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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겨울바람이 매섭다. 횡단보도를 오가는 사람들은 종종걸음이다. 전남 여수 교동시장 초입에서 노점상을 하는 할머니가 한데서 라면으로 점심끼니를 때우고 있다.

 

위성엽(67) 할머니다. 할머니는 새벽 3시면 일어난다. 밥 해먹고 집안일 챙기고 4시30분경이면 여수 율촌 집을 나선다. 당신의 일터인 이곳 노점에 도착하는 시간은 아침 6시경이다.

 

"추운데서 고생이 많습니다."

"뭔 사람이요 겁나요, 죄는 한나도 안 지었소마는..."

 

"장사는 잘 되세요?"

"안 된께 이러고 있제. 장사도 안 되고 어디 농사짓고 살겠소, 어중간한 논떼기 있다고 세금만 겁나게 나오고"

 

"할머니, 어디서 오셨는데요?"

"쩌그 율촌 반월마을이여~"

 

가격을 묻고는 야속하게도 그냥 지나쳐

 

지나치는 행인들은 대부분 가격을 묻고는 야속하게도 그냥 지나친다. 좀 사주면 좋으련만, 값을 묻고 몇 번을 망설이다 돌아서는 그들의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이곳에 한참을 머물다 보니 서민들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알 것도 같다.

 

할머니는 길거리에서 호박고구마와 키위, 알밤을 판다. 할머니 곁에서 도토리묵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는 도토리묵을 직접 만들어가지고 구례에서 왔다고 했다.

 

"호박고구마가 정말 맛있어, 삶아 놓으면 농글농글하니 맛있어."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노점을 한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인사도 건네고 아는 체를 한다. 제법 많은 단골을 확보하고 있는 듯했다.

 

"여기 물렁한 놈 하나 있는디 하나 묵고 가소"

"사람 다 알제, 농사를 지어갖고 온께 푸짐하제"

 

할머니가 지나가는 단골고객을 불러 세워 키위 한 개를 건네주며 하는 말이다.

 

"묵고 살랑께 라면이라도 묵어야제"

 

구례 아주머니는 씨 고구마를 하겠다며 할머니에게서 호박고구마를 구입했다. 할머니는 노점에서 함께 하는 동료애 때문인지 덤을 듬뿍 준다. 지난해 할머니네 고구마 수확량은 30가마라고 했다.

 

"많이 줬어~ 속이나 알아, 씨 한다고 해서 내가 많이 담았어. 농사 지은다는 사람이 어찌 의심을 한당가? 딱 싸놓았다가 야물게 종자해."

 

추운 겨울에는 열량 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에 잘 먹어야 한다. 하루 종일 한데서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고 장사를 하는 할머니의 고생이 오죽하랴 싶다. 춥고 허기지고.

 

"끼니는 제대로 챙기셔야죠."

"식당에서 밥해다 판 사람이 있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배달을 안 해줘, 묵고 살랑께 라면이라도 묵어야제."

 

"일 년 열두 달 손톱을 안 깎아봤어"

 

할머니의 손이 까칠하다. 손톱은 닳고 닳아 뭉개지고 손등은 트고 갈라졌다. 시선을 의식한 할머니가 장갑을 벗고 양손을 보여준 것이다. 할머니의 손을 본 순간 가슴이 아리고 아파온다.

 

"이 손잔 보씨요, 손이 다 째지고 닳았어. 일 년 열두 달 손톱을 안 깎아봤어, 다 닳아서 이 모양이야. 요래 갖고는 못살겠소, 우리 서민들 살게 좀 해 주씨요. 땅 파고, 지심 매고, 손으로 농사 지어갖고 와서 팔아 묵은께 그래"

 

할머니는 스무 살에 시집와서부터 장사를 했다. 30년이 넘었다. 시장에서 평생 장사를 해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쳤다. 며느리가 아들 직장이 없다며 집을 나가 손자 녀석들까지 떠 맞게 됐다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게 다 당신의 죄라며.

 

"평생을 자식들 가르치고 살았응께, 인제는 또 손주들 갈쳐야 돼 죄가 많아서..."

"시방 사람들은 비우 안 맞으면 가붑디여~"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할머니의 손, #교동시장, #라면, #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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