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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이때는 다니기가 좋은 계절이다. 경북 김천의 비지정 유적을 찾아 지난 16일 황금들판을 가르며 길을 떠났다.

가을들판은 늘 정겨운 가을 풍경이다.
▲ 가을들판 가을들판은 늘 정겨운 가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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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아포읍 송천리 숭산 마을 입구 농어촌 공사의 숭상저수지 제방에 선비 모습을 한 문인형 석상이 있는데 손에 홀을 든 관복 차림으로 단정한 모습이다.

숭상리 석상 1구는 숭상저수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 숭상리 석상 숭상리 석상 1구는 숭상저수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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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약 100m 떨어진 개인 집 앞으로 1구를 옮겨 놓은 석상이 또 있다고 하나 정보 부족으로 인하여 뒤 늦게 안 사실이다. 마을의 수호신처럼 아마 어디에서 옮겨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개령면석물은 개령면사무소에 주변으로 있다.
▲ 개령면석물 개령면석물은 개령면사무소에 주변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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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령면 사무소에도 많은 석조물들이 흩어져 있다.

개령면사무소내 석상
▲ 개령면사무소내 석상 개령면사무소내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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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와 문인석과 무인석 한쌍 그리고 각종 비석군이 인근 개령 초등학교 입구에 하마비와 함께 줄지어 서 있다.

개령면사무소내 귀부
▲ 개령면사무소내 귀부 개령면사무소내 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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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령면사무소 주변 비석군
▲ 개령면사무소 주변 비석군 개령면사무소 주변 비석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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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당 마을의 석불

어모면 옥계리 미륵당 마을에 석불이 있는데 예전 기억을 더듬어 찾았는데 지형이 다소 달라진 것인지 주변을 헤매이다가 찾았다. 여전히 홀로 계셨는데 머리 오른쪽과 우측 어깨, 좌측 팔 일부가 결실되었고 아래 부분은 매몰되어 있는 상태다.

옥계리 석불입상은 이제 찾아가기 쉬운 버스 종점 인근에 있다.
▲ 옥계리 석불입상 입구 옥계리 석불입상은 이제 찾아가기 쉬운 버스 종점 인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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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리 석불입상은 비지정이나 관리가 되는지 주변은 정비되어 있다.
▲ 옥계리 석불입상 옥계리 석불입상은 비지정이나 관리가 되는지 주변은 정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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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우수한 불상이다.

잊혀진 석탑

봉산면 태화1리 가막마을 가막사지라 전하는 곳에 석탑이 있는데 현재 과수원내에 위치해 있다. 기단부와 상대갑석, 5매의 지붕돌과 3매의 몸돌이 중첩되어 있으며 윗부분은 결실되어 있다. 여러 부재들이 섞여 조립된 느낌이며 주변 맞은편 마을에 석조보살입상이 있다.

태화리 석탑은 비지정이라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있다.
▲ 태화리 석탑 태화리 석탑은 비지정이라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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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계 율수재

봉산면 인의리 율수재는 성종시대 성리학의 대문장가인 문장공 매계 조위(梅溪 曹偉, 1454~1503)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유허지에 유업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학문소다. 1정면 4칸, 측면 2칸의 ―자형 건물로 중앙 2칸에 4칸통 대청을 놓고 그 좌측에는 각 1칸씩의 마루와 온돌방을 앞뒤로 배열하고 우측에는 2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율수재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진 곳에 있다.
▲ 율수재 율수재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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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처마 밑의 현판 글씨 매계구거(梅溪舊居)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라 전한다.

율수재 입구 귀부
▲ 율수재 입구 귀부 율수재 입구 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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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는 재미난 모양의 귀부가 있는데 눈과 특히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참 재미난 표현이다.

김천시내 유적

남산공원 입구와 김천초등학교 우측 담장에는 비석군들이 줄지어 있다. 김천 문화원 입구
야외에도 석조물들이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잘 보기 어렵다.
석불과 석탑 부재들이 있는데 다들 특이한 형태이다. 석탑의 몸돌 한면에만 불상을 조각한 것인데 비로자나불의 불상이다.

김천 문화원 석탑부재
▲ 김천 문화원 석탑부재 김천 문화원 석탑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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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황금동의 개운사 명부전 내에는 목조도명존자상과 목조무독귀왕상, 목조십왕상과 함께 봉안되어 있다. 1685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며 청암사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극락전은 2005년 10월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을 새로 지은 건물로 원래는 내부에 쌍계사지에서 옮겨온 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목아박물관 박찬수 선생의 목조아미타삼존이 새로 모셔져 있다.

개운사 생사리비
▲ 개운사 생사리비 개운사 생사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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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사 생사리비는 '1924년에 부인의 오른쪽 윗니가 아프더니 사리 1과가 나왔다. 녹두 크기에 영롱한 푸른 빛깔로 갈아도 갈리지 않고 물에 띄우면 가라앉지도 않고 한자리에 정지해 있지도 않았다'고 비문에 적고 있다. 개운사 이춘담 스님이 그 사리를 목격하고 관계스님들과 의논하여 동화사 대구포교소에 사리탑을 세워 봉안하는 한편 이곳에는 사리비를 세웠다. '靑信夫人淸淨空李氏生舍利碑'라 새긴 비이다.

과하천

김천에는 예부터 금이 나는 샘이 있어 금지천 즉 김천이라 하였는데 그 샘물로 술을 빚으면 맛과 향기가 매우 좋아 주천이라 불렀다. 그 샘이 지금의 과하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 물로 빚은 김천 과하주는 전국에서 이름 나 있다.

과하천은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다.
▲ 과하천 과하천은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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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에 샘 뒤에 금릉주천이라고 돌에 새겨 세웠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김천 외곽지역으로 이제 발길을 옮긴다.


태그:#과하천, #개운사, #김천문화재, #개령면 석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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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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