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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안녕.하.씹.니.까? 메뚜기 동생인 사마귀의 동생, '알레르기'입니다. 엄숙, 예의, 도덕 이런 말만 들으면 온 몸에서 두드러기가 솟고 궁뎅이를 확 차뿔꼬 싶은 '알레르기'입니다. 오늘 주제는 '비움과 채움'입니다. 알 건 모르고, 모르는 건 더 몰라도 되는 여러분, '비움과 채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도 아주 쉬운 '비움과 채움' 전수를 위해 선생님 한 분을 모셨습니다. 일삼아 고소하고 취하하는 어느 국회의원 덕분에 몸값만 높아진 일수꾼 선생님 대신 오늘은 날건달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2.
안녕.하.씹.니.까? 저는 오늘 여러 분들에게 아주 소중한 가르침 전해드릴 '날건달'입니다. '비움과 채움'. 아주 쉽습니다. 돈만 많으면 돼요. 여러분, 잘 들으세요! 우선 몸을 비워야 겠다. 그러면 당장 운동 시작하세요. 월 몇만원, 육개월 등록시 십여만원도 안되는 그런 싸구려 동네 헬스장에는 가지 마세요. 그렇게 비워선 효과 없습니다. 연예인들만 다닌다는 몇백만원 짜리 호텔 헬스장 정도는 다녀줘야 어디 나가 요즘 몸 좀 비운다 우세 떨 수 있습니다. 그걸론 부족하다, 그러면 강남 몇 곳, 연회비 수천만원 되는 샵에 등록, 피부관리까지 받으세요.

돈이 부족해 어렵다구요? 괜찮아요. 집 팔고 대출 받으면 됩니다. 이도저도 아니면 비우기 전에 몸을 잔뜩 부풀리세요. 아침 먹고, 아침 먹고, 아침 먹고 그렇게 하루 아홉끼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드세요. 두어 번 더 먹으면 효과 백방입니다. 그리고 방송국에 연락하세요. 요즘 개떼처럼 종편이 동시다발 개국해 방송사마다 아이템 찾느라 눈이 희벌건 합니다. 몸이 터질 만큼 최대한 살 찌운 뒤 인터넷 검색 조립으로 적당한 사연 하나 만들어 방송국에 보냅니다.

뒷 일은 방송국에서 다 알아서 해 줍니다. 살도 빼주고, 겁나게 많이 빼면 목돈도 턱하니 안깁니다. 한 곳에서 성공했다면 채널 바꿔 재탕, 삼탕, 뻔질나게 가능합니다. 또 살 찌고 또 빼면 돼요. 기억하는 시청자, 아~무도 없습니다. 혹시 찌질하게 네티즌 수사대가 시비 걸면 '감사합니다'를 세 번 복창하세요. 드디어 여러분도 연예인에 등극하는 거예요. 인터넷 검색 순위안에 자신 이름이 오르 내리는 희열, 여러분도 만끽할 수 있습니다.

3.
자, 두 번째 '비움과 채움'. 아주 쉽습니다. 돈만 많으면 되요. 여러분, 잘 들으세요! 재산을 비워야 겠다. 그러면 기부부터 시작하세요. 범생이처럼 가까운 이웃부터 돌보며 소액 기부 하겠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비우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진짜 범에 물려 갑니다. 그럼, 어떻게 재산을 비워야 하느냐.

먼저 서약을 공개하세요. 10억, 아니 100억원 재산을 사후에 기증하겠다고 서약문을 쓴 뒤 언론에 깜짝 공개합니다. 기자회견도 여세요. 기자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걱정할 거 전혀 없습니다. 잠깐 눈물 흘리는 모습, 잠깐 환하게 웃는 모습, 딱 두 장 사진 첨부해 기자들에게 보도자료 쫘악 뿌리세요. 10억, 100억, 1000억원을 사후에 기증하겠다는 문구에 밑줄 쫘악, 진한 글씨로 강조 잊지 마시구요.

여러분 재산이 바지 주머니까지 탁탁 털어 10만원이 채 안 돼도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사후 기증입니다. 언론은 여러분이 그만한 돈을 갖고 있느냐 여부 따위에는 하등 관심 없습니다. 거액 기부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에만 초점 맞춰 영웅 만들기에 정신 없습니다. 여러 분은 비움의 초인으로 가만히 뒷짐지고 미소 지으면 됩니다.

사후보다는 지금 당장 재산을 기부해 의미있는 비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도 간단합니다. 돈만 많으면 돼요. 만약 여러분이 직원을 고용해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면 현재 일하는 정직원 싸그리 해고하고 비정규직이나 사내하청으로 바꾸세요. 그걸로도 돈이 여의치 않다. 제품 값 올리세요. 제주도에 유채꽃 피어 제품 값 올리고,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져 제품 값 올리고, 아침에 해가 떠 제품 값 올리고, 축구가 축구공으로 경기한다고 제품 값 올리고.

세상만사 제품 값 인상의 명분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유네스크가 선정한 전세계 희귀 바퀴벌레 육성 사업이나 한국형 똥파리 멸종종 복원 100년 프로젝트 같은 실체도 정말 불분명한 사업에 기부하겠다 약속하세요. 실제 기부가 아니라 약속만 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돈은 아무도 손 대지 못하도록 여러분만의 비밀 곳간에 안전히 쟁여 놓고 기부 약속만 언론에 알립니다. 편파, 불공정 보도를 일삼는 언론일수록 입질 1순위입니다. 자고나면 여러분은 한국이 낳은 자랑스런 '기부천사'로 변신해 있을 겁니다.

4.
자, '비움과 채움' 비결 세 번째. 아주 쉽습니다. 돈만 많으면 돼요. 여러분, 잘 들으세요! 앞에 두 방법, 잊어도 됩니다. 세 번째 하나만 기억해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경찰차 출동 안 합니다, 쇠고랑 안 차요. 요즘 리조트들 몸과 마음 다 풀어주고 비워주는 힐링 프로그램, 힐링 스파가 유행입니다. 번거롭게 매번 이용권 끊지 말고 그냥 분양 하나 받으세요. 단돈 몇 천만원이나 수억원 정도 있으면 됩니다. 그 돈도 없으면서 '비움과 채움' 한다고 하면, 지나가는 개가 '디스' 합니다.

다른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아요. 교회에 나가세요. 어떤 교회 나가야 하는가, 애~매 합니다. 오늘 여기서 딱 정해 드립니다. 도심 사방팔방 5㎞ 밖에서도 떡하니 교회가 보여야 합니다. 교회 건물 자체가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어 우람하고 위압적이어야 합니다. 건물만 크고 교인 수가 몇 천명 밖에 안 되면 쳐다보지도 마세요. 속 빈 강정입니다. 교인 수가 수만명, 수십만명은 되고 전국 프랜차이즈 교회도 꽤 돼야 됩니다.

그럼 이 곳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하느냐? 주차 정리를 하세요. 몸과 마음 싸그리 비우고 몇 년 동안 주일 주차봉사에만 전력하세요. 어쩌면 여러분도 우리나라 대빵 자리에 선출될지 모릅니다. 알 건 모르고, 모르는 건 더 몰라도 되는 여러분, 내년에 무엇이 있지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선거때마다 우후죽순 난립하는 후보들 때문에 누굴 찍어야 할 지 모르겠다. 이거 애~매 합니다.

오늘 여기서 딱 정해 드립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대형교회 담임목사님, 이왕이면 자식들에게 대형교회 대물림하는 놀라운 은사를 몸소 보여주시는 목사님들이 더 좋습니다. 이 분들, 선거일이 임박하면 누굴 찍어야 할지 딱 정해 줍니다. 뭐, 선거관리위원회가 실정법 위반이라고 시비해도 전혀 쫄지 않습니다. 뼛 속부터 하느님 나라를 따르시는 분들이 잖아요. 목사님이 찍어라 하는 분들, 찍어라 하는 정당에 마음도 비우고 양심도 비우고 머리도 비우고 투표하세요.

그렇게 투표한 분들로 투표함이 가득 채워질수록 대형교회는 더 부흥하고 주차장은 더 미어터질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삶은 더 팍팍해져 쪽박 찼다구요? 걱정 마세요. 서울역(아, 그곳은 얼마전부터 야간노숙금지를 시행하고 있네요--;;) 말고 지하철역 등에 돗자리 깔면 되죠. 드디어 당신은 눕는 곳이 집이요, 돗자리와 배낭 하나면 이사 준비 끝인 비움과 채움의 진정한 노마드가 됐습니다. 얼렐루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무료문화잡지 '행복한 고민' 3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비움, #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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