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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 삼목 선착장. 배에서 내리는 승객들. 앞에 보이는 섬이 '신도'.
 영종도 삼목 선착장. 배에서 내리는 승객들. 앞에 보이는 섬이 '신도'.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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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 있어 더 소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가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굳이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남해안의 어느 먼 섬처럼 '나 살아서 언제나 한번 가볼 수 있으려나' 목을 맸다면 꽤 신비한 느낌을 가졌을 섬을, 그저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 그동안 너무 무덤덤하게 대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일찍이 그 섬을 알지 못했던 게 아쉽다. 예전 모습 그대로 깊은 원시성을 간직한 섬이었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그 섬에 검은 아스팔트가 덮이고 섬과 섬 사이에 시멘트 다리가 놓이기 전에, 흙과 흙으로 이어지던 땅과 갯벌과 갯벌로 이어지던 바다를 보지 못한 게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그래도 그 섬은 여전히 아름답다. 눈앞에 갯고랑 깊은 갯벌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다. 바다가 저 멀리 뒤로 물러선 뒤, 썰물 때 그 아래로 드러나는 갯벌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그러자니 또 한편으로 이 아름다운 갯벌을 국토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간척을 일삼아온 일이 안타깝다.

드넓은 갯벌 위에 오롯이 떠 있는 푸른 섬들이 마치 갯벌 위를 기어 다니는 거대한 초식성 동물처럼 보인다. 부드럽고 넉넉한 모습이다. 그 순한 섬에 내려서서는 천천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저 앞에 굽은 길을 돌아가면 그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 그 섬은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섬이다. 그 섬에 안긴 나, 안온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신도로 향하는 배. 배 안에 가득 찬 차량들.
 신도로 향하는 배. 배 안에 가득 찬 차량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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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깡을 향해 돌진하는 갈매기 떼... 코앞의 섬, 신도

영종도 삼목선착장을 떠난 배가 힘겹게 뱃머리를 돌린다. 배 갑판에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게, 그 무게 때문에라도 몸을 돌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배는 있는 힘을 다 쏟아부어가며 천천히 바다를 향해 조심스럽게 몸을 돌린다. 배가 선착장을 떠난 지 얼마 안 돼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뱃전을 에워싸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내던지는 새우깡에 사력을 다해 달려드는 갈매기들의 눈빛이 유난히 날카롭다. 항해에 있는 힘을 다 쏟아붓는 배 위로, 새우깡에 사력을 다하는 갈매기들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배와 갈매기는 그렇게 한 쌍이다.

2층 선실 난간에 서서 내려다보니, 배 갑판을 온통 자동차들이 차지했다. 승객 수만큼이나 많은 숫자다. 이게 모두, 아직도 자동차를 이 세상에 유일한 교통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은 탓이다. 그런 사람들로서는 둘레가 겨우 '16km'밖에 안 되는 섬(신도)이라 하더라도, 기어이 차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차를 운전해서 섬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결코 속이 편한 것만은 아닌데도 말이다.

내 생각에 '승용차'처럼 비경제적인 물건도 없다. 100kg도 안 되는 인간의 몸을 운반하는 데 100마력이 넘는 육중한 기계를 동원해야 하는 게 지극히 불합리하다. 사람들은 왜 자전거처럼 좀 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수단을 이용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16km'는 걸어서 4시간, 자전거로는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여행을 마칠 수 있는 거리다.

오늘 배가 닿는 목적지는 '신도'다. 영종도 삼목선착장에 서서 바라다보면 바다 건너 눈앞에 보이는 섬이 바로 신도다. 얼핏 눈으로 봐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섬에서 섬까지의 거리가 불과 1.8km. 뱃머리를 에워싼 갈매기들에게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배가 어느새 신도 선착장에 닿는다. 불과 10여 분. 선착장에서는 다시 사람과 차가 배에 타고 내리는 일이 반복된다. 신도를 떠난 배는 이어서 장봉도로 향한다.

왼쪽) 신도로 들어서는 입구 풍경. 오른쪽) 신도의 한 도로 풍경
 왼쪽) 신도로 들어서는 입구 풍경. 오른쪽) 신도의 한 도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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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석지를 간척해 만든 논. 멀리 보이는 섬이 시도. 오른쪽 끝에 슬픈연가 세트장이 보인다.
 간석지를 간척해 만든 논. 멀리 보이는 섬이 시도. 오른쪽 끝에 슬픈연가 세트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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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논길'이 되기도 하고 '바닷길'이 되기도 하는 도로

언제나 그렇듯이 섬 여행은 오른쪽 길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그 방향으로 가야 해안이 좀 더 가깝게 내려다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길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을 가득 채운 논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다른 섬 같았으면 배나 그물이 더 많이 눈에 띄었을 텐데, 이 섬에서는 처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게 온통 논물 찰랑거리는 거뭇한 논바닥이다.

섬에 들어와 농촌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게 조금은 비현실적이다. 이곳의 해안가 논들은 예전에는 썰물 때 드러나는 간석지였다. 그 간석지 바닷가에 제방을 쌓은 다음, 그 안을 흙으로 메워 논과 염전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이곳 신도에서 만나는 도로는 바닷길이 되기도 하고 논길이 되기도 하다가, 때로는 산길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다채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신도의 <연인> 세트장 가는 길,  푸른벗말 농촌전통 테마마을 앞 저수지 풍경.
 신도의 <연인> 세트장 가는 길, 푸른벗말 농촌전통 테마마을 앞 저수지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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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의 도로는 좁고, 갓길은 없다. 하지만 차량이 적은 편이어서 육지의 도로보다도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주말에는 섬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더 북적일 수도 있다. 길은 대체로 평평하다. 때로 언덕이 나타나지만,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신도, 시도, 모도 3개 섬을 모두 통틀어 가파르다고 할 수 있는 언덕이 겨우 두세 개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그다지 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한 마디로 자전거 타기에 좋은 섬이다.

신도는 바닷가에 접한 논만큼이나 갯벌이 인상적이다. 그 끝이 잘 보이지 않는데, 마침 바다를 뒤덮은 안개에 가려 수평선마저 아련하다. 그 아스라한 갯벌 위로 새카만 점들이 수없이 오글거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자갈만큼이나 작은 게들이 자갈만큼이나 허다하게 깔려 있다. 놀라운 광경이다. 짧은 순간, 수만 개의 깨알 같은 눈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눈에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어머어마한 파괴를 일삼아 온 인간을 경계하는 눈빛이 읽혔다면 과장일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 같이 똑같은 자세로 굳어버린 그들. 갑작스런 인간의 출현에 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내 다음 행위를 주시하고 있다. 그 순간 그들에게 말할 줄 아는 입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렇게 외쳤을지 모른다. '세상에는 인간이 전부가 아니다. 갯벌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를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시라.'

하지만 불가항력이다. 갯벌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가 지금과 같다면, 재앙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올 것이다. 그들 역시 그런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차하면 뿔뿔히 흩어져 흔적도 없이 달아날 태세다. 나는 그들이 그곳에서 오래도록 평화를 누리기를 바라면서, 그들의 일상에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뒤로 물러선다.

모도 들어가는 길의 갯벌
 모도 들어가는 길의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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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슬픈연가 촬영지. 오른쪽) 풀하우스 촬영지
 왼쪽) 슬픈연가 촬영지. 오른쪽) 풀하우스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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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드라마 촬영지, 배경으로 남은 조용한 바닷가

신도를 여행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도'로 들어가는 연도교가 나온다. 시도는 2군데에 드라마 촬영지가 있어 연인들이 많이 찾아가는 곳이다. 시도 가는 길에만 도보여행을 나선 한 쌍의 중년부부와 자전거를 탄 한 쌍의 젊은 연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2군데 촬영지 모두 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상당히 낡은 느낌이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다.

<슬픈연가> 촬영지는 내부수리중이라 건물 내부를 굳게 닫아 놓은 상태여서 겉만 맴돌다 나온다. 그리고 <풀하우스> 촬영지는 겉보기에도 눈여겨 볼 만한 것이 거의 없어, 굳이 입장료(어른 5000원)를 물어가며 안에까지 들어가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입장료가 단지 촬영지 세트장을 잠깐 둘러보고 나오는 것으로는 꽤 비싼 편이다.

두 곳의 촬영지 모두 해안이 아름답다. <슬픈연가> 촬영지에서는 세트장 입구 쪽 왼쪽 계단을 내려가면 바위가 듬성듬성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바닷가를 볼 수 있다. <풀하우스> 촬영지에서는 '수기해변'이라 불리는 넓은 모래사장을 볼 수 있다. 모래사장 끝에 갯벌이 드러나는, 조금은 특이한 해변이다. 이곳의 해안은 썰물 때, 바닷가를 따라 걷는 도보여행도 가능하다.

윗쪽) 슬픈 연가 촬영지 근처 바닷가. 아랫쪽) 풀하우스 촬영지 근처 바닷가, 수기해변
 윗쪽) 슬픈 연가 촬영지 근처 바닷가. 아랫쪽) 풀하우스 촬영지 근처 바닷가, 수기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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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신도에서 시도로 넘어가는 연도교. 오른쪽) 시도에서 모도로 넘어가는 연도교
 왼쪽) 신도에서 시도로 넘어가는 연도교. 오른쪽) 시도에서 모도로 넘어가는 연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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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도, 앙증맞은 섬... 그보다 더 앙증맞은 조각공원

신도, 시도, 모도는 '삼형제섬'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모두 연도교로 연결이 되어 있다. 신도가 가장 큰 형이라고 할 수 있고, 시도가 둘째, 모도가 막내 격이다. 섬의 크기도 막내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작아진다. 모도는 그야말로 애기 섬이다. 얼마나 작은지 섬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돼, 바로 섬 남쪽 끝에 있는 배미꾸미 조각공원에 도착한다.

배미꾸미 조각공원 역시 작다. 작은 섬, 모도에 걸맞은 모양새다. 그 작은 공원에 앙증맞은(?) 조각품들이 오밀조밀 가득 들어차 있다. 그렇게 작은 규모 때문인지 공원 입구에서 겉만 쭉 훑어보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이 공원에 들어가려면 입장료(개인 1000원)와 주차료(승용차 3000원)를 물어야 한다. 공원은 비록 작지만, 바로 앞이 바닷가라 전망이 시원하다.

모도, 배미꾸미 조각공원
 모도, 배미꾸미 조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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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 여기저기에 다양한 재질의 크고 작은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 작품들 대부분 성적 표현이 강하다. 노골적이다 싶은 표현도 심심찮다. 민망한 나머지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짧은 치마를 입은 한 여인이 별 망설임도 없이 개 형상을 한 조각품 위에 사뿐히 올라타는 걸 보고 그만 어이가 없어진다. 그걸 보고 우습다고 해야 하나, 재미있다고 해야 하나? 나로서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를 장면이다. 조각품을 예술로 보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놀이 도구로 보는 발상과 행동이 놀라울 뿐이다.

신도, 시도, 모도 3개 섬을 한꺼번에 돌아보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각각의 섬은 작지만, 이들 섬을 하나의 여행지로 삼을 때는 그 크기가 결코 작지 않다. 자전거로 이들 3개 섬을 한 바퀴 돌아본 거리가 36km다. 그러니 한나절을 꼬박 섬에서 보낼 생각으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돌아보는 게 좋다. 만약에 섬 안에서 하루를 머물러야 할 때는 펜션이나 민박을 이용해야 한다. 섬 안에 아기자기한 펜션이 여러 군데다.

신도의 한 펜션 마당 앞에 비치되어 있는 자전거들
 신도의 한 펜션 마당 앞에 비치되어 있는 자전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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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에서 신도로 들어가는 첫 배가 아침 7시 30분, 마지막 배가 저녁 7시 30분이다. 배는 1시간마다 있다. 왕복 뱃삯은 3600원, 자전거를 가지고 타려면 2000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들어갈 때는 아무런 절차 없이 그냥 배에 올라탔다가, 신도에서 나올 때 뱃삯을 치르면 된다. 영종도까지는 김포공항역에서 코레일공항철도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 공항철도는 자전거 우대 정책을 쓰고 있다. 열차 끝 칸을 자전거 전용 칸으로 지정해 놓고, 요일 상관없이, 산악자전거든 뭐든 자전거 종류에 상관없이 열차에 실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자전거여행 길. 붉은 선은 되돌아나오는 길 표시. 1) 신도 선착장 2) 갈림길, 오른쪽 아스팔트 길 말고 왼쪽 농로 선택 3) 시도로 넘어가는 연도교 4) 슬픈연가 촬영지 5) 풀하우스 촬영지, 수기해변 6) 모도로 넘어가는 연도교 7) 배미꾸미 조각공원
 자전거여행 길. 붉은 선은 되돌아나오는 길 표시. 1) 신도 선착장 2) 갈림길, 오른쪽 아스팔트 길 말고 왼쪽 농로 선택 3) 시도로 넘어가는 연도교 4) 슬픈연가 촬영지 5) 풀하우스 촬영지, 수기해변 6) 모도로 넘어가는 연도교 7) 배미꾸미 조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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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풀하우스 촬영지 가는 길가의 염전
 시도, 풀하우스 촬영지 가는 길가의 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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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5월 20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신도, #시도, #모도, #슬픈 연가, #풀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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