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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과거에 군사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을 간직한 고장. 이 고장을 방문해서 마냥 들뜬 기분으로 돌아다니면 안 될 것 같다는 글을 읽었다. 하지만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계절에 강화도에서 바다와 길을 만나는 순간, 한 자그마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생각난 건, 그리고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는 건 나의 자그마한 욕심 때문일 것이다.

 

코스모스를 좋아해 가을이 오면 단풍이 아닌 코스모스를 찾아다니는 한 남자아이, 바다가 걱정과 아픔 등 모든 것을 받아준다고 생각해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것을 좋아했던 한 여자아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김정은의 '회상'이란 노래가 지난 10월 23일 강화도 호국돈대길을 걷는 나를 회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곁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난 후 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네……." (김정은 <나는 전설이다> 회상 첫 소절)

 

남자아이는 같은 동네에 살며 같이 멱을 감던 친구였다. 그런 아이에게 첫사랑이 찾아왔다. 오랜 기다림이 있었기에 더욱 아련한 그런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행복했던 기억도 잠시. 그 후 남자아이가 가장 좋아하게 될 코스모스가 피는 계절에 남자의 자격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입대를 하게 되었다. 입대 후 이야기는 다른 연인들과 같다.

 

여자아이는 그를 떠올리며 보고 싶어 할 때마다 편지를 썼고, 그 속에는 항상 코스모스가 그려져 있었다.

 

한 통, 두 통, 세 통…… 백 통, 천 통 편지는 계속되었고 코스모스는 항상 함께였다. 보라색 코스모스를 보는 내내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편지 속의 코스모스를 보는 것이 그의 보편적인 하루였다.

 

 

여자아이는 바다를 좋아하였다. 드넓은 바다를 보면 모든 시련과 아픔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기쁘면 기쁘다는 이유로 슬프면 슬프다는 이유로 사계절 내내 바다를 찾았다. 그런 이유로 이들의 데이트는 매번 바다를 찾아가 그 주변을 걷는 것이었다.

 

해운대, 경포대, 남해, 강화도 등 전국의 바다를 찾아가 그들만의 추억을 남겼다. 바다를 바라보며 손을 잡고 백사장을 거닐던 추억이 그들이 가진 기억의 전부였다.

 

같은 시기에 사귀었지만 오랜 시간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못했던 나에게는 내 친구의 사랑이야기가 한여름 밤의 꿈과 같았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도, 그리고 종종 만나서 통화할 때도 먼저 여자 친구의 안부를 물으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가 여자 친구랑 알콩달콩 지내는 소식을 들으면 부러운 마음이 가득 차 마음은 행복함으로 물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친구에게서 사랑에 대한 환상을 보며 살아갔는지도 모른다.

 

5년째 되는 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와 헤어졌다고, 친구도 충격이었지만 나도 충격이었다. 술이 우리를 마시는 시간이 이어졌고 술김에 궁금했던 나는 헤어진 이유를 물었다.

 

친구는 담담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라고 말했고, 주위에는 적막감만이 가득했다. 친구에게서 연애에 대한 환상을 키웠던 나였기에 사회란 벽에 부딪혀버린 친구의 말에서 나 또한 그 벽을 느끼고 세상이 조심스러워졌다.

 

 

"마음은 얼고, 나는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네. 마치 얼어버린 사람처럼, 혼자 놀라 서 있던 거지. 달빛이 숨어 흐느끼고 있네." (김정은 <나는 전설이다> 회상 두 번째 소절)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계절 강화도 호국돈대길에 발이 닿는 순간, 친구가 떠오른 것은 아마 내 기억 속의 회상일지도 모른다. 코스모스, 바다, 그리고 해안산책로라는 것들이 친구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만들었기에.

 

한여름 밤의 꿈이 되어버린 그들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사라진 나의 사랑에 대한 환상,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저 넓은 바다처럼 이 세상에는 더 좋은 사람이 많다고, 그리고 나에게도 말하고 싶다. 친구의 이야기가 너에게 일어나진 않을 거라고, 그리고 열심히 살다 보면 단 하나의 짝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덧붙이는 글 | 네이버 블로그에 실리며 
다른 잡지사 웹사이트에도 실립니다.


태그:#강화도, #호국돈대길, #인천여행, #코스모스,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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