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남석(부경대) 교수가 첫 산문집 <간판 없는 거리>(푸른사상)를 펴냈다
▲ 문학+연극+영화 평론가 김남석 부경대 교수 김남석(부경대) 교수가 첫 산문집 <간판 없는 거리>(푸른사상)를 펴냈다
ⓒ 푸른사상

관련사진보기


정거장 플렛포옴에
내렸을 때 아무도 없어,

다른 손님들뿐,
손님 같은 사람들뿐,

집집마다 간판이 없어
집 찾을 근심이 없어

빨갛게
파랗게
불 붙는 문자도 없이

모퉁이마다
자애로운 헌 와사등에
불을 켜놓고,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 사람들
다들, 어진 사람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돌아들고.
-윤동주, <간판 없는 거리> 모두           

우리나라 '영화의 뿌리' 부산을 디딤돌로 삼아 영상문화를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 자치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문화예술로 나아가고자 기획된 부산국제영화제. 1996년 처음 열린 부산국제영화제는 지금 지구촌에서 가장 힘 있는 영화제 중 하나이자 아시아 으뜸 영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 영화제를 통해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감독과 영화인도 꽤 많다.

20011년인 올해도 지난 10월 6일(목)~14일(금)까지 부산 해운대와 남포동 일대에서 영화제가 화려하게 열렸다. 우리나라와 아시아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아름다운 박수를 받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이 영화제를 잘근잘근 씹는(?) 이가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연극평론가, 영화평론가로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남석(부경대 교수)이 그다.

그는 왜 "부산국제영화제는 없다"고 우기는 것일까. 그가 바라본 부산국제영화제에는 '부산'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고, "점령군처럼 내려온 서울의 영화 관계자"들만 북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산에 뛰어난 영화 인재들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있어도 서울에서 내려온 점령군(?)들이 "인재들을 데리고 상경"하고 있다.

김남석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없다'는 제목을 단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영화의 도시로 알고 있다. 해외에서도 그렇다고 한다"고 쓴다. 그는 "부산 출신 배우들은 부산에서 성장기회를 엿보다가도, 서울에서 부르기만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올라간다"라며 "부산은 영화의 촬영지만 제공했을 뿐, 그 나머지는 부산이 아닌 도시의 몫"이어서 "부산은 영화의 도시이지만, 정작 부산에는 영화가 없다"고 거세게 꼬집었다.

'김남석 자화상'이자 '한국 문화예술 '현주소'
                             
‘간판 없는 거리’는 시인 윤동주가 쓴 시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마구 ‘헛갈리는 거리’ 곧 ‘이름 없는 우리 문화예술거리’다
▲ 평론가 김남석 첫 산문집 <간판 없는 거리> ‘간판 없는 거리’는 시인 윤동주가 쓴 시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마구 ‘헛갈리는 거리’ 곧 ‘이름 없는 우리 문화예술거리’다
ⓒ 푸른사상

관련사진보기

"나는 옛날부터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른 사람과 약간 달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길 위에서 살았다. 그래서 나의 집은 빈 집이 될 수밖에 없었고, 나의 영혼은 길 위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 정직하게 그 길 위의 노정을 여기 남기고자 한다. 이 책은 내가 길 위에서 생각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머리말 '길 위에서 생각하다' 몇 토막

문학평론가, 연극평론가, 영화평론가로 가시밭길이 곳곳에 널린 문화예술이란 언덕 곳곳을 누비며 그 속내에 든 알맹이와 껍질을 키질하고 있는 김남석(부경대) 교수가 첫 산문집 <간판 없는 거리>(푸른사상)를 펴냈다. '간판 없는 거리'는 시인 윤동주가 쓴 시이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마구 '헛갈리는 거리' 곧 '이름 없는 우리 문화예술거리'다. 이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그가 그동안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발표한 칼럼 원고를 한데 묶은, '김남석 자화상'이자 '한국 문화예술 현주소'다.     

이 책은 제1부 '길 위에서의 명상', 제2부 '영화와 사회', 제3부 '마음의 기록들', 제4부 '우리 문화', 제5부 '문화에 대한 잡담들' 등 모두 5부에 산문 58편이 문학과 연극, 영화를 때로는 부드럽게 쓰다듬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거칠게 꼬집기도 한다. '간판 없는 거리', '바다 축제와 즐김의 문화', '외모는 괴로워', '죽음과 싸우는 사람들', '술집에서 공부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없다', '디지털, 젊음을 캐스팅하다', '문학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등이 그 산문들.

김남석은 머리말에서 "나의 지인들은 내가 쓰는 논문이나 평론보다는, 칼럼이나 수필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귀띔한다. 그는 "그것은 아마도 접근성이 용이해서였을 것"이라며 "신문 칼럼은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이유를 더 찾아본다면, 그것은 '내 마음'대로 썼기 때문일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서울은 우리 문화예술 상징하는 '대표선수' 아니다

"우리 사회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아름다운 외모와 날씬한 몸매에 무비판적으로 집착하게 되었다. 그 결과 드러난 아름다움은 '미덕'이고, 추한 외모는 '도태'라는 의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말았다. 영화 속 추녀의 좌절과 이어지는 변신은 사회로부터 가해지는 이러한 압박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면 사회 전체를 지탱하는 기본적 양심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61~62쪽, '외모는 외로워' 몇 토막

이 산문집에 실린 글들은 '지역에서 바라본 세상'과 '주변에서 바라본 현실'이 가로와 세로로 놓여 있다. 김남석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부산에 살고 있다. 그는 '이방인의 눈'으로 지구촌 문화예술이 지니고 있는 심장, 그 심장에서 팔딱팔딱 뛰는 싱싱한 소리를 듣는다. 저만치 '서울바람'에 낙엽처럼 뒹구는 문화예술이 지닌 초라한 꼬라지(?)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그는 우리 문화예술이 마치 서울이 '대표선수'라도 된 것처럼 설치는 모습에 말총을 쏜다. 기득권을 지닌 기성계층이 지닌 '관습화된 권력'에 매를 호되게 친다. 그는 '외모는 괴로워'란 글에서 지나친 '외모 지상주의'는 자칫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 문제 될 게 없다면 문제가 없다는 사고 관념을 낳아 우리 사회의 기준을 파괴할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그 한 예로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도마에 올린다. 이 영화는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믿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뒤 아름답고 날씬한 여자로 바뀌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있다. 그는 이 영화가 "상업적 목적을 배제하지 않은 대중영화임을 감안한다면, 대단히 유효적절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고 박수를 짝짝짝 보냈다.
  
21세기 문화예술에게 때로는 매질을, 때로는 포옹하다

"나는 즐겨 영화관을 찾는다. 그리고 그때마다 놀라곤 한다. 우리나라에 이런 화장실이 있다니. 잘 지어진 건물, 깨끗한 외부 환경, 친절한 직원들, 그리고 놀라운 화장실... 정작 놀라운 것은 이 화장실에 '남' 혹은 '남자' 또는 '여' 혹은 '여자'라는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 'MEN' 혹은 'M' 또는 'WOMEN' 혹은 'W'이 있다"-226쪽, '화장실에 대한 명상' 몇 토막

그는 길에서 21세가 품고 있는 대한민국 자화상을 줍는다. 그는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만국 공용어인 '화장실 그림'(남자는 바지로, 여자는 치마로)이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라고 되짚은 뒤 "영어로만 화장실을 표기하는 행위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저버린 처사이다. 세상에 'men'을 모르는 사람이 있냐고 반문하지 말자"고 콕 꼬집는다. 문제는 'men'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없다'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늘 여행 중이라고 생각하곤 했다"고 말하는 김남석. 그가 이번에 펴낸 산문집에는 말 그대로 길에서 바라보는 우리 현실이 알몸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여행을 하면서 꼼꼼하게 주운 그 산문 속에 21세기 우리 사회가 드리우고 있는 그늘이,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어제와 오늘, 내일이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는 그 말이다.

김남석 첫 산문집 <간판 없는 거리>는 그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딱딱한 문예이론이나 그 문예이론을 모아 엮은 점잖은(?) 학술서가 아니다. 이 산문집에는 그가 움켜쥐고 있는 문학과 음악, 영화에 대해 때로는 싫은 소리를, 때로는 포옹을 한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산문집은 우리나라 문화예술 모두를 꿰뚫고 있다.     

"우리는 한때 한옥을 외면하고 양옥을 선택했다"(한옥을 돌아보다)라거나 "올레는 특별한 길이 아니었다"(올레를 걷다), "우려와 불편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개방되어야 한다"(마음의 문을 연다는 것), "나무가 아플까봐 도끼가 들어간다는 말을 외치면서 베던 나무"(나무를 존중하는 마음), "이제 만화를 최고의 문화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만화가게에 가다) 등이 그러하다. 

문학+연극+영화평론가 김남석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여자들이 스러지는 자리-윤대녕 론'이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가 되었다. 그는 대학원에 다닐 때 틈틈이 쓴 연극평론으로 연극평론가가,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화평론 '경박한 관객들-홍상수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시선들'이 당선되면서 영화평론가가 되었다.

펴낸 책으로는 연극 관련 연구서 <오태석 연극의 미학적 지평> <오태석 연극의 역사적 사유> <한국의 연출가들> <조선의 여배우들> <이윤택 연극의미학적 시원> <난세를 가로질러 가다> <1930년대 조선의 대중극단들>이 있다. 평론집으로는 <비평의 교양학> <마음의 생태학> <어려운 시들> <빛의 유적>이 있으며, 영화 관련 연구서 <한국 문예영화 이야기> <기억된 미래> <영화, 어떻게 읽을 것인가> 등이 있다. 지금 국립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간판 없는 거리

김남석 지음, 푸른사상(2011)


태그:#김남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