 전 의원, 배다지 전 민주주의민족통일부산연합 공동의장, 성유보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이광호 민주공원 관장 등 제법 많은 인사들이 좌석에 앉아 대담을 지켜보았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먼저 최광기씨가 임헌영 소장한테 물었다. "70년대는 어떠했느냐"고. 임 소장은 "70년대 징역 두 번 산 것 밖에 기억이 안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때가 고전적인 독재였다면 지금은 기술적인 독재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70년대 상황을 구체적으로 묻자 임 소장은 "너무나 기억이 생생하다"며 "요즘 젊은이들은 모를 것이다. 상상도 안될 것이다. 머리카락이 길다고 잡아가고 했는데 말이다"고 말했다.

김재규 전 관장도 70년대를 더듬으며 먼저 "부끄럽다"고 했다. "저보다 훨씬 옥고를 치르고 열심히 한 분들도 계신데, 이런 말 해서 민망하다"고. 그는 "지금 젊은이들은 70년대라면 상상을 못할 것"이라며 "정말 우리한테 이런 사회가 있어서는 안 될, 잔인한 억압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부마항쟁의 지원 조직의 하나였던 양서협동조합에 대해, 김 전 관장은 "1978년 4월 학생 등에게 양서를 보급하고 세력을 결집하자고 해서 만들어졌다"면서 "이후 비슷한 형태로 대구, 광주, 마산으로 확대되었는데 부산이 모태였다. 이후 해산되기는 했지만 한때 회원은 600명이나 되었다"고 말했다.

최광기씨는 임 소장한테 당시 출판문화에 대해 물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출판계는 엉터리였다. 참고서 위주로 책을 내서 먹고 살았고, 일제 잔재가 남아 있었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출판을 많이 했는데, 우리나라의 출판문화를 20년이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출판사에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다. 양서협동조합 같은 조직이 서울에도 생겨났는데, 당시 부산에 내려와 많은 인사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김광일 변호사도 기억이 난다"는 대답이었다.

사회자는 두 사람은 언제 처음 만났느냐는 질문을 했다. "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는 대답이 나왔다. 대구교도소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임 소장은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983년까지 투옥되어 있었고, 김 전 소장은 1981년 부림사건(전두환정권 반대투쟁)으로 투옥되었던 것.

김재규 전 민주공원 관장.
 김재규 전 민주공원 관장.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부마항쟁은 저한테 많은 고생을 가져다 주었다. '남민전'으로 대공분실에 갖혀 있을 때 부마항쟁이 벌어졌다. 편안하게 심문을 받고 있었는데, 어느날부터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며 살벌했다. 그런 분위기가 열흘 정도 흘렀다. 나중에 보니 부마항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조사관이 저한테 '언제 부산에 갔느냐'고 물었는데 '간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 때 부산에 간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면 부마항쟁의 조종자로 찍혔을지 모른다. 부마항쟁하면 대공분실이 먼저 떠오른다"(임헌영).

"당시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시위가 있어도 부산대는 없었다. 그런데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YH사건이며 YS(김영삼)의 국회의원 제명 등이 터졌다. 유신정권의 폭압정치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전반적으로 분노했다. 부산대에서는 1979년 10월 15일 시위를 준비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무위로 돌아갔다. 16일 자정을 기해 부산대 조직이 가동되면서 그날 아침 10시에 시위가 시작되었고 삽시간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부끄러움을 일거에 날려버리고 싶은 시민들의 분노가 있었다. 시민들도 박수를 보내고, 저녁이 되면서 시민들도 참여했는데 2만, 3만명으로 늘어났다"(김재규).

최광기씨는 "부마항쟁이며, 5.18, 6.10을 보면 역사적으로 민중들의 힘은 한결 같았던 것 같고, 조금은 다르지만 투쟁의 열기는 강렬했던 것 같은데, 민중의 힘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경상도 지역의 민주화 운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승만정권 때는 대구가 강했고 부산은 미미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의 독재 종막을 내린 것은 부마항쟁이다. 대단히 소중하게 역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부마항쟁 때문에 민주화운동의 센터가 부산에 있는 것이다. 부산은 한국 현대 민주화운동에서 새롭게 평가받아야 한다"(임헌영).

18일 저녁 민주공원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생 30년,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제목의 '시대와 대담'을 송기인 신부와 성유보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함세웅 신부(왼쪽부터)가 앉아 지켜보았다.
 18일 저녁 민주공원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생 30년, 한국사회를 말한다"는 제목의 '시대와 대담'을 송기인 신부와 성유보 전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 함세웅 신부(왼쪽부터)가 앉아 지켜보았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최광기씨는 "그런 부산이 요즘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임헌영 소장은 "그걸 알면 여기에 있겠나"면서 "1990년 1월 20일이 무슨 날이냐. 3당합당했던 날이다. 3당합당을 학술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YS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부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3당합당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마항쟁이 30주년을 맞아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뒤 신군부가 등장했다. 그 뒤 부마항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 같은데"(최광기).

"격동기를 거치면서 부마항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광주항쟁과 6월항쟁으로까지 갔다. 부마항쟁은 유신독재의 사슬을 끊은 계기가 되었다. 민중 투쟁의 출발점이다"(김재규).

사회자 최광기씨.
 사회자 최광기씨.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민중들의 꿈은 하나의 정권을 무너뜨리면 그 다음에는 올바른 정권이 들어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민중이 정권을 무너뜨렸다면 그 다음에는 지켜 주어야 한다. 세계 역사가 그렇다. 어느 나라든지 민중이 일으켜 놓으면 독재자들이 다시 말아먹기도 한다. 프랑스는 세 번이나 그랬다. 그래도 낙심하지 말고 항상 민중은 일어서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다"(임헌영).

최광기씨는 "역사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 청산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묻자 임 소장은 "과거를 깨닫지 않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말이 있다"면서 "역사는 오늘이고 내일인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 거리에서 사회를 보면서, 촛불문화를 보면서 그래도 달라졌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도 욕구가 조금씩 다르기도 했는데"(최광기).

"우리는 민중항쟁 시대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데, 과거 독재 집권세력은 고전적인 독재였다면 지금은 고도의 기술적인 독재라 할 수 있다. 기술컴퓨터 시대의 독재다. 독재는 개발이 됐는데 민중항쟁의 이론으로 하니 게임이 안되는 것이다. 독재세력은 골프를 치는데 민주세력은 권투하듯이 뒤에 따라가고 있으니 게임이 안된다.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지금 정도의 쟁점이 생겼다면, 70년대 중고등학생이라면 가만이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불감증이다. 다 이기주의자다. 불의를 보고도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손해가 없다든지, 이익이 오지 않는 한 작동하지 않는다. 역사만 갖고는 안된다"(임헌영).

최광기씨는 "부산에 여러번 왔지만 민주공원에 오기는 처음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잘 아는데 민주공원에 와서 보고 의미를 새겨 보는 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김재규 전 관장은 "민주공원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현 체제 속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느끼는 것은 있지만,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송기인 신부께서 외국에도 다녀온 뒤 민주화운동을 기념할 만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추진했던 것인데, 민주화의 터전을 굳히고 심화시키는 공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광기씨는 "민주공원을 만들 때 시민들이 참여했느냐"고 묻자 김 전 관장은 "처음 준비할 때는 시민 성금으로 하려고 했는데 당시 모금법이 바뀌면서 하지 못했고 국민 세금으로 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최씨는 "세금은 제대로 그렇게 쓰야 하는 것"이라고 하자 김 전 관장은 "어려웠던 일도 많았는데 공무원들이 공감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저녁 민주공원 큰방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 김재규 전 민주공원 관장을 초청해 대담을 가졌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16일 저녁 민주공원 큰방에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 김재규 전 민주공원 관장을 초청해 대담을 가졌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10년간 강산만 바뀐 게 아니라 너무 많이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민주주의 위기라고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위기냐"(최광기).

"지금은 민주주의 위기다. 회복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여러 정치 구도나 의식을 보면 변화를 줄 수 있는 데는 부산과 마산밖에 없다. 부산과 마산이 변하면 달라진다. 선거로도 달라지고 민중의지로도 달라진다. 경기도와 강원도, 호남, 영남, 충청의 표가 어떻게 돼 있나. 경북이 달라지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그런데 부산은 가능하다. 어떻게 할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1979년 부마항쟁이 끝난 것이 아니고 제2의 항쟁을 하든 양서협동조합을 만들든, 민주화를 만드는 데 부산의 역할이 크다"(임헌영).

이어 임헌영 소장은 "지금은 기술적인 독재일지라도 우리의 정신은 독재에 저항하는 에너지를 축적해서 세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나가여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규 전 관장은 민주공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애초 기념관이나 공원을 만들 때 민주시민들의 시민의식 확산을 목표로 했다. 그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아이들 교육부터 하고 있다. 물론 시민사회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어려움도 많다. 이제는 사명감만 갖고는 안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시대정신을 인식해야 한다."

김 전 관장은 부산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민주공원'이 사라진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최근 부산시는 민주공원을 경유하는 시내버스 2개 노선의 정류장 이름을 민주공원에서 '중앙공원(관리사무소)'으로 바꾸었다. 그는 "부산사람들은 민주공원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자랑해야 할 것인데 거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에 최광기씨는 "빼앗긴 것도 언젠가는 찾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부마항쟁에 대해 임헌영 소장은 "부마항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결코 끝나지 않은 부산과 마산시민들의 민주주의 재생, 부활을 믿는다"고, 민주공원에 대해 김재규 전 관장은 "민주주의 산 교육장이다"고 말했다. 3명의 대담자들은 다음과 같은 마무리 발언을 하고 마쳤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 성장통을 겪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또 다른 기술을 배워야 할 것 아닌가. 끝나지 않은 역사 속에서 항쟁은 계속되고 있다"(최광기).

"내년까지 1년 동안 1979년 그 10월의 정신으로 돌아가서, 내년 이 맘 때는 보다 더 강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기념식이 되도록 함께 나가가자"(임헌영).

"민중에 대해 신뢰한다. 문제는 실천이다"(김재규).

16일 저녁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이규정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이 개인부문 민주시민상을 받은 최현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울산본부 상임대표한테 상패를 전달하고 있다.
 16일 저녁 부산 민주공원에서 열린 부마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이규정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이 개인부문 민주시민상을 받은 최현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울산본부 상임대표한테 상패를 전달하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과 김재규 전 민주공원 관장이 16일 저녁 민주공원 큰방에서 가진 "부마민주항쟁 30년, 한국사회를 말하다"는 제목의 대담은 며칠 뒤 오마이뉴스(TV)에서 녹화상영될 예정입니다.



태그:#부마민주항쟁, #부마항쟁, #민주공원, #임헌영 소장, #김재규 전 관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