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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복산에 구름이 낮게 내려 앉은 날, 큰 아들 인효가 손전화기로 찍은 우리집 앞 논. 어린 벼와 어울려 하늘 빛 내려 앉은 논이 이렇게 이쁠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마복산에 구름이 낮게 내려 앉은 날, 큰 아들 인효가 손전화기로 찍은 우리집 앞 논. 어린 벼와 어울려 하늘 빛 내려 앉은 논이 이렇게 이쁠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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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 허리 고개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온몸이 욱신거리지만 기분은 날아갈듯 가볍습니다. 볍씨를 넣고부터 한 달 하고도 열흘 만에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특히 요 며칠 동안은 두렁치고 물꼬 트고, 모내기에 밭일까지 새벽녘부터 다 저녁 때까지 흙 범벅이로 살았습니다. 요즘 아내는 내게 더 이상 게으르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볍씨 준비는 고흥 마복산 동관이 성님과 함께 했습니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옥고까지 치렀던 동관이 성님은 7년 전 마복산 자락에 정착해 생태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유기농으로 3천 평의 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아이구, 이거 온도가 맞지 않아 걱정인데."
"되는 대로 하쥬 뭐."
"그런 게 어딨어. 잘해야지."

동관이 성님네 아궁이에 불을 지펴 65도 정도의 뜨거운 물에 볍씨를 10분쯤 담갔다가 곧바로 차가운 물에 담가놓는 냉온탕법으로 볍씨를 소독했는데, 온도가 잘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볍씨를 상토 모판에 옮겨 논 가장자리에 잘 모셔놓았습니다.

동관이 성님과 함께 냉온탕법으로 볍씨를 소독했습니다.
 동관이 성님과 함께 냉온탕법으로 볍씨를 소독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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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관이 성님네 논에서 자라는 어린 벼.
 동관이 성님네 논에서 자라는 어린 벼.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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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첫 논농사... '글쓰기 농부'가 무색하구나

우리 식구는 고흥에 정작하면서 동관이 성님에게 시시때때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땔감이 떨어질 무렵이면 여지없이 구원의 손길을 보내왔고, 얼마 전에는 성님 덕분에 끝물 딸기 하우스를 소개받아 딸기를 실컷 따먹고 잼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거기다가 어딘가에서 배추를 얻어다 건네줘 김치를 실컷 담가 먹기도 했습니다.

동관이 성님네 논바닥에서 볍씨가 싹을 틔우는 동안 제 논을 갈아엎었습니다. 고흥에 정착, 첫 논농사 입니다. 작년 첫 해는 소작할 논을 구하지 못해 밭농사만 지었는데 올해는 2천 평 가까운 논이 생겼습니다. 우리 집 주변에서 더불어 생태적으로 살고자 하는 몇몇 분들이 사들인 농지입니다. 그분들이 집을 짓기 전까지 소작을 하기로 했습니다.

벼논자리를 만들어 가면서 틈틈이 작년 가을에 심은 마늘과 양파를 수확했고 고추를 비롯해 참외 수박 오이 들깨 등을 조금씩 심어 나갔습니다. 우리 밭은 천 평 정도 됩니다. 5백여 평의 밭에는 오만 가지 채소를 심었고 나머지 5백 평의 공간에는 매실, 감귤, 감나무, 석류나무 등을 심었는데 채소밭과 더불어 시시때때로 풀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이른 아침 밭이나 논바닥에 나갔다가 초등학교 아이들 글쓰기 지도를 다녀오고 나면 여지없이 삽이나 호미를 손에 쥐었습니다. 얼마 전 책을 한 권 냈는데, 거기에는 '글쓰기 농부'라는 말이 들어가 있지만, 요즘 글쓰기는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틈틈이 바다에 나가 돌미역을 채취해 놓았지만 반찬거리 낚시조차 나서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논두렁 쳐주는 디, 30만 원이 넘는다구요?"

논을 갈아엎어 써레질에 모 심기까지 농기계 쓰는 데 마지기당 6만 원, 거기에 논두렁까지 치게 되면 백만 원 가까운 돈이 들어갈 판이었습니다. 생활비가 빠듯했습니다. 풀무고등학교에 다니는 큰아들 녀석이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한 달 생활비가 두 배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모를 심고 나면 당장 몇 십만 원이 필요했습니다. 아내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안 되면 농협 빚이라도 져야지 뭐."
"그려, 어떻게 되겠지."

사나흘에 걸쳐 논두렁에 살다시피 하면서 두렁치기를 했습니다.
 사나흘에 걸쳐 논두렁에 살다시피 하면서 두렁치기를 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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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주' 한잔에 알게 된 '논두렁 친구'

결국 농기계를 이용한 두렁치기를 포기하고 시간을 쪼개 삽을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여지없이 삽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사나흘에 걸쳐 논두렁을 높여 물이 넘치는 것을 방지하고 두더지 구멍을 찾아 물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두렁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모심기에 앞서 써레질을 하는 날 농기계를 모는 최공식씨가 윗다랭이 논을 포기해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이 부족해서 안 되겠는 걸."
"어떻게 좀 안되겠나?"
"도저히 안 되겠네..."

최공식씨는 농기계를 이용하면서 알게 된 친구입니다. 농기계를 쓰던 첫날, 자신이 일하는 논으로 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는 논일을 막 마치고 나서 우리 집 작은아들 인상이 친구 민경이 부모님과 함께 참장어 회를 놓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쇠주 한잔 하소. 알고 보니께 나하고 동갑내기인 갑소."
"수염이 허여서 그렇지 보기보다 나이가 많지 않은디유."
"쥐띠라믄서요?"  
"그런디…."
"나도 그렇소. 우리 친구 합시다. 그냥 말 놓기로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단 몇 분 만에 "예, 어, 그려" 하고 어색한 어투를 쓰다가 '그러네 저러네' 하는 논두렁 친구가 되었습니다. 소주 한잔에 갑작스럽게 맺은 친구였지만 친구에게 논을 맡길 수 있어 기분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그는 오토바이 타고 지나가는 자신의 동네 친구까지 불러들여 친구를 맺어주기도 했습니다.

"어이, 이루 줌 와보게. 여기도 우리 동갑내기여, 앞으로 친구처럼 지내자구."
"아, 아 그러세요? 송성영입니다."
"에이 뭘 그러나, 그냥 말 놓고 지내세. 우리 동네에는 다섯이 있구, 면에 가면 또 우리 동갑내기들이 오십 명이 넘네, 언제 모임에 함께 가세."
"아이구, 면 소재 친구까지는 좀 그렇고, 일단 동네 동갑내기부터 어울려 보세."

난데없이 친구가 하나둘 생기다 보니 모내기도 하기 전에 논농사를 다 지은 것처럼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를 얻은 대신 천수답인 윗다랭이 논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사나흘에 걸쳐 아래 논다랭이 물을 윗 다랭이로 퍼 올렸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말끔하게 두렁까지 쳐 놓은 윗다랭이 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복산 동관이 성님 말대로 거기에 메밀을 심기로 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논으로 나선 인상이를 따라나선 곰순이. 논두렁 끝, 멀리 보이는 나와 최석오씨. 꼼꼼한 농사꾼 최석오씨는 내게 논두렁치는 법과 수문관리 법을 전수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논으로 나선 인상이를 따라나선 곰순이. 논두렁 끝, 멀리 보이는 나와 최석오씨. 꼼꼼한 농사꾼 최석오씨는 내게 논두렁치는 법과 수문관리 법을 전수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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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모는 병들고, 논은 물구멍이 막히고

두렁치기를 다 끝낼 무렵 이번에는 논두렁에서 최석오씨를 만났습니다. 동네에서 꼼꼼하게 농사짓기로 유명하다는 최석오씨는 내가 소작하고 있는 맨 아래 다랭이논 주인입니다.

"물 관리 잘해야 허요. 물 빠져나가는 디를 잘 싸놓아야 허요. 잘못하믄 금방 무너져버려리께요."

일전에 삽질까지 해가며 두렁치는 요령을 상세하게 보여줬던 최석오씨가 이번에는 수문관리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모 심는 날, 동관이 성님네 논두렁에서 옮겨온 어린모를 이른 아침부터 옮겨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산 너머 산이었습니다. 이앙기를 돌리던 최공식씨가 혀를 찼습니다. 동관이 성님이 우려한 대로 냉온탕을 잘못해 어린 벼가 웃자라는 키다리병에 걸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이구, 이거 모가 션찮어. 모판에 모가 빡빡해야 하는디 너무 설렁설렁혀, 키다리병까지 걸려서 잘 심기지가 안네. 그냥 우리 것 갖다가 심으세."
"아이구 그냥 허세. 시원찮은 것은 난중에 내가 땜모 하믄 되니께." 
"이걸 다 어떻게 하려구."

시원찮은 모는 나중에 갈무리하면 되는데 문제는 물이었습니다. 관행농은 보통 모를 심기 사나흘 전에 풀 약을 치는데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모를 심자마자 적당히 물을 채워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논바닥에서 수북하게 올라오는 풀씨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모 심는 날, 우리 논으로 들어오는 물구멍이 막혀버렸던 것입니다.

가뜩이나 느려터진 놈이 허둥지둥거리며 쇠파이프까지 동원해 전에 논 주인이었던 방연출씨와 함께 아무리 쑤셔대도 막힌 구멍은 뚫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논으로 단 한 방울의 물조차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물 관리를 잘못해 수로에 돌멩이가 끼어들어갔던 모양입니다.

"아이구 이거, 고흥에 와서 첫 논농사 신고식 톡톡히 치르네요."
"안 되겠어요. 모터를 설치해서 물을 뿜어 올려야지."

물꼬가 막혀 모터펌프를 설치해 뿜어 올렸지만 1분도 채 안돼 더이상 물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꼬가 막혀 모터펌프를 설치해 뿜어 올렸지만 1분도 채 안돼 더이상 물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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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방연출씨의 도움으로 그의 논물을 뿜어 올렸습니다.
 결국 방연출씨의 도움으로 그의 논물을 뿜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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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하늘의 도움을 받았구나

최공식씨는 이미 모내기를 다 끝내놓고 농기계 사용료를 예상보다 저렴하게 책정해놓고 돌아갔고 나는 방연출씨의 도움을 받아 논 가장자리에 파놓은 관정에 모터 펌프를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모터를 돌린 지 1분도 채 안 돼 시원스럽게 쏟아지던 물줄기가 멈춰버렸습니다. 방연출씨 말로는 물을 뿜어내는 PVC관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논에 관정이 있으니까 그거라도 쓰세요."

일손 바쁜 방연출씨였지만 제 일처럼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 자신의 모터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논에 설치되어 있는 관정의 물을 뿜어 올려 우리 논으로 넘겨주었습니다. 새벽녘에 나와 아침까지 거르고 허둥지둥하다가 천신만고 끝에 물꼬를 트고 나니 하루해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논물을 채우지 못해 포기한 윗다랭이 논, 거기에 물꼬까지 말썽을 부려 비 맞은 중처럼 '내가 지은 죄가 많구나, 비가 온다더니 비는 오지 않고 하늘이 돕지 않는구나, 오늘은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구나' 하루 종일 투덜거렸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곧 하늘이니 하루 종일 하늘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 어리석음에 꽁꽁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방연출씨의 논물이 내가 소작하는 논으로 옮겨가는 순간, 농사는 하늘과 하늘,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지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볍씨를 내주고 어린모를 키워준 마복산 동관이 성님이, 논을 갈아 모를 심어주고 품삯까지 깎아 준 최공식씨, 두렁치기와 물 관리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최석오씨가 하늘이었습니다.

어디 이들뿐이겠습니까? 논 옆 마늘밭에서 일하면서 수고한다는 고마운 말 한마디 보태주고 고구마순까지 내준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늘이었습니다. 그 하늘을 대신한 손길들이 벼 나락을 자라게 할 것이었습니다. 밥을 먹여줄 것이었습니다. 하늘이 내준 밥을 먹고 좋은 기운으로 다시 하늘에 되돌려줘야 할 것이었습니다. 좋은 기운으로 되돌려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하늘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벼심기를 마치고 천신만고 끝에 물을 채워 놓은 우리 논. 하늘, 곧 사람의 도움이 없었으면 어린 벼들이 큰 고생을 할 뻔했습니다. 밥이 되기 까지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고마운 손길이 거쳐 갈 것입니다.
 벼심기를 마치고 천신만고 끝에 물을 채워 놓은 우리 논. 하늘, 곧 사람의 도움이 없었으면 어린 벼들이 큰 고생을 할 뻔했습니다. 밥이 되기 까지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고마운 손길이 거쳐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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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모들이 힘겹게 꽂혀 맨살 드러내고 있는 논바닥에 달콤한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겨우 발길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침나절부터 여태 양파 수확을 하고 있던 방연출씨 부인이 불러 세웠습니다.

"이리 좀 와보세요, 이거 한 줄 가져가 잡수세요."
"아이구, 힘들게 농사지으신 건디 그렇게나 많이? 어떻게 가져가요. 우리도 양파 좀 심었슈. 그냥 내다 파세유."
"올해 양파 금이 형편없어요."
"얼마나 허는디유?"
"20킬로 한 망태기에 5천 원밖에 안 해요." 
"예? 5천 원유? 20킬로 한 자루에 몇 개나 들었는디요."
"40개 넘게 들어갈 거네요."
"그람 양파 한 개에 백 원 정도밖에 안 허네요, 아이구 환창허것네!"
"그러게요. 힘들게 농사져서, 환장허지요."

양파 수확이 한창인 방연출씨네. 그런데 20킬로그램 짜리 양파 한자루가 5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방연출씨네가 건네준 양파는 값으로 메길수 없는  '하늘의 밥' 이었습니다.
 양파 수확이 한창인 방연출씨네. 그런데 20킬로그램 짜리 양파 한자루가 5천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방연출씨네가 건네준 양파는 값으로 메길수 없는 '하늘의 밥'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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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연출씨 부부는 자꾸만 양파를 가져가라고 합니다.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해 결국 두 자루의 양파를 얻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방연출씨네가 건네준 양파는 여러 사람에게 기분 좋게 나눠줄 그 어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고마운 '하늘의 밥'이었습니다. 하지만 발걸음은 그리 홀가분하지 못했습니다. 당장 농기계 사용료를 내줘야 하는데 아내 말로는 통장에 잔고가 20만 원도 채 들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인효 아빠, 오늘 돈 들어왔어."
"어디서?"
"출판사에서 백팔십만 원이나 들어왔대."

한 달 전에 책을 냈는데 출판사에서 구입한 책값을 제외한 인세가 딱 맞게 들어왔던 것입니다.

"잘됐다. 당장 농협 빚 안 내도 되겠다. 오늘 방연출씨 한티 신세 많이 졌는디 함께 저녁 식사라도 하자고 해야겠다."
"그려, 모 심어준 최공식씨도 부르면 되겠네."

하늘이 열어준 물꼬처럼 어떤 일이든 막히면 뚫리게 되어 있는가 봅니다. 하늘은 늘 열려 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장화를 벗어놓고 흙범벅이 된 옷을 벗어 놓고 손과 발을 씻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흙을 만지며 땅아래로 낮아 질수록 마음자락이 물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을 수록 하늘은 더 넓게 더불어 살아갈수 있는 '밥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태그:#논농사, #고마운 사람들, #물꼬, #하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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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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