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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 유치환 시 '울릉도' 전문

승객을 태운 2394톤급 카페리 쌍동선 썬플라워호가 미끄러지듯 항구를 벗어나고 있다. 선체길이 80m에 최대 승선인원이 920명으로 육중한 체구이지만 몸놀림은 가벼워 최고속력이 52노트인 쾌속선이다. 날씨 탓에 이틀째 항구에 정박해 있다가 20일 오후 3시에야 겨우 출항이 가능했다. 우리 일행도 당초에는 오전에 출발할 계획이었으나 여객선의 결항으로 일정이 꼬이고 있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는 평균 3시간이 소요된단다. 그러나 이것도 정상운행시 얘기고 그날 일기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항구를 빠져나온 여객선은 곧바로 호미곶을 끼고 나와 동해의 넓은 바다로 진입한다. 공해상에는 화물선들이 닻에 묶인 채 언제일지 모를 출항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동해의 그 거친 바람과 파도를 다 맞으며.

큰 바다는 여전히 파도가 거칠어 썬플라워호가 재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풍랑 때문에 항로를 바꿔 운항한다는 선내 방송이 있다. 도착시간도 언제일지 모르며 도착 1시간 전에 알려준단다. 출발한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승객들은 대부분 졸거나 멀미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도 경험있는 승객들은 미리 돗자리와 담요 등을 준비해와 객실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도착예정시간을 훨씬 넘기고도 예고방송이 없다. 선실은 아수라장이다. 단체로 여행을 떠나온 노인들이 사경을 헤맨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또다시 마력에 끌려 여행을 떠날 것이다. 중독과도 같은 것이 여행인 모양이다. 여객선은 모든 승객들이 파김치가 된 오후 8시 20분에 울릉도에 도착했다. 217.0㎞의 거리를 꼬박 5시간 20분 소요된 것이다. 그래도 목적지에 도착하니 힘들이 솟는 모양이다. 모두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예약된 숙소로 찾아든다.

우리 일행도 숙소에 여장을 풀고 인근 식당에서 늦은 만찬을 즐겼다. 전복, 해삼, 소라, 멍게 등 다양한 해산물과 싱싱한 횟감에 살아있는 미역이 원거리 여행의 허기에 지친 우리의 구미를 당겼다. 호박막걸리가 일품이어서 취기가 오르는 것도 모른 채 잔을 비웠다.

다음날은 일찍 잠이 깨 선창에 나가보니 갈매기가 먼저 반긴다.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갯내음이 밴 아침공기가 신선하다. 이제 막 어린잎을 피워내는 초목들이 가파른 절벽에 붙어 숨 가쁘게 산소를 토해내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선창을 따라 몇몇 아낙들이 전을 벌리고 앉아 해산물이며 산나물 등을 팔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난 탐방로에는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파도소리에 젖어 아침산책을 즐기고 있다. 낙원이 따로 없다.

항구에 접한 식당에서 따개비죽으로 아침을 때우고 버스투어를 시작했다. 비탈지고 구불구불한 길을 시멘트로 덮어 도로사정은 좋지 않았지만, 운전기사의 노련한 운전솜씨와 구수한 입담이 여행을 즐겁게 했다. 울릉읍 도동에서 출발한 버스는 사동을 거쳐 해안도로를 타고 통구미, 남양, 구암, 태하, 현포, 천부를 거쳐 나리분지를 돌아오는 코스였다.

도로변에는 경사가 심한 비탈지를 일궈 경작을 하고 있다. 작물들이 봄볕에 푸른 영역을 넓히고 있다. 1만 명이 조금 넘는 주민들은 장사를 하거나 고기를 잡고, 부지깽이, 나물취, 명이, 고비, 삼나물, 더덕 등을 재배하여 특산물로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고 있으나, 이들이 농사를 그만두게 되면 그나마도 구경하기가 어려울 거란다. 산비탈에서 나물을 재배하는 그 모양이 녹녹치가 않다.

통구미 해변에 자리잡은 거북자위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 거북바위 통구미 해변에 자리잡은 거북자위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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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등대가 있는 태하리에는 바닷가를 따라 탐방데크가 설치되어 데크를 걸으며 절경을 즐길 수 있다. 태하에서 현포로 넘어가면 송곳봉이 우뚝 솟아 눈에 들어오고, 바로 그 옆 해상에는 코끼리바위가 지키고 있다. 현포를 지나 추산에 들어서면 수력발전소가 있다. 나리분지 용출소에서 초당 220ℓ씩 솟는 물을 이용해 가동하는 발전소란다.

주상절리 현상에 의해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공암은 멀리서 보면 코끼리가 바닷속에 코를 박고 있는 형상이다.
▲ 코끼리바위(공암) 주상절리 현상에 의해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한 공암은 멀리서 보면 코끼리가 바닷속에 코를 박고 있는 형상이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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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나리분지로 향한다. 울릉도에서는 약 1만 년 전 많은 화산쇄설물과 화산재를 내뿜는 대폭발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 때 막대한 양의 분출물을 쏟아낸 중심 화구(火口)의 내부에 지하 공간이 생겼고, 이후 자체 하중에 의해 화구가 함몰해 깊은 분화구가 만들어졌다. 면적 1.5~2.0㎢이고, 동서길이 약 1.5km, 남북길이 약 2km인 나리분지는 바로 이와 같이 분화구가 함몰돼 만들어진 칼데라의 지형으로, 초기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이 경작지로 개간하면서 그 평탄지의 모습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라는 운전기사의 설명이다.

분지는 아직 초봄이다. 광활한 농토도 대부분 비어있다. 너와집과 투막집 옆에 선 벚나무는 개화를 미루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성인봉에는 눈이 하얗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은 모양이다. 버스가 우리를 휴게소로 안내한다. 너와집을 꾸며 만든 휴게소에서는 씨껍데기술과 산채나물, 더덕무침 등이 우리를 반긴다. 조껍데기술 못지않게 씨껍데기술도 텁텁하면서 부드럽다. 여행의 피로가 단숨에 가신다.

나리분지 휴게소에서 바라본 성인봉, 4월 하순인데도 눈에 덮여있다.
▲ 성인봉 나리분지 휴게소에서 바라본 성인봉, 4월 하순인데도 눈에 덮여있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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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도동항 풍경이 평화롭다.
▲ 도동항 독도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도동항 풍경이 평화롭다.
ⓒ 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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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으로 돌아와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전망대에 올랐다. 날씨가 흐린 탓에 독도는 관망할 수 없고, 사방이 망망대해다. 종종 여객선과 고깃배가 오갈뿐 시야에 걸리는 것이 없다. 내일은 비바람이 거세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우리는 오후에 출항하는 배편을 이용해 울릉도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예로부터 도둑·공해·뱀이 없고, 향나무·바람·미인·물·돌이 많다 하여 3무(無)5다(多)의 섬이라고도 하는 울릉도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방문했더라면 여유롭게 구석구석을 탐방할 수 있었을 텐데, 독도도 방문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

내게 언제 또다시 이런 여유로운 시간이 있어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수 있을지….


태그:#울릉도, #나리분지, #썬플라워호,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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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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