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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갑곶돈대에서 남장포대로 내려가는 계단에 서니 염하강과 초지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풍경이 기가 막혔다.

 

제주도에서는 풍경이 기가 막힌 곳에는 4.3의 아픈 흔적과 일본군의 진지가 숨어 있는데, 강화도에서는 풍경이 아름다운 강둑에 군사적 기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덕진진에 비가 내렸다. 대형버스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덕진돈대로 향한다. 반달 모양의 요새가 보였다. 이 요새가 바로 남장포대. 남장포대는 덕진진에 소속된 포대로 건립 당시에는 15문 포대가 설치되었다 한다. 덕진진은 강화 12진보의 하나로, 강화해협 관문을 지키는 제1의 포대였다.

 

 

 

특히 1871년 미국 극동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으며,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에 의해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이한 곳이다. 따라서 성첩과 문루가 파괴되었고, 문루 터만 남게 돼 1976년에 다시 문루를 세우고 돈대를 보수하여 남장 포대를 개축했다.

 

때문에 게시판에는 덕진돈대를 강제 점령한 미국 군사들이 주변지형을 살펴보고 있는 사진과 덕진돈대를 점령한 후 성조기를 게양하는 모습, 덕진진 앞쪽 해안가에 경비를 서고 있는 해군장교와 수병의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강화도를 하나의 섬으로만 여겼던 사람들에게 당시 역사적으로 강화도가 얼마나 중요한 군사적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각각의 포대마다 전시 같은 분위기였다. 조선시대 강화해협의 지키는 요새지 덕진진. 덕진진 게시판에는 밤을 틈타 이 덕진진을 통해 정족산성에 들어가 프랑스 군을 격파했다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덕진진 성문 공조루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덕진진을 지키고 있었다. 흥건히 젖어 있는 반달 모양의 남장포대 위에 깃발이 펄력였다.


태그:#덕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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