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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타킹>에 출연한 김인혜 교수의 모습.
 SBS <스타킹>에 출연한 김인혜 교수의 모습.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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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 콘서트 입장권 강매, 명품 선물 요구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던 서울대 음대 아무개 교수의 실명이 공개됐다. 17일치 <동아일보>를 통해서다.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한 서울대 음대 교수는 다름 아닌 공중파 TV 주말 예능프로그램인 <스타킹>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로 때로는 인간미 넘치는 눈물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김인혜 교수였다. 혹시나 했던 시청자들의 놀라움과 분노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김씨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들에 대해 억울하다면서 적극적인 반론을 펼쳤다. 다만 한 가지, 학생들에게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학생들을 가르칠 때 배나 등을 때리고 머리를 흔드는 게 다른 교수보다 셀 수 있어 학생 입장에서는 심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면서 학생을 때린 사실은 시인했다. 하지만 "이를 폭행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로 폭행 의혹은 부인했다고 한다. 때리긴 했지만 폭행은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음악계에서는 강제 도제식 교육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 간에는 별별 소리를 다 하는 것이 관행"이고 "내가 서울대를 다닐 때도 줄리아드음악원과 달리 엄격한 도제식 교육 방식으로 지도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워왔고 또 그렇게 가르쳐왔다"는 것이다.

다른 혐의들이야 서울대 측이 진상조사를 하고 있고 김씨 측에서도 법률적 대응 검토를 하고 있다고 하니 좀더 상황을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학생들을 때린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폭행'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일그러진 우리 사회와 교육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속에서 체벌과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이 재생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랑이라는 행위, 그렇게 폭력적일 수는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씨는 폭행을 당한 학생들 입장에서보자면 가해자이지만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그 역시 피해자이다. 미화된 폭력을 당연시 하는 우리 사회 시스템에서 자신 역시 피해자로서 그것을 당연하게 내면화하면서 자랐고 자신이 권력자(?)가 되었을 때 자신 역시 그러한 폭력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행사한 것이다.

자신이 피해자라는 인식보다는 스승들로부터 그렇게 당하던 것을 '당연한 것'으로 내면화했기 때문에 자신 역시도 가해자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행위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교육에 대한 열정, 제자에 대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기까지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혼을 내고 때리는 것이라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비뚤어진 사디즘적 행태가 아니고서야 사랑하는 방식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행위가 그렇게 폭력적일 수는 없다.

체벌금지 조치가 내려지고 학생인권조례 시행이 예고될 당시에도 그랬다. 일선 학교 교사들은 '그럼 이제 학생지도를 포기하란 말이냐'라며 저항했다. 때리고 징계를 해서라도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때리지도 말고 미성숙한 어린 것들을 존중해 주라니 사실상 교사들을 무장해제 시킨 것 아니냐고 말하는 교사들의 불만은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 유효하다.

학생들을 때리고 징계하는 것을 학생생활지도를 위한 정당한 수단의 하나라고 생각할 뿐 그것을 결코 '폭력'이라고는 여기지 않는 것이다. 교과부는 한술 더 떠서 편법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서라도 일부 체벌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전히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허용하겠다는 것이 이 나라 교육당국의 생각이다.

김인혜씨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영화 <투사부일체>의 한 장면.
ⓒ (주)시네마 제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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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수십여 명의 오합지졸에 가까운 아마추어 합창단원들을 가르친 박칼린씨가 제대로 된 발성과 노래를 부르는 방법을 일러주기 위해 그들의 배를 때리고 머리채를 쥐고 흔드는 걸 보지 못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때로는 실망하고 표정이 일그러지기도 했지만 언제나 '자, 다시 해 봅시다'라며 합창단원들을 격려했다. 그들의 작은 변화와 발전에도 감격어린 표정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히 결과는 대성공. 이것이 국민 다수가 감동한 이른바 '박칼린 신드롬'의 실체다.

이는 김인혜씨가 "성악은 절대 말로만 가르칠 수 없고 이런 교육법이 당연한 방식"이라며 '도제식 교육'을 옹호하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독일도 이탈리아도 음악이나 미술은 거의 모두 도제식 교육이지만 폭력은 상상도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도제식 교육'이라는 것이 크고 작은 폭력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돼 버렸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크고 작은 폭력을 정당한 것이라고 여기는 인식이 여전하고, 학교에서조차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적어도 폭력 논란과 관련해서 김인혜씨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나와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김씨를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을 막아 가해자와 피해자의 두 얼굴을 지니고 평생을 살아가지 않으려면 누구든 어떤 형태이든 어디에서든 폭력은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공유와 합의가 필요하다. 그 폭력의 형태가 직접적인지 간접적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김인혜씨의 이번 학생 폭행 논란은 폭력문화가 여전히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폭력(성)이 얼마나 무서운 두 얼굴을 하고 인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사건이다. 모든 폭력은,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태그:#서울대 김은혜, #김은혜 폭행, #인권조례, #체벌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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