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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은 국정교과서가 아닌 검정교과서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2012년에는 5,6학년으로 확대돼 초등학교 3~6학년 모두 검정에 통과된 영어 교과서를 사용하게 된다.

초등 영어교과에 검정교과서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발표가 있던 당시부터 부족한 교과서 개발 기간을 민간으로 전가하기 위한 노림수 아니냐, 결국 사교육시장에 영어 공교육을 내 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정부는 다양한 선택권이라는 명목으로 검정 교과서 제도를 밀어부쳤고, 초등학교 아이들의 발달 수준을 고려할 때 결국 학습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는 9월 중에 이렇게 영어 교과서 선정을 위해 13종의 교과서를 전시하고 선정위원회를 열어 선정작업을 해야 한다. 3-4학년 교과서는 지난 해 선정했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별다른 논의 절차 없이 추진되고 있다.
▲ 선정작업을 위해 학교에 전시 중인 5-6학년 영어검정교과서 13종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는 9월 중에 이렇게 영어 교과서 선정을 위해 13종의 교과서를 전시하고 선정위원회를 열어 선정작업을 해야 한다. 3-4학년 교과서는 지난 해 선정했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별다른 논의 절차 없이 추진되고 있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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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4학년 영어 교과서 검정에 통과한 도서는 14종이었는데 반해, 2011년 5,6학년 영어 교과서로 검정에 통과한 교과서는 7종과 6종이다. 문제는 3~6학년 모든 학년에 출원을 해서 검정에 통과한 교과서는 단 4종 뿐이라는 것이다.

초등교육이 고등교육에 대해 갖는 특이점은 바로 배우는 학생들의 발달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손이 많이 간다. 1학년이 2학년과 다르고 2학년이 3학년과 다르다. 영아에 비해서는 느릴지 모르지만 중등 아이들에 비해서는 발달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학년간 편차도 크고 개인간 편차도 크다. 그래서 초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은 늘 이런 발달 수준을 염두해 두고 교육을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스스로 계획해서 학습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장 교사들은 검정교과서 제도는 다양한 교과서로 배우는 장점보다는 스스로 학습을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이 교과서 저 교과서에 나온 표현들을 모두 배워야 하는 식으로 학습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했다.

3학년 때는 A출판사, 4학년 때는 B출판사, 5․6학년 때는 C출판사의 교과서로 공부하게 된다면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다양한 출판사의 다양한 집필진이 쓴 다양한 교과서로 공부하게 되니 참 좋다고 느낄까 혼란스러워할까? 또 하나 이런 혼란이 교과서 선정 과정 자체가 처음이었던 초등학교 현장에서 다양하게 사용해보자는 의견으로 선택했다가 그 한 번의 선택이 고착화되는 과정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8월 26일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열렸던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 정책 연수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교과서 정책도 점차 민간으로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발달 수준에 맞는 교과서 정책이 아니라 시장친화적인 교과서 정책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 정부의 교과서 정책 변화 방향 지난 8월 26일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열렸던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 정책 연수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교과서 정책도 점차 민간으로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발달 수준에 맞는 교과서 정책이 아니라 시장친화적인 교과서 정책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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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상황은 바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상황이다. 2010년 우리 학교의 교과서 선정위원회는 3학년은 A출판사, 4학년은 B출판사의 교과서를 선정했다. 이유는 3학년 4학년 선정 담당자들이 각각 다른 것을 선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말 교과서 주문을 맡은 담당자는 내년에 사용할 3,4학년 영어 교과서를 주문하라는 공문을 받았고, 선정위원회를 다시 여는 과정도 없이 2010년에 선정했던 그 교과서를 그대로 학생수만 바꾸어서 주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니 올해 A출판사 교과서로 공부한 3학년이 4학년이 되면서는 B출판사 교과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올 9월에는 5,6학년용 교과서 선정해야 한다.

교과서를 집필한다는 것은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집필진마다 나름의 구성 체계를 갖고 연구하고 계획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사교육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당연히 동일한 집필진이 집필한 교과서를 선정해서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배워가는 것이 가장 체계적인 영어 학습 과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사실적 정보 묻고 답하기라는 의사소통 기능 중에 How Many~? 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교과서는 여기에 동물의 수를 세도록 구성하고, 어떤 교과서는 과일의 수를 세도록 구성한다. 즉 기능과 내용이 함께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교과서 저 교과서 골라 쓰다 보면 이 내적 체계가 무너지고 A에서 배운 것을 B에서 또 배울 수도 있고(이건 그래도 괜찮겠지만) A에서도 안 배웠는데 B에서는 이미 지난 학년에 나왔던 내용이라 안배우게 되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다.

나중에라도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면 좋겠지만 6학년 때 실시되는 전국 수준의 일제고사는 이럴 시간과 여지를 두지 않는다. 결국 학생과 학부모는 이 틈을 메우기 위해 사교육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해마다 교과서 선정위원회를 열어서 해마다 다시 선정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복잡한 행정적 절차라 하더라고 최소한 이 교과서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입장에서 한 번만 더 생각해 봤다면 이런 식의 교과서 선정과 주문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2010년 교과서 선정 위원회에 이런 사실이 미리 공지되었다면 3학년 4학년 서로 다른 출판사의 교과서를 선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교과부의 행정편의적 임시대응적 정책 추진이 빚은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태그:#초등영어, #검정교과서, #2009개정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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