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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벌써 시골 내려갈 짐을 꾸리느라 바쁘다. 예년보다 긴 한가위 연휴를 앞두고 아이 셋과 우리 부부. 다섯 명이 갈아입을 옷과 양말, 속옷까지 챙기니 옷가방만도 큰 것이 두 개나 된다.

여기에다 한가위 명절 나흘 전, 아버지 제사와 한가위 차례 음식 때 쓴다며 시장 보아 온 물품들, 막내 아이가 한시도 놓지 않는 인형, 차 안에서 먹을 음료와 과일·과자, 그리고 어머니와 처가·일가친척을 세세히 따져가며 양말 한쪽이라도 정성이라며 준비한 선물 보따리들까지. 사정 알리 없는 사람이 보면 이삿짐을 싸는 것 같다.

이게 차 트렁크에 다 들어가기나 할까? 매년 일년에 두 번. 설과 한가위 명절, 아내와 나는 가져갈 짐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좀 덜 가져가자는 나와 꼭 필요한 것만 챙겼다는 아내. 차가 출발할 때까지 줄다리기다. 특히나 이번에는 긴 연휴로 일주일이나 넘게 집을 떠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짐은 더 많을 수밖에 없고, 아내와 나의 실랑이는 더 치열할 것 같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 아내, 제사때 마다 조마조마

추석 차례상
 추석 차례상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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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내는 제사상 그림을 그려 주고, 올라가는 음식을 알려 달랜다. 연휴 전 18일이 아버지 제사인데, 큰 아이 학교 마치고 서울에서 출발하면 시골에 도착해서 음식할 시간이 없기에 이번에는 동서들과 역할 분담을 해서 조금씩 음식을 만들어 가자는 이야기가 오갔간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제사 음식을 구경 한 번 한 적 없는 아내가, 유교 집안 맏며느리로 들어와 이제는 제사 음식을 만들어 가겠다고 하니, 세월이 사람을 많이도 바꾸어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결혼하고 아내가 제사 음식을 못 만지겠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적지 않았다(내 주변에는 이런 경우, 부부 갈등을 넘어 고부 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아내는 우리 가족 먹을 음식인데 뭐 어떠냐고 결혼한 첫 해부터 팔을 걷고 나서, 나와 어머니의 걱정이 한낮 기우였음을 일깨워 주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어머니 눈에 들게 잘한 건 아니었다.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라갈 음식은 나름의 형식이 있기 마련인데 아내가 이런 것을 알 턱이 없었다.

'떡과 전은 사각 제기에 높고 쌓고, 조기나 생선은 자르지 말고 통째로 올리고, 과일은 홀수로 올린다…' 이런 류의 형식은 제사를 모시는 집안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제수로 올리는 음식과 피해야 하는 음식이 다른데, 갓 시집 온 아내에게 이런 형식은 적응하기 힘든 난제 중에 난제였으리라.

더구나 시어머니가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조기 올려라", "육탕, 채탕, 어탕 준비해라" 이런 식이니, 방안에서 지방을 쓰고 제사상을 진설(제사상을 차리는 것)하는 나조차도 부엌의 아내가 실수를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머리 꼬리 잘린 조기가 제사상에, '허걱'

한번은 조기가 제기에 담겨 방안으로 들어왔다. 동생이 들고 들어온 제기를 받아 상위에 올리려던 나는 제기에 올려진 조기를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야말로 먹기 좋게, 대가리와 꼬리는 잘려서 없고 몸통만 두 조각으로 잘린 채 누워 있는 것이다.

'아. 어떡한다. 저걸 제사상에 올릴 수는 없고, 조기 없이 제사상을 차릴 수도 없고.'

순간적으로 어머니와 난감해 할 아내의 얼굴이 교차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니. 조기를 이렇게 올리는 게 어디 있나? 이게 뭐여" 내가 오버해서 '버럭' 지르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와 아내가 달려 왔다.

어머니의 낭패감이 얼굴에 역력하다. 아내는 그때까지도 뭐가 잘못 되었는지 모르는 눈치다.

"됐다 그만해라. 너 아버지한테 조기 몸통만 드시라 해라."

결국 토막난 조기를 올리고 제사를 모시고 아내의 대형사고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제사형식을 몰라서 일어나는 사고(?)는 비단 아내뿐만은 아니었다. 두 분의 제수씨가 우리집에 시집 와서 제사 음식을 만들 때도 웃을 수밖에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이 있어왔다.

제사상에 올라오는 사과가 껍질을 모두 깎인 채 올라온 것도 제수씨의 작품이었다. 하긴 제사 음식을 만드는 것부터 진설하는 모든 과정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는 기본이고 탕은 반드시 삼탕(육고기, 어물, 나물)이 있어야 하고 나물도 3가지가 올라가야 하고, 기제사는 절을 몇 번하고, 차례는 절을 몇 번하고.

이러한 과정들은 시집온 며느리들 뿐만 아니라, 제사를 주관하는 나에게조차도 종종 헷갈리는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때 마다 이제는 칠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그만하면 됐다. 이렇게 많은 손자 손녀가 술 올리고 절하는데 할애비가 얼마나 좋아 하겠냐?"며 시대가 바뀌고 그 어려운 걸 다 지켜내기도 힘드니 정성이 우선이라고 자식들에게, 손자 손녀들에게 이야기하신다.

사람 사는 재미, 충분히 누리고 왔으면

올해도 어김없이 민족의 대이동에 내가 빠지면 어떡하냐는 듯 사람들은 고향으로 향한다.주머니가 넉넉지 않더라도, 가는 길은 고생스럽더라도 '사람 사는데 이런 재미도 없으면 어떻게 사냐'며 길을 나서는 사람들.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이 며느리들을 괴롭힐지(?) 모르겠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힘주고 힘 받아오는 귀향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향집 거쳐 처가에 들러오는 모처럼의 긴 여행.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비타민 같은 활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태그:#한가위, #역귀성, #민족 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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