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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홍진표씨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언론보도를 보니 그의 경력 가운데 두 가지 점이 확연히 눈에 띈다. 그 하나는 그가 이른바 '주사파'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전향'하여 '북한인권'을 위해 애써 온 이라고 하는 점이다.

 

순진하게만 본다면, 아마도 이러한 공로를 높이 산 한나라당이 자기 몫의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자리를 선뜻 내준 게 아닌가 짐작할 수도 있겠다. 한나라당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친북좌파적 성향 때문에 북한 인권에 관하여 침묵했다고 줄기차게 비난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순진하게만 본다면'이라는 전제를 굳이 단 이유는, 아무래도 그가 인권위의 고위직(차관급이다!)을 내정 받은 데에는 단지 '북한인권' 활동 때문이 아니라는 심증이 짙게 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 북한인권 전문가는 숱하게 널려 있고, 그 중에서도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보수인사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 많은 북한인권 전문가들를 제치고 왜 하필 홍진표씨인가 말이다. 그가 북한인권에 관한 한 다른 전문가들에 비해 탁월한 전문성을 가졌다는 증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이 정권과 입장을 같이하는 정치적 입장 개진에는 꽤 열심이었던 것 같다.

 

한나라당이 홍진표씨를 내세우면서 명분으로 내건 국가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 강화란, 우선 이런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요컨대 홍진표씨의 인권위 상임위원 내정에는 북한인권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가 정권의 주변인은 될지언정 북한인권 전문가라는 데는 고개가 갸웃거려지기 때문이다.

 

인권위 상임위원 홍진표, 제2의 현병철

 

그렇다면 왜 한나라당은 홍진표씨를 선택했을까? 언론이 전하는 그의 이력 가운데 눈에 띄는 또 다른 하나가 그 답을 말해주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 비서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다 여권내부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관은 행정부의 장·차관과도 또 달라서, 그야말로 정권핵심의 복심을 읽고 충성심으로 무장한 사람이나 할 수 있고, 하는 자리이다. 말이 좋아 참모지, 때로는 정권의 '돌격대'도 마다하지 않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평소 홍진표씨가 가진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의 정도를 충분히 헤아릴 수 있게 한다.

 

말로는 북한인권이니, 보수니 내세우지만, 한나라당이 홍진표씨를 내정한 배경에는 정작 이 '코드'가 핵심요소가 된 것이다. 정권이 청와대 비서관이나 장·차관에 대해 코드인사를 하는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최소한의 업무연관성과 전문성을 전제로 해야 인사권 남용 논란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독립성이 생명과도 같은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해서까지 코드인사를 하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나는 홍진표씨가 적어도 주사파에서 전향한 이래 국가인권위원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10조 내지 22조에 보장된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보장을 위해 무슨 기여를 했는지 들어 본 적이 없다(한편 그가 전향 전 강제징집되고 투옥된 것은 오로지 주체사상 신봉자로서 종북주의 활동할 때 벌어진 일로서 그 자신이 이에 대해 크게 반성하고 전향한 것인 만큼, 이것을 인권과 민주주의 운동경력이라고 강변한다면 그의 당시 주사파 활동이 정당화되는 모순에 빠진다).

 

또한 성,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학력, 병력 등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 가운데 어느 하나를 자기 전문분야로 삼아 그 예방과 시정을 위해 무슨 활동을 했다는 얘길 역시 들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홍진표씨는 일찍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됐을 만큼, 대통령과 코드를 같이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인권위의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코드인사를 한나라당이 강행한다면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인권위원으로 임명하도록 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2항의 규정을 현병철 위원장에 이어 또 한 번 명백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결국 제2의 현병철 사태가 촉발되는 셈이다. 인권에는 좌도 없고 우도 없지만, 또 진보나 보수의 이념으로 인권을 구획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한나라당이 굳이 우향우의 인사를 고집한다면 이제라도 정말 보수다운 인권전문가를 내정하길 바란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랄 것도 없는 사람들이 보수인 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에나 갈 사람을...독립기구의 심장에 심다니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코드 맞추기에 급급한 인사를 우리는 흔히 정략적인 인사라고 부른다. "인사가 만사"라고 한 어느 전직 대통령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또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최근 역설하고 나선 이른바 "공정사회"까지는 들지 않더라도, 정략적인 인사가 결국 권력을 망치고, 나라를 망치고, 사회를 좀 먹게 한다는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경험된 진리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략적 인사의 일반적인 병폐 수준을 넘어서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인사의 대상기관이 다른 기관도 아닌 바로 국가인권위원회라는 데 있고, 홍진표씨가 내정된 자리가 그 국가인권위원회의 상임위원이라는 데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는 물론 대통령으로부터도 독립적인 위상과 역할을 가져야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코드인사, 나아가 정략적 인사의 대상기관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에 관한 중요성이야 여러 매체를 통해 수도 없이 되풀이 되었으므로 여기서까지 재삼 언급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현실의 권력에 쓴소리는커녕 눈치보기에 급급한 현병철 위원장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권력핵심의 복심을 가장 잘 읽는 사람을, 그래서 청와대나 가 있어야 할 사람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임명하겠다니...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는 그야말로 정략의 희생물이 되는 운명을 영영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그것도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략적으로 운영되어 왔다고 맹비난을 퍼붓던 장본인들이 도리어 국가인권위원회를 정략적인 노리개로 삼고 있는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정략화, 과연 누가 그렇게 만들고 있나.

 

'권력 좇기' 색깔론보다 강하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공공의 적'으로 치부되고 있는 주사파 출신 인사를, 그것도 이른바 친북좌파 정당도 아닌, 그 정반대에 있다고 자처해온 한나라당이 인권위의 차관급 상임위원으로 내정하였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또 그런 만큼 저간의 사연을 잘 모르는 이들로서는 충분히 헷갈릴 만한 일이다.

 

전향자에 대해 너무 가혹한 언급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비록 그가 전향했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의 색깔론이 어디 전향했다고 해서 그 죗값을 호락호락 탕감해준 적이 있던가. 한번 좌빨이면 영원한 좌빨이고, 심지어 일단 좌파로 낙인 찍히고 나면 그의 자식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색깔론을 뒤집어 씌워 온갖 저주를 마다해오지 않은 행태를 그 누가 자행해 왔던가.

 

그들에 의하자면 "아무리 향기로운 향수를 뿌리고 아름다운 핑크빛 페인트칠을 해도 똥은 똥인 것이다". 그런데 말하자면 당초 '종북원조 주체사상파'였던 홍진표씨에게 이렇듯 관용을 보이는 한나라당의 포용력은 과연 어디에서 연원하는가. 용기인가? 만용인가? 아니면 이념적인 파산선고인가?

 

그러나 권력을 향한 정략적인 이해는 아직도 이념보다 한참 앞선 것이어서 여전히 자신들의 구미에 따라 취사선택되고, 선별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긴, 과거 일본제국주의 장교에서 좌익으로, 다시 군사 쿠데타의 수괴를 거쳐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까지 극단적인 변신의 변신을 거듭하며 오직 권력만을 좇아온 박정희를 상기해 보라. 반민주와 반인권의 몰염치한 행각을 진부한 색깔론으로 가리면서 마치 보수원조인 양 자처해온 특정정당이나 특정인의 권력 좇기 행각이 새삼스러운 일도,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무릇 '시대정신'이란 게 당대의 지배적인 권력에 아부하고 충성하는 것이라면, 그 시대정신은 이번에야 말로 정말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적어도 국가인권위원회에 만큼은.

덧붙이는 글 | 김형완님은 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장입니다. 


태그:#인권위, #홍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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