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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방문 갔던 집에서 녹두죽 대접을 받았습니다.
▲ 녹두죽 한그릇 가정방문 갔던 집에서 녹두죽 대접을 받았습니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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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간다. 중요한 약속이 몸을 끌어당긴다. 가까운 보건지소가 멀게만 느껴지는 분들 때문이다. 중풍이나 노령으로 걸음을 옮길 수가 없는 어르신들은 직접 찾아갈 수 밖에 없다. 전지전능한 누군가는 '병든 자여, 다 내게로 오라'고 했지만, 나는 감히 오라고 말할 군번이 아니다.

보건지소 정면으로 뻗어있는 큰 길을 따라 걷는다. 농협 건물을 지나면 바로 오른쪽으로 야트막하게 골목길이 얼굴을 내민다. 좁다란 골목 좌우로 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명패가 달려 있는 대문을 대여섯개 지나칠 무렵이면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종아리에 힘이 서서히 들어갈 찰나 당도하게 되는 곽형례 할머니댁.

닫힌 문고리를 부드럽게 돌려 풀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찬바람이 부는 때라 닫혀 있는 마루 앞 미닫이문. 왔음을 알리자 인기척이 들렸다. 안방의 창호문이 열렸다. 기다란 지팡이가 문고리를 밀친 것이다. 무릎이 안 좋아 매번 누워계신 할머니에게는 손과 다름 없다. 마당에서 빤히 내다보이는 진료소가 천릿길이다. 마지막으로 가 본게 언제라더라? 몇달 전 예방접종 때 아는 사람 도움으로 들른 이후로 집 안에서 두문불출.

다행히 노인성질환을 인정받아 노인장기요양보험 3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으로서 치매·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을 가진 사람만이 수급자가 될 수 있다. 그 중에서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인정을 받아야 하며, 까다로운 심사기준도 통과해야 한다.

어렵사리 기준을 통과한 곽 할머니에게 일주일에 4차례 간병인이 온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딴 이웃사촌이 와서 빨래며 청소를 해 준다. 가끔씩 밥도 같이 먹는 모양이다.

"일 안 해도 된당께."

그저 혼자 있는 쌀쌀한 집에 사람이 드나들어서 훈김이라도 도는 게 고맙단다. 사실 어르신을 기쁘게 하는 건 따로 있다. 로마인들이 그토록 즐겼다는 그것. 율리아 수로가 건설되자 펑펑 넘치는 물이 그들을 목욕탕으로 이끌었다. 한창 때는 무려 11개의 제국 목욕탕과 926개의 공중목욕탕이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난 간병인 없어도 돼. 근데 목욕차는 좋아. 목욕탕 가도 저렇게는 안 해줄 거이네."

요즘 목욕탕에는 바퀴가 달려서 집 앞까지 대령한다. 목욕탕을 궁전처럼 꾸미면서 신전, 석굴, 산책로 심지어 음악당, 정원까지 집어넣었던 폭군 칼리굴라조차 제 발로 걸어서 몸을 담궜겠지? 이동목욕차에 상주하는 봉사자 두 분이 정성 치성으로 일주일 묵은 때를 벗겨주니 그 개운한 맛을 잊지 못한다. 나 같은 공중보건의가 한달에 한번씩 월급 받을 때 기분이지 않을까?

말하면서도 뭔가 켕겨하신다. 요양보호를 받다가 혜택이 줄어든 동네사람들이 생각난 것이다. 신 할머니는 중풍으로 오른쪽이 마비돼 요양보호 1등급 판정을 받았다. 1년마다 새로 심사를 하는데, 정신이 맑은 게 문제가 되었다. 치매 여부가 중요한 심사기준 중 하나인데, 야무지게 말을 하는 걸 보고 등급이 야무지게 강등되었다. 3등급을 맞으니 간병인이 일주일에 두 번만 온다. 뭐든 똑같이 노나야 좋은 것인데, 누구는 많고 누구는 적으니 불편하게 느끼시나보다.

노송마을 이씨 할머니는 허리 아래를 못 쓰신다. 집념이랄까 평생의 습관이랄까. 굳어버린 하반신을 이끌고 손을 발 삼아 밭으로 나간다. 앉은 자세로 지심도 매고 농작물도 심는다. 하다 하다 힘들면 기지개도 펴고 한숨돌릴텐데 항상 앉은 자세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메주 쑤고 장도 담근다. 어느 날 심사위원들이 왔다.

"어떻게 사십니까?"
"난 아픈데는 없어. 이거랑 저것도 내가 다 해 묵제. 남으믄 자슥들도 보내주고."

삶을 초탈한 말투가 등급까지 초월해버린 탓일까. 정상인과 다름 없이 생활한다며 여지없이 밑으로 내려간 등급. 뒤늦게 안 자녀들과 동네 교회 목사님이 탄원을 넣었다. 재정 부족을 이유로 기존 등급 보유자도 줄이는 판에 한 번 내려간 등급이 위로 갈 수가 없다. 얘기를 하다 곽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찬다.

문이 삐걱 열리더니 박재심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할머니가 자기 숙모되시는 분이라며 자주 놀러 오는 모양이다. 곁에 있는 나를 보고 기꺼워하는 눈치.

"아따 반갑소. 안 그래도 녹두죽을 노나 먹을라 했는데 가지 말고 기다리소. 같이 묵게."

나는 침을 놓고 그녀는 반죽을 한다. 반죽을 여러 번 치대더니 칼로 썰어 면발을 뽑아낸다. 녹두 냄새 퍼지는 가운데 방 안은 훈훈하다. 치료가 끝날 무렵 개다리 소반에 김치 담긴 접시와 녹두죽 세 그릇이 올려졌다. "요렇게 모이니까 좋구만." 세 명이 같이 밥상에 마주 앉아본 게 언제일지. 할머니는 목욕탕에 온 것처럼 얼굴이 환했다. 한 냄비 가득 끓인 죽은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역시 뭐든지 노나 먹어야 맛있는 법이다.


태그:#녹두죽, #가정 방문, #요양등급, #한의사, #공중보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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