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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4살 때 처음 입소하여 ○○○○ 어린이집을 다닌 지도 어느덧 8년의 시간이 흘러 12살이 되었습니다. 작고 연약했던 누워만 있던 아이가 지금 이렇게 혼자 중심을 잡고 서있고 말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그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국화반 강소은 어머니가 졸업식 답사를 합니다. 글 읽는 어머니 목소리가 흔들립니다.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없는 선생님들이 손등으로 붉어진 눈가를 얼른 훔칩니다. 다행입니다. 재잘대는 아이들 소란이 어른들 울먹이는 소리를 묻어버립니다.

 

큰애가 5년 동안 다녔던 어린이집을 떠납니다. 그곳은 장애아와 일반아동이 함께 어울려 노는 참 아름다운 놀이터입니다. 큰애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름'과 '같음'이 뭔지 스스로 깨닫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쌓았겠죠? 소중한 시간이 흘러 이제 졸업하게 된 겁니다.

 

어린이집 졸업식, 도깨비 모습으로 보낼 수야 없지

 

지난 24일 아침입니다. 온 집안이 시끌벅적합니다. 아내가 큰애 졸업식에 입고 갈 옷을 챙기느라 서랍과 옷장을 바삐 오갑니다. 얌전히 닫혀 있던 서랍은 칸칸이 열려 있고 서랍장 턱엔 다양한 옷가지들이 축 늘어져 있습니다. 안방 옷장문도 모두 활짝 열렸네요.

 

아내가 조금이라도 더 예쁜 옷을 찾고 있습니다. 그 소란에 저도 한몫 끼어 봅니다. 어제 자른 큰애 머리카락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곳저곳 하늘로 솟았습니다. 큰애는 거울 앞에 서보더니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양에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내와 저는 그런 꼴이 가당키나 합니까. 도깨비 같은 모습으로 보낼 수야 없지요. 안타깝게도 늦잠 자며 게으름을 부린 터라 머리 감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 없습니다. 이럴 때 요긴한 물건 두 개가 있지요.

 

단 1분이면 감쪽같이 머리를 정리해 주는 신기한 물건, 분무기와 헤어드라이기입니다. 무심코 옷 챙겨 입는 큰아들 손을 와락 잡아끌고 거울 앞에 섰습니다. 큰애 머리에 찬물을 칙칙 뿌려댑니다. 솟아오른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힘차게 누릅니다.

 

그리고 미리 달군 헤어드라이기를 큰애 머리에 들이댑니다. 손가락을 쫙 펴서 하늘로 솟은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넣습니다. 손가락을 힘차게 흔들어 대며 말렸더니 멋진 모습이 되살아납니다.

 

선생님과 맞잡은 손으로 졸업장을 받기도... 부모 얼굴엔 눈물이 고이고

 

재빨리 옷을 챙겨 입히고 두 아들 엉덩이를 토닥이며 현관문 밖으로 내쫓습니다. 꽃단장 한 큰애, 어제와 다름없이 평범한 둘째를 먼저 보내고 아내와 저는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되는 행사장으로 향합니다.

 

조용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행사장에 들어서니 먼저 도착한 부모들이 뿌듯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한 손엔 아이들 품에 안겨줄 예쁜 꽃도 준비했네요. 곧이어 행사는 시작됩니다. 고사리 손에 마이크 잡고 정들었던 어린이집을 떠나는 형과 누나들을 위해 준비한 글을 또박또박 읽습니다.

 

미리 준비한 재미난 율동과 노래로 즐거움을 더합니다. 이어서 어느새 훌쩍 큰 형과 누나가 답사를 합니다. 원장선생님께 졸업장과 선물도 받았습니다. 큰애는 '자연박사 상'을 받았습니다. 숲에서 신나게 논 덕분입니다. 그렇게 한명 무대로 불러내 졸업장을 줍니다.

 

그때마다 아낌없는 박수가 터집니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과 맞잡은 손으로 졸업장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뒤편에서 뿌듯하게 바라보는 부모 얼굴에 눈물이 고입니다.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졸업생 어머니 두 분 답사가 이어집니다.

 

 

내일 향해 달려갈 아이들, 슬픔 따윈 한방에 날려 보낸다

 

어머니들은 지난 시간 몸이 불편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느꼈던 소중한 기억을 기쁜 마음으로 읽어 내려갑니다. 아들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산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작은 목소리가 주위 모든 사람들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이곳저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납니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 엄마 모습을 보며 조금 당황해 합니다. 그러나 곧 지들끼리 히득거리며 노는데 정신을 쏟습니다. 준비된 순서를 모두 마치고 졸업식 노래를 부릅니다.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네요. 제 마음엔 가사며 곡조가 약간 서글프게 들리는데 아이들은 마냥 즐겁게 높은 목소리로 부릅니다.

 

내일을 향해 달려갈 아이들에겐 슬픔 따윈 한방에 날려 보낼 큰 희망이 있나봅니다. 그날 모두 스물다섯 명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졸업했습니다. 그 중엔 8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뛰놀며 보낸 아이도 있습니다. 참 아쉬운 이별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영원히 함께 있을 수는 없겠지요.

 

 

팔다리가 없다? 절망도 없다!

 

힘들지만 또 다른 세상과 만나야 합니다. 더 너른 세상을 향해 뚜버뚜벅 힘차게 걸어가야 합니다. 졸업하는 아이들 모두 세상을 향해 용감히 걸어갈 겁니다. 때론 모진 바람에 멈칫 할 때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배운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얻겠지요.

 

그리고 함께 걸어가면 서로 힘이 된다는 경험도 했으니 그리 움직이면 될 겁니다. 졸업식 모습을 보니,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호주 청년 닉부이치치라는 청년이 쓴 책에서 읽었던 글이 떠오릅니다.

 

팔다리가 없다? 절망도 없다!


태그:#어린이집, #졸업식, #졸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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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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