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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언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던,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고 생소한 나라. '21세기 최초의 신생독립국'으로 알려진 그곳에 경원대학교 해외봉사단인 아름샘이 지난 2월 10일 열흘간 봉사를 다녀왔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봉사단원들은 2010년 11월 선발돼 3개월간 준비기간을 가졌다.

봉사단 이름인 '아름샘'은 아름다운 샘을 뜻한다. 아름샘의 모토는 '마르지 않는, 샘솟는 사랑'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름샘이 동티모르에 남겨놓은 것이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샘까지는 못 되더라도 현지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마중물이 되었기를, 그리고 이 글이 동티모르 소식에 목말라 하는 독자 여러분의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이 되기를 바란다.... 기자주


포로스에서의 마지막 날. 포로스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 이른 아침부터 마을 아이들이 전부 나와 떠나는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포로스에서의 마지막 날. 포로스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 이른 아침부터 마을 아이들이 전부 나와 떠나는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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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생 가운데 오지 여행가이자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이었던 한비야씨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러는 한비야씨처럼 NGO 단체에서 일하기를 꿈꾸기도 한다. 지구 각지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하고 여러 가지 개발사업을 진행중인 NGO 단체의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멋있다'는 생각부터 한다. 하지만 동티모르 봉사활동에 도움을 준 지구촌나눔운동 (이하 GCS) 동티모르 사업소 이여울 간사님의 말은 NGO가 가진 고민과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당신의 전임자는 이 마을을 위해 이러이러한 사업을 펼쳐서 우리 모두가 그를 기억한다. 당신이 만약 이 마을에 진료 클리닉을 짓는 사업을 한다면 마을 사람들이 당신을 오래도록 좋게 기억할 것이다."

2009년 10월, 동티모르에 도착한 이 간사님이 처음 마을 이장님께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간사님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진료클리닉을 마을에 짓는 것은 GCS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NGO 직원으로 마을사람들에게 좋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진행할 사업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고민끝에 간사님은 개인적인 욕심을 접고 GCS가 할 수 있는, 마을에 정말 필요한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지구촌 나눔운동 간사님들과 함께. 왼쪽부터 박선욱 교수님, 김용정 간사님, 이여울 간사님, 김한정 교수님, 이상원 간사님
 지구촌 나눔운동 간사님들과 함께. 왼쪽부터 박선욱 교수님, 김용정 간사님, 이여울 간사님, 김한정 교수님, 이상원 간사님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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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GCS가 이것저것 마을에 지원해주자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점점 단체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쉽게 도울 수 있는 일들이긴 했지만 NGO의 역할은 마을 사람들의 자립을 돕는 데 있기 때문에 이후 단체는 지원을 하는 대신 마을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더 신경쓰게 됐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직접 해결방법을 모색해 최대한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자체 해결이 어려운 부분만 단체에 지원을 요청하게 됐다. 작은 NGO 단체가 마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조금씩 변화시키는 모습에 놀라웠다. 끝으로 간사님은 "여기에서 봉사하면서 배운 것을 앞으로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안정적인 삶에 너무 갇혀 있지 말고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이 자리를 빌어 편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모두가 잘 사는 지구촌을 만들기 위해 안락함을 뒤로하고 타지에서 고군분투하시는 지구촌 나눔운동, YMCA, KOICA 등 NGO 직원분들. 그리고 여러 오지에서 '범지구적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계신 수많은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분들께 존경을 표한다.

"난 너의 티모르인 아빠"... 동티모르에 생긴 내 가족

로스팔로스의 마지막 날 홈스테이를 하게 된 로말도네 집. 왼쪽부터 자누엘라, 세바스티아누 아저씨, 데올리지아. 동티모르에도 내 가족이 생겼다!
 로스팔로스의 마지막 날 홈스테이를 하게 된 로말도네 집. 왼쪽부터 자누엘라, 세바스티아누 아저씨, 데올리지아. 동티모르에도 내 가족이 생겼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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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팔로스에서의 활동 마지막 날, 단원들은 모두 포로스 마을에서 하룻밤 홈스테이를 하게 됐다. 한 가정당 단원 한 명씩 묵게 됐는데 거의 대부분이 우리가 교육활동을 했던 포로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집이었다. 더군다나 간사님의 배려로 각자가 교육활동을 맡았던 학년이 속해있는 가정에 배치됐다. 내가 배정받은 가정은 바로 2학년의 미소천사, 로말도의 집이었다.

로말도의 가족은 총 여섯 명. 집에 들어서니 로말도의 아버지인 세바스티아누 아저씨와 어머니인 안젤리나가 반갑게 맞아 주신다. 알고 보니 내가 담당한 5학년의 제프리누스가 로말도의 친형이고 4학년인 데올리지아도 로말도의 친누나였다. 그리고 로말도의 아래로는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세 살짜리 여동생 자누엘라가 있었다. 나와 수업했던 아이들이 모두 한 가족이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너무나 반가웠다.

홈스테이 가정에서... 로말도의 여동생인 자누엘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으며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홈스테이 가정에서... 로말도의 여동생인 자누엘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으며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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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말도네는 그리 풍족해 보이진 않았다. 나무로 만든 집은 군데군데 부서져서 바람이 통하고 어른 팔뚝만한 대들보 하나가 위태롭게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화장실이 없어 집 밖의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고 문 대신 천 조각으로 침실과 부엌, 거실을 구분해놓았다. 집 안엔 침대가 없어 세 개의 딱딱한 평상 위에서 온 가족이 자야 한다.

더군다나 지난번 건기 때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옥수수 농사를 망쳐 먹을 것 역시 풍족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게 어려운 살림인데도 손님으로 온 낯선 한국인이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온 가족이 걱정하면서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가족들과 대화하기 위해 딜리 탐방 때 받은, 떼뚬어 기초회화가 적힌 종이와 한국에서 준비해 온 워크북에 실린 떼뚬어 단어를 뒤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알파벳으로 쓰여진 발음이 너무 어렵다. '안녕하세요'가 떼뚬어로 Annyeonghaseyo? 알고보니 알파벳으로 써놓은 한국말 발음을 그대로 읽어버린 것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대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가족들은 "나다(괜찮다)"를 연발한다. 그래도 내 노력을 가상하게 봐주셔서 다행이다. 봉사활동 중엔 볼수록 헷갈리는 떼뚬어때문에 잊지 못할 일이 생기기도 했는데 한 단원이 딜리 탐방 때 어떤 할아버지께 "본디아(안녕하세요)!"라고 아침인사 한다는 것을, 발음이 헷갈려 "보니따(예쁘다)" 라고 하는 바람에 할아버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날 밤, 일찍 자리에 누웠지만 새벽 한 시부터 닭, 돼지, 염소, 개들이 우는 소리에 뜬눈으로 밤을 샜다. 다음 날 아침,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짐을 챙겨 로말도네 집을 나서는데 세바스티아누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아이 엠 유어 파더 인 티모르 레스떼(I'm your father in TImor-Leste)."

"나는 너의 티모르인 아빠"라는 세바스티아누 아저씨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동티모르에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느낌이 든다. 단원들 모두 마을주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정든 포로스 마을을 떠났다.

홈스테이 가정에서. 백지예양이 방문한 홈스테이 가족들.
 홈스테이 가정에서. 백지예양이 방문한 홈스테이 가족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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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us, Timor Leste!"... 또 만나요, 동티모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어느덧 동티모르와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천장을 기어다니는 도마뱀을 봐도 아무렇지 않고, 좁은 화장실에서 씻는 것에도, 딱딱한 도서관 바닥에서 자는 것에도 점점 적응해가고 있었는데… 그동안 1학년 교육팀의 통역을 맡아 준 마틸데와 작별인사를 하자 마틸데가 "우린 꿈 속에서 만나게 될거야"라고 말하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로스팔로스에서 다시 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딜리로 이동할 때에도, 딜리에서 인도네시아 발리로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발리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면서도 동티모르에서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 가득 생생히 되살아난다. 로스팔로스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과 가축들이 평화롭게 뛰놀던 풀밭, 끝없이 펼쳐진 딜리의 새파란 해변이 눈앞에 생생하다. 아직도 포로스의 아이들은 우리가 알려준 곰 세 마리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 볼링이나 꼬리잡기 게임은 잘 하고 있을지, 우리가 그 아이들을 위해 준비했던 것들이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혹여나 우리들이 봉사라는 미명하에 조용한 마을에 들어가 공연히 소란을 일으키고 온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문화팀의 기둥 이성우군과 홈스테이 때 자기 집을 방문한 예림이를 살뜰하게 챙겨주었다던 페르디난투
 문화팀의 기둥 이성우군과 홈스테이 때 자기 집을 방문한 예림이를 살뜰하게 챙겨주었다던 페르디난투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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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지난 열흘은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가진 것을 돌아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지 깊이 고민해 본 시간이었다. 또 한국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정말 사소한 것에도 크게 감사할 수 있음을 배웠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떠난 것이었지만 오히려 내가 선물을 한아름 받아 온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봉사라는 것이 수여자와 수혜자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우리가 동티모르에서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선물받은 것처럼 우리가 동티모르에 남겨두고 온 것이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샘' 까지는 못 되더라도 희망을 부르는 마중물이 되었기를 바란다.

열흘 간 꾸었던 즐거운 꿈에서 깨어나 이제는 바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지만 가끔씩 그곳에서 배운 여유로움, 자연과 공존하려는 자세, 부족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낯선 이방인을 극진하게 대접해주던 현지인들의 순수한 마음을 되새기며 살아가고 싶다.  

끝으로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경원대학교 김한정 교수님과 박선욱 교수님. 봉사단이 잘 다녀올 수 있게 도와주신 최문정 연구원님 및 경원대학교 관계자 여러분. 봉사단원 모두가 안전하고 즐겁게 활동할 수 있게 도와주신 지구촌 나눔운동의 김용정 간사님, 이여울 간사님, 이상원 간사님. 봉사단을 위해 간식을 제공해 주시고 좋은 강의 들려주신 KOICA 직원 분들. 그리고 준비 기간부터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준 아름샘 단원들(강정근군, 이소희양, 이승훈군, 이성우군, 이지형군, 이원범군, 양승진군, 최예슬양, 효진양, 백지예양, 예림양, 양미연양, 강양희양, 수연양, 김항규군, 용호군) 모두에게 깊은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

"Adeus, Timor Leste!"(또 만나요, 동티모르!)

노엘, 루벤, 로말도, 아데리토, 헬더, 자마펠, 루카스, 시도니오, 닐바,에피안,에스테파니아,안젤라,모니카... 지금도 생각나는 포로스의 아이들. 짧은 기간이었지만 예쁜 아이들을 만나서 행복했다.
 노엘, 루벤, 로말도, 아데리토, 헬더, 자마펠, 루카스, 시도니오, 닐바,에피안,에스테파니아,안젤라,모니카... 지금도 생각나는 포로스의 아이들. 짧은 기간이었지만 예쁜 아이들을 만나서 행복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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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연양과 헬더. 2학년 중 가장 의젓한 헬더는 오후 교육시간에도 학교에 나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양미연양과 헬더. 2학년 중 가장 의젓한 헬더는 오후 교육시간에도 학교에 나와 우리를 반겨주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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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경원대학교는 2010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업무협조약정(MOU)을 체결하여 학생들에게 국제개발협력사업과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로벌 개발협력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중 지원자를 선별하여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학생들로 해외봉사단을 구성했다.



태그:#아름샘, #경원대학교, #해외봉사, #동 티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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