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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을 보고 나서 표충사로

천불전
 천불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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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는 두륜봉과 가련봉을 주산으로 하고 향로봉을 진산으로 삼아 골짜기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두륜산은 전체적으로 용이 웅크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흥사가 위치한다. 대흥사는 금당천을 경계로 북원과 남원으로 나눠지는데, 남원의 중심전각이 천불전이다.

천불전에는 말 그대로 천불이 모셔져 있는데, 부처님들이 모두 옥으로 만들어졌다. 이 옥불은 1813년 완호윤우선사가 건물을 중건하고 나서 6년에 걸쳐 조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부처님들에게는 가사가 입혀져 있다. 경상도 지역 신도의 발원으로 가사불사가 이루어졌고, 지금도 매 4년마다 옷을 갈아입힌다고 한다.

가사를 입은 옥불
 가사를 입은 옥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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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전에서도 역시 글씨가 중요한데, 현판과 주련이다. 현판 글씨는 원교 이광사가 썼는데 역시 삐뚤빼뚤하면서도 힘이 있다. 주련 글씨는 오인당 안규동이 썼으며, 예서체의 전형을 보여준다.

세존이 앉아계신 이 도량에        世尊坐道場
청정한 대광명 빛나니,              淸淨大光明
마치 천개의 해가 떠서              比如千日出
대천세계를 밝게 비추이듯 하네. 照耀大千界

천불전 뒤로는 주지스님이 거처하는 일로향실(一爐香室)이 있다. 그곳에는 추사가 쓴 현판이 걸려있다고 하는데 들어가 볼 수가 없다. 나는 발길을 자연스럽게 표충사(表忠祠)로 돌린다.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사당이다. 스님의 사당이 있는 절로는 사명대사의 사당이 있는 밀양 표충사와 이곳 대흥사가 유명하다.

표충사 영정과 제물
 표충사 영정과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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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에 이르니 서산대제가 끝나 행사 관련 물건들을 치우느라 한창이다. 그렇지만 사당 안은 진설된 제물이 그대로 있다. 앞줄에는 과일과 떡이 놓여 있고, 뒷줄에는 메와 전들이 놓여 있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이 있는 걸 보니, 절의 제물도 역시 시류를 타는 모양이다.

제물 뒤로는 세 조사 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 계신 분이 서산대사이고 좌우에 계신 분이 사명당(四溟堂)과 뇌묵당(雷黙堂)이다. 이들은 모두 임진왜란 시 의승군을 이끌었던 불교계의 지도자들이다. 사명당은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이고, 뇌묵당은 천명의 의승군을 이끌고 행주산성 전투에 참여했던 처영(處英)이다. 표충사 현판 글씨는 1789년 정조대왕이 친히 써서 내렸다.

표충비각
 표충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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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옆으로는 비각이 있는데, 이곳에는 1791년 홍문관 제학 서유린(徐有隣)이 찬한 서산대사 표충사 기적비(紀蹟碑)와 1792년 서산대사의 6세 법손 연담 유일(蓮潭 有一)이 찬한 표충사 건사사적비(建祠事蹟碑)가 세워져 있다. 서산대사 표충사 기적비는 서산대사의 승속(僧俗)에서의 활동과 업적을 기리고 있다. 여기서 속이란 임진왜란 시의 의승군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표충사 건사사적비에는 서산대사를 배향하는 표충사가 세워지기까지 과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조사전의 스님들
 조사전의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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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영역 내에는 조사전이 있다. 조사전이라면 큰스님들을 모셔놓은 집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그 절 출신으로 덕이 높은 스님의 영정을 모셔놓는 경향이 있다. 이곳에도 아도화상 등 16분 스님들의 모습이 3폭의 그림 속에 그려져 있다. 가운데에는 대둔사 창건주인 아도화상이 있고, 그 좌우에 서산대사의 문도인 소요태능과 편양언기 스님이 있다. 아도화상 아래에는 대둔사 초대 대종사인 풍담 스님이 앉아 있다. 그는 편양 스님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았다.

초의선사 이야기

초의선사 동상
 초의선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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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를 나와 성보박물관 쪽으로 가다보니 초의선사 동상이 나온다. 스님은 오른손으로 주장자를 들고 왼손으로는 염주를 잡은 채 앉아 있다. 스님 앞에는 찻사발이 놓여 있다. 1999년에 한국제다 대표 서양원이 세웠으며, 대둔사 주지인 보선 스님이 '초의선사의 발자취'라는 글을 지었다.

이 글에 따르면 스님은 네 가지 점에서 위대하다. 그는 먼저 대흥사의 13대 종사로 서산대사 이후 이어져온 법맥을 잇고 있다. 두 번째로 그는 사회사상가로 불교와 진보적인 유교사상인 실학의 교류를 가능케 한 분이다. 세 번째로 그는 차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찾은 사람으로 한국 차의 중흥조로 추앙받고 있다. 선과 차의 세계가 하나로 통하는 다선일미(茶禪一味) 사상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한국불교의 크나큰 전통이다.

넷째로 초의선사는 시·서·화에 능한 예술인이었다. 그의 문집인 <초의집>과 <동다송> 등에 그의 시적 경지가 잘 나타나 있다. 세속의 티를 벗어난 스님의 시문은 군더더기 없이 심오한 세계를 맑게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시를 좋아하는 나그네에게 차를 대접하고            淪茗且禮耽詩客
약 지어 서로 어여삐 여기는 스님들 위로하여       劑藥相憐問字僧
병석에서 일어나 옛날 시류 즐겼던 자취 찾아       病起還尋舊遊跡
시제를 던져 화답을 재촉하니 참으로 다정스럽다. 留題催和更多情

초의선사상
 초의선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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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는 한문과 산스크리트어 모두에서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특히 당시 최고의 명필 추사 김정희와 교유하면서 선필(禪筆)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초의선사와 추사는 1786년에 태어난 동갑내기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북한산 승가사에서다. 추사의 친구로 진흥왕순수비를 함께 판독한 동리 김경연(金敬淵)이 당시 한양의 승가사에 온 초의를 추사에게 소개한다.

처음 두 사람의 교유는 차 때문에 이루어졌지만, 이후 둘은 진리와 예술의 진정성을 찾으려는 삶의 자세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둘이 다시 만난 것은 1843년 봄이다. 초의가 제자인 소치 허유와 함께 제주로 유배를 간 추사를 대정현으로 찾아간 것이다. 이때 추사가 지은 시로는 '유초의선(留草衣禪)'과 '우사연등(芋社燃燈)'이 유명하다.

이 중 '유초의선'은 추사와 초의가 제주에서 함께 머물며 다담을 나누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초의는 차를 마시면서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여준다. 진정한 선을 차 속에서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우사연등'은 초의의 글씨가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우사는 자우홍련사로 대흥사 일지암에 있는 초의선사의 거처다.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자우홍련사: 1980년 복원되었다.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자우홍련사: 1980년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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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가 머물다.

눈앞의 흰 잔으로 조주차를 마시면서                                    眼前白喫趙州茶
부처님이 손안에 든 꽃의 의미를 오로지 미소로 답하네.           手裏牢拈梵志華
큰소리로 외친 뒤 귓속으로 차 마시는 소리 차츰차츰 들려오니  喝後耳門飮箇漸
봄바람 어드멘들 산가가 아니리오.                                       春風何處不山家

자우홍련사의 연등

초의 늙은 스님이 글씨를 쓰며 참선을 하는데         草衣老衲墨參禪
등잔 그림자 스스로 즐거운 듯 붓끝이 잘 돌아간다. 燈影心心墨影圓
등잔 불꽃 지지 않도록 내버려 둬                         不剪燈花留一轉
불 가운데 연꽃이 살살 피어오른다.                      天然擎出火中蓮

초의선사는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던 분이다. 그는 소치 허유에게 그림을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또 당시 대가들과 교유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녹우당을 찾아 해남윤씨 가첩을 볼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추사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기도 했다. 소치가 남종화의 시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 초의스님 덕이었다.

들어갈 수 없는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은 초의선사 동상 서쪽에 있다. 이 건물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서산대사 유물관으로 지어졌다. 당시 국난극복과 애국애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1998년 유물관 좌우에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 2동을 지어 성보박물관으로 확장되었다.

서산대사 교지
 서산대사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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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성보박물관을 중심으로 좌우에 청허당과 초의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표충사를 성역화하고 박물관을 열린 교육기관으로 거듭하게 하려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호국대전과 국민교육관을 건립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성보박물관에는 들어갈 수가 없다.

성보박물관에는 금란가사(金襴袈裟), 옥발(玉鉢), 신발, 수저(匙箸), 교지(敎旨) 등 서산대사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대둔사지, 대둔사 사적, 만일암지 등과 같은 사적류가 있다. 또한 탑산사 동종(보물 제88호)과 진불암 대종 등 범종이 있다. 그 외에도 준제관음도, 11면40비관음보살도, 대양문 범왕탱 등의 불화류가 전시되어 있다.


태그:#천불전, #표충사, #서산대사, #초의선사, #성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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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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