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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들의 모습
 돌고래들의 모습
ⓒ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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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병코돌이'입니다. 이제 스무살인 남방큰돌고래지요. 제 이름이 좀 웃기지요. 제 코가 좀 길쭉하게 병모양으로 생겼거든요. 하지만 전 한창 나이 스무살에 단단하고 매끈한 몸매를 가진 고래 청년이에요.

저는 몇 년 전에만 해도 제주도 바다를 자주 찾았어요. 제가 인도나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등등 다른 나라를 두루 다녀봤지만, 제겐 제주도 바다가 가장 아늑하고 편안했거든요. 가끔 제주시 용두암 근처를 지나다 보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엄마들을 볼 수 있었어요. 저는 인간의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어요. 그래서 즐겁게 해주려고 아이들 앞에서는 높이 점프해서 물 위로 솟구치곤 했어요. 가끔 어린 아이가 제 모습에 환호하며 엄마의 팔을 잡아 흔드는 모습을 보면 으쓱해졌어요.

언제부터인가는 서귀포 앞바다에서 많이 놀았어요. 서귀포 강정마을 근처에는 물이 정말 깨끗하고 예쁜 연산호도 많아요. 친구들과 점프 실력도 겨루고 잘 놀았죠. 고래에게도 전생이 있다면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는 제주 땅, 제주 바다가 친근했어요. 사람들은 다 순박하고 착한 줄만 알았고요. 3년 전에 욕심 많은 그 늙은 어부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모두 11마리... 언제까지 반복적 노동 해야할까요?

돌고래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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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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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우리 큰돌고래들은 붉게 지는 노을을 등지고 물 위로 신나게 솟구치고 있었어요. 해가 떠오르거나 노을이 질 때, 물보라를 하얗게 튕기며 떠오르는 모습은 스스로도 자아도취가 될 만큼 신나고 멋있거든요. 그 때 그 늙은 어부가 저를 잡았어요. 친구들이 어떻게든 방해를 놓으려고 했는데, 노련한 어부는 저를 단단히 붙잡았어요. 그리고 얼마 후,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말 그대로 감옥… 감옥에 수감되어 강제노동을 하는 상태라고 할까요.

제가 팔려간 곳은 서귀포 중문단지 안에 잇는 퍼시픽 랜드라는 곳이에요. 여름 한철 성수기에는 돌고래쇼를 하루에도 다섯번, 천여명의 구경꾼들을 두고 멋진 쇼를 보여야 합니다. 조련사들끼리 수군거리는 말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저 같은 남방큰돌고래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인간들이 법으로 정하기를 멸종위기종이고 그렇기에 저를 잡는 것은 불법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인간들은 법을 왜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왜 굳이 저희를 멸종위기종이라고 부를까요. 퍼시픽 랜드나 서울대 공원에 있는 제 친구들이 불법으로 팔려가서 지금도 쇼를 하고 있는데(하루 다섯번은 정말 중노동이에요. 어느 가수에게 하루 다섯번 콘서트에 참가해보라고 하세요. 그게 어디 쉽나!), 인간들 중에서 법을 집행하는 인간은 왜 가만히 있나요?

여기 퍼시픽 랜드에서 쇼를 하는 우리들은 이제 모두 11마리예요. 내가 제일 좋아하던 친구 녀석도 최근에 들어왔어요. 그 녀석의 얼굴을 다시 보는 순간, 반가움과 슬픔이 어찌나 교차하던지… 이제 우리에겐 반복적인 노동과 갇힌 공간이 있을 뿐, 언제 다시 살아서 그 넓은 제주도 바다를 헤엄쳐 볼까요. 이젠 용두암 앞의 거센 파도, 서귀포 문섬 앞의 잔잔한 너울… 그런 느낌도 잊혀져가요.

쇼장이 갇혀 있으니, 자유가 너무 그립습니다

돌고래들의 모습.
 돌고래들의 모습.
ⓒ 환경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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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를 하지 않는 시간에 머무는 수족관 같은 좁은 풀장. 정해진 시간에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 하루 다섯번 공연하고… 공연이 끝나면 수많은 아이들이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덤벼들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제가 또 지느러미로 악수도 해야 해요. 아… 정말 피곤하답니다!

이번 여름에 제가 있는 퍼시픽 랜드의 풀장에서 쇼가 시작하기 전 대기하고 있을 때였어요.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어떤 인간 누나가 살짝 들어 오더라구요. 그리고는 황급히 스마트폰인가 하는 걸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더군요. 저는 저도 모르게 자동반사적으로 쇼에서 하는 동작을 보여줄 뻔 했어요. 그런데 그 누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미안해'라고 중얼거리는 거예요. 이상한 누나예요. 저를 잡아서 판 늙은 어부의 딸도 아닐 터이고, 퍼시픽 랜드 직원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미안하다고 할까요.

쇼가 끝나고 저랑 사진을 찍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엄마인 어떤 아주머니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어떤 누나가 퍼시픽랜드 앞에서 우리 큰돌고래들을 풀어달라고 피켓을 들고 서 있다는군요. 아마 저에게 와서 눈물을 흘리고 간 그 누나인 것 같아요.

이제 이번주면 여름 성수기는 끝나요. 가을에는 이렇게 힘들게 하루 다섯 번씩 안해도 되겠죠. 쇼장의 열린 창으로, 찬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가을이 곧 오겠죠. 그럼 저는 다시 제가 맘껏 뛰놀던 서귀포 앞바다, 아직 거기에 있을 친구들을 떠올리겠죠. 제가 살아서 이 감옥 같은 쇼장을 떠날 날이 올까요. 붉은 노을을 등지고 검푸른 바다를 힘껏 솟구칠 날이 올까요. 차라리 여기서 태어났다면 덜 괴로울 텐데, 이미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제가 영문도 모른 채 이 좁은 쇼장이 갇혀 있으니, 자유가 너무 그립습니다.

사랑스런 인간의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얘들아, 여기 쇼장에서 나를 가까이 봐서 즐거웠니? 내 점프가 근사했니? 너희가 만약 어 느날 엄마 손을 잡고 바닷길을 걸을 때, 바다로 눈을 돌려보렴. 그때 바다에서 내 친구들 수십 마리가 함께 솟구쳐 오르는 모습을 볼 수도 있어. 그렇다면 네 가슴은 몹시 뛰어오를거야.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태그:#퍼시픽랜드, #남방큰돌고래, #돌고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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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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