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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 지방에 폭우가 쏟아졌던 지난 주말(17일)은 셋째 누님의 고희(古稀) 기념일이었다. 해서 각지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과 조카들 합해서 28명이 인천시 강화군 내가면의 모 펜션에 모여 1박 하면서 누님의 고희를 마음껏 축하하고 형제애도 나누었다.

펜션 정원에서 바라본 강화도 전경. 숲속인 이유도 있었지만, 비가 내린 후여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이 맑고 시원했습니다.
 펜션 정원에서 바라본 강화도 전경. 숲속인 이유도 있었지만, 비가 내린 후여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이 맑고 시원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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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누님 칠순 잔치 모습. 장조카가 사촌들이 이날 모이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셋째 누님 칠순 잔치 모습. 장조카가 사촌들이 이날 모이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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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의 고희 행사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10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던 조카들의 '사촌 모임'이 외환위기와 자녀교육 문제로 중단되었다가, 셋째 매형이 돌아가시던 작년 11월 새롭게 부활하여 1월에 총회를 열고 상반기 모임을 셋째 누님 고희에 맞춰 열었기 때문이었다.

조카들의 '사촌 모임'은 당연히 부부동반이며 1년에 2회씩 정기모임을 가진다고 하는데, 결혼한 사촌은 정회원, 미혼은 준회원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1기에서는 남자 조카들이 회장·총무를 맡았는데, 작년에 부활한 2기는 모두 여성으로 바뀐 것도 재미있었다.

다른 때와 달리 모임 날 먹을 떡과 돼지고기, 누룽지, 라면 등 모든 음식재료를 각자 분담해서 준비해 온 것도 흥미를 끌었다. 참여의식을 높이고 책임감을 주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미혼인 딸은 봉지 커피를 배정받았다고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누님 넷 중에 손맛이 가장 좋았던 셋째 누님은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음식 만드는 일을 도맡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누님의 손을 거쳐야 맛있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는데, 이번 고희 때도 떡, 양념 돼지고기, 시래기 된장, 열무김치, 미역국 등을 준비했다고 한다.

옥에도 티가 있다고, 즐거운 자리에 보이지 않는 조카들이 여럿이어서 못내 아쉬웠다. 4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펜션을 예약했다는데 생업에 종사하거나 궂은 날씨 때문으로 짐작되었다. 특히 형제들 모임을 유달리 좋아하던 막내 누님이 항암치료를 받느라 참석하지 못해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작은아들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참석해서 위로가 되었다. 

조카들 모임은 80년대 중반에 처음 알았다. 당시엔 고맙고 부럽기만 했다. 휴가를 같은 날짜에 잡아 이모와 외삼촌들을 초청해서 함께하는 피서 프로그램을 짰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시골 친척집이나 휴양지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는 게 고작이었지만 고마웠고, 다른 형제들과 달리 딸 하나를 두고 있어서 더욱 부럽게 보였는지 모른다.

누님 넷과 형님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자녀를 셋씩 두었고, 필자와 동생은 하나씩 두어서 조카가 모두 16명이며 대부분 40-50대이다. 현역으로 복무 중인 20대 막내 조카야 그렇다 치지만, 쉰여섯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장조카(큰 누님 큰아들)는 너무 겸손하고 빈틈이 없어서 답답할 정도다.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데···.

곱던 신부가 고희라니, 놀라울 따름

51년 전 전통혼례식을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 무척 곱고 예쁘던 신부가 고희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51년 전 전통혼례식을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 무척 곱고 예쁘던 신부가 고희라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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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누님이 열아홉 살이던 1959년 늦가을 고향 집 앞마당에서 많은 친지와 동네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고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이렇게 앳되고, 예쁘고, 고왔던 누님이 할미꽃처럼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되어 고희를 맞이하다니, 유수 같은 세월에 놀라울 따름이다.

엄한 부모 밑에서 문밖출입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14살 때부터 밥을 해먹으며 방에서 어른들이 하는 혼담을 훔쳐 듣다가 이름도 성도 모르던 남자를 만나 약혼사진을 찍고, 결혼식을 올렸으니 가슴이 얼마나 콩닥거렸을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신혼여행은 꿈도 못 꾸었던 누님은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는데, 2년 사이에 이사를 네 번이나 다닐 정도로 살림이 옹색했다. 빚을 얻어 겨우 장만한 가게가 딸린 집(13평)은 비가 조금만 내려도 양동이와 함지박을 대여섯 개씩 구해다 받혀놓는 게 일이었고, 집안에 화장실이 없어서 아침마다 동네 공동변소를 이용해야 했다.

본래 성격이 쾌활하고 낙천적이었던 누님은 3부 이자로 빚을 갚아나가면서도, 이용업에 종사하는 남편(셋째 매형) 수발에 지극정성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의 머리를 만지는 사람은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야 헌다"고 하니까, 돼지고기 150g을 사서 네 조각으로 나눠 작은 양은냄비에 김치찌개를 끓여 매형만 드렸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겨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집에서 누님 집까지는 꽤 멀었다. 그래도 용돈을 얻어 쓰는 재미로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고 다녔는데, 누님이 준 돈으로 군산극장에서 '성웅 이순신' 영화를 관람했던 기억도 새롭다. 단체관람은 학교에서 많이 했지만, 처음으로 입장권을 구입해서 관람한 영화여서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셋째 누님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가난과 싸운 보람이 있어 71년에는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그 자리에 건물을 새로 지었고, 집 평수도 조금씩 넓혀나갔는데, 자식들(2남1녀)이 하나같이 착하게 자라주어 주위 사람들에게 자식농사 잘 지었다고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인연으로 마련된 자리"

케이크를 자르는 모습. 축하송을 부르고 케이크를 잘랐는데요. 누님 둘이 어찌할 줄을 모르니까 형님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케이크를 자르는 모습. 축하송을 부르고 케이크를 잘랐는데요. 누님 둘이 어찌할 줄을 모르니까 형님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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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강화도 내가면 모 펜션에서 촬영한 셋째 누님 고희 기념사진. 펜션을 출발하기 직전인데요. 20대 전·후반의 조카손녀 몇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천시 강화도 내가면 모 펜션에서 촬영한 셋째 누님 고희 기념사진. 펜션을 출발하기 직전인데요. 20대 전·후반의 조카손녀 몇이 보이지 않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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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누님 칠순 잔치는 각자 준비해온 음식을 상에 차려놓고 인사말에 이어 건배, 축하송, 케이크 커팅 순으로 이어졌는데, 장조카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인연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이 자리는 순창 조(趙)씨 외할아버지와 여흥 민(閔)씨 외할머니의 인연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뵈어왔는데 이웃과의 화합과 남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가슴이 유전적으로 내려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인연이 모이고 합해져 오늘처럼 이모님 칠순을 기념하게 되었는데, 촛불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인사말을 마친 장조카가 "제가 '이모님 칠순을' 하고 선창하면 여러분께서는 '축하합니다!'로 답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기에 필자가 "제헌절에 치러지는 뜻있는 행사라서 방송 삼사가 중계방송을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는데, 우천으로 취소되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해서 잠시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장조카는 지난 5월 말에 돌아가신 어머니(큰 누님) 생각이 나는지, 초급 공무원 시절에 이모님 세분이 무척 예뻐했고, 사랑도 엄청 받아 지금 생각해도 행복하다며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얻은 교훈인데, 사람은 무조건 오래 살아야 하겠더라고요!"라면서 이모(셋째 누님)의 건강과 장수를 빌었다. 

평택 막내 누님 집에서

8일(일) 저녁 평택 막내 누님 집 거실. 사람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타고나서인지 18일 저녁에도 다시 모여 소주와 떡국 파티를 벌였습니다.
 8일(일) 저녁 평택 막내 누님 집 거실. 사람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타고나서인지 18일 저녁에도 다시 모여 소주와 떡국 파티를 벌였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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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뜻있는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에 누룽지를 먹으며 형수에게 내려가는 길에 평택 막내 누님 집에 들러 수박이나 한 통 잘라먹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러잖아도 형님이랑 동생이랑 약속되어 있다고 했다. 

막내 누님 집에 들르기로 했다는 형수 얘기를 들으니까, 조카들과 헤어지는 마당에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오전 내내 숲의 맑은 공기를 흠뻑 들여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가 점심 때 라면을 끓여 먹고 12시 30분쯤 평택으로 향했다. 

출발 두 시간 후인 오후 2시30분쯤 막내 누님 집에 도착했는데, 매형과 누님이 마당까지 나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면서도 화단의 온갖 꽃들과 텃밭의 호박, 고추, 깻잎 등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무농약으로 재배한 싱싱한 채소를 조금 가져가야겠다고 하니까 매형이 고추를 한 소쿠리나 따놓았고, 아내는 상추와 호박잎을 따기 시작했는데, 잠깐 사이에 따온 호박잎, 깻잎, 고추가 얼마나 많은지 몇 집이 나누었다. 

 막내누님 집 앞마당. 잔디에 자리를 깔고 누워 밤하늘을 구경하며 탄성을 지르는 아내가 제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텃밭에 꽂힌 삽이 이채롭습니다.
 막내누님 집 앞마당. 잔디에 자리를 깔고 누워 밤하늘을 구경하며 탄성을 지르는 아내가 제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텃밭에 꽂힌 삽이 이채롭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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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니까 강화도에서 만났던 조카들 7-8명이 다시 모여 셋째 누님을 중앙에 앉히고 간단한 소주 파티가 벌어졌다. 저녁에는 떡국을 끓여 먹고 마당으로 나가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구경했는데,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아내는 "아 좋다!"라고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마음 같아서는 조카들과 어울리며 하룻밤 더 묵고 싶었다. 그러나 막내 누님이 아침 일찍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해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있었으나 의미 있고 보람도 있었던 1박 2일이었다.


태그:#셋째 누님, #고희,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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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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