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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지도는 선생님의 '연장'

좋은 교사는 잘 가르치고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해 보이며, 위대한 교사는 가슴에 불을 지핀다고 한다. 교단 경력 30년이 다 된 나는 욕심 많게도 위의 세 가지를 다 가지려고 욕심을 내며 산다. 열정이 사라진 인간이야말로 죽음의 문턱에 서 있기 때문이다.

잘 가르치고 본을 보이며 가슴에 불을 지피는 도구로 '아침독서지도'는 교사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바로 정신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학급 경영 특색은 언제나 '천 권 읽기'이다.

우리 반 학급 특색은 해마다 '좋은 책 천 권 읽기'

학교는 탐구하는 곳이다. 그 탐구의 대부분은 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느 나라,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독서는 탐구하는 자의 필수 덕목이다. 그럼에도 독서를 소홀하게 생각하고 오락 중심으로 흘러가는 세태를 보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오랜 교직 경험에 비추어 보면,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즐겨 읽는 아이들에게는 별도의 인성 교육이나 꾸지람이 필요 없다. 그 아이들 대부분은 매사에 신중하게 생각하는 아이, 창의성과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 깨달음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3월 첫 날부터 아침독서를 시킨다. 첫 단추를 잘 꿰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인 나부터 아침독서 시간을 철저히 준수하는 일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아침독서 운동은 형식에 그치고 성과가 없다. 학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성과가 없다. 아이들보다 늦게 출근하여 인사하며 아이들의 독서를 방해하는 선생님, 아침부터 공문처리 하느라 들락거리는 선생님 반의 독서 실태는 연중 실패작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침독서 시간에 우리 교실은 도서실

언제나 내가 맡은 반은 아침독서 시간은 교실이 도서실이 된다. 친구나 선생님을 향한 인사도 목례에 그치거나 발소리를 내는 일,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조심해야 한다. 책을 뽑으러 다니는 것도 안 된다. 전날 가기 전에 학교 도서관이나 학급문고에서 3권을 미리 뽑아서 책상 위에 두고 가기 때문에 아침 독서를 바로 시작할 수 있게 했다.

근본적으로 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은 없다. 책의 달콤함과 깨달음에 이르는 앎의 기쁨을 맛보는 기회를 맞지 못한 아이들은 다소 늦게 아침독서의 기쁨에 몰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우리 반은 초등학교 2학년이다. 상상력과 창의성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시기이다. 동화를 즐겨 읽고 아름다운 상상을 즐기는 단계이기에 아침독서운동은 다른 모든 교과 공부보다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량시간 독서발표-나도 심사위원

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읽은 책의 제목만 기록하게 하고 집에 가서도 하루 한 권은 읽기 숙제를 낸다. 이러한 활동을 1년 내내 계속하면 천 권 읽기는 충분히 해낸다. 100일 쯤 지나면 아침 수업 시작조차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독서의 기쁨에 빠진 아이들은 교과서 공부보다 책을 더 좋아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단계까지 간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틈만 나면 책을 들고 있음을 본다. 내가 바라던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며 혼자서 무릎을 치며 기뻐하는 단계이다. 그렇게 읽은 책들은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재량 시간을 활용하여 1주일에 한 시간씩 독서발표회를 열어 왔다. 이것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른 시간은 놓치고 안 해도 아무 말 하지 않지만 매주 금요일 5교시에 이루어지는 학급독서발표회 시간만은 꼭 지켜야 한다.

그냥 듣는 게 아니라 각자 심사위원이 되어서 주어진 항목에 따라 발표하는 친구에게 점수를 주기 때문에 누구 하나 소홀하게 듣지 않는다. 이제는 조리 있게 발표하고 생동감 있게 발표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 권 발표도 부족해서 자꾸만 발표하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들까지 생겨났다.

나비 효과를 가져 온 아침독서운동

우주의 신비만큼이나 신비로운 뇌를 확장시켜주는 독서는 취미가 아닌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게 나의 소신이다.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이고 앎의 근본인 독서는 신세계로 안내해 주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배운 것은 돌에 새겨지고 어른이 되어 배운 것은 얼음에 새겨진다는 말처럼 스펀지처럼 유연한 뇌를 지닌 어린 시절의 독서는 평생을 풍요롭게, 행복하게 스스로 탐구하며 자신의 길을 가게 하는 최선의 길이, 아침독서라고 생각한다.

내 반 아이들은 이제 겨우 2학년이지만 충고나 훈계만으로도 교육이 가능하여 매를 들거나 체벌을 할 필요조차 없다. 그것은 모두 아침독서운동이 가져온 '나비 효과'이자 '동료 효과'이다. 학급에서 책을 잘 보는 아이들의 행동을 칭찬하면 그 아이를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가 보는 책을 빌려서 읽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혹시 충고를 하거나 예화 자료를 인용할 때에도 책에서 가져온 글을 인용하면 설득력이 높아진다. 아침독서운동으로 차분해진 아이들은 싸우거나 큰 소리를 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세를 배운다. 아침독서 시간에 배운 조용함과 배려의 정신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조용한 아침 시간에 아름다운 음악 속에서 몰입하여 책을 읽는 동안, 열린 마음이 되었으니 그 다음에 이어지는 교과 공부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선순환을 일으켜 행복한 교실이 되었다.

선생님도 만 권 읽기 프로젝트

읽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절반을 잃어버리는 것(찰스와 도로시)이라고 했다. 아침독서운동의 효과는 지대하다. 글쓰기 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지고 독해력이 우수하여 길고 난해한 지문도 잘 읽는다. 국어를 잘 하니 다른 교과는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아름답고 사려 깊은 문장으로 깨달은 열린 가슴은 감성이 풍부하여 인성 교육이 따로 필요 없게 되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깊고 넓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차분해지고 교실이 조용해지며 자기통제력이 높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체벌조차 필요없다.

이렇게 중요한 아침독서운동이지만 문제는 환경이다. 아침마다 학습지를 푸는 학급, 마냥 떠드는 아이들, 한자를 쓰는 학급, 악기를 부는 학급, 심지어 청소를 하는 학급에서는 책 읽는 아이들 모습을 보기 어렵다. 담임선생님이 책 읽기를 즐겨하지 않는 학급에서는 아이들도 그렇다. 몸으로 보여주는 교육의 효과만큼 큰 것이 없다. 그래서 나부터 독서해야 한다는 게 교사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담임인 내가 읽을 책을 쌓아 놓고 독서록을 쓰며 10년 동안 <만 권 읽기>프로젝트를 보여 주었을 때, 감탄하던 아이들이었다.

방학 동안 아이들과 시합을 하기로 했었다. 누가 더 많이 읽고 오는지. 방학 날 선물로 준 것도 달력모양 독서수첩이었다. 날마다 읽은 책 제목을 쓰고 책 속에서 감동 깊은 문장을 하나씩 쓰며 일주일에 한 편은 독후감을 써서 나의 독서수첩과 비교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꾸준히 했던 지난해에는 학급에서 국어 실력이 가장 처진 아이가 약속대로 천 권을 읽어내며 국어를 제일 잘하는 아이로 선발되었고 군 교육청에서 최고 독서상을, 도교육청에서 다독상을 받으며 아침독서운동의 효과를 눈으로 보여주었다.

인생의 비극은 실제로 죽는다는 사실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서 감정, 열정, 공감 등이 죽는다는 데 있다고 한 슈바이처의 말에 동의한다. 내가 가르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나의 감정과 열정, 공감을 전하는 교육 활동의 초석은 바로 아침독서운동이다.

소풍가는 날 아침에도, 방학식을 하는 날 아침에도, 운동회를 하는 날 아침에도 변함없이 8시부터 시작되는 아침독서운동으로 하루를 여는 게 일상이 된 나의 아이들과 교실을 사랑한다. 나는 앞으로도 교단에서 내려서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 위해 '아침독서운동'의 불씨를 힘차게 당길 것이다.

다시 가을이다. 이 나라의 모든 교실에서 선생님과 제자들이 사랑스럽게 책을 읽는 모습이 유행처럼 번져서 아름다운 마음의 단풍이 들기를 빌어본다. 좋은 책의 불씨로 아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을 질러서 인생을, 자신을 뜨겁게 사랑하기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아침독서, #교육,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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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에는 사랑이 없다>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쉽게 살까 오래 살까>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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