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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사-석남사 길은 서운산 자락을 휘돌아 가야하므로 산길의 풍취가 감돈다. 그러나 석남사에서 칠장사로 가는 길은 서운산 기운에서 벗어나 호젓하고 운치가 있다. 길은 평탄하고 길옆엔 호수도 있다. 칠장산, 서운산을 거쳐 태안반도로 향하는 금북정맥(錦北正脈)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다.

칠장사는 금북정맥의 마루, 칠장산에 기대어 있다. 앞에는 제비월산이 감싸고 있어 포근하다. 우리나라 절은 대개 계곡 물길을 거슬러 올라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칠장사도 계곡  물길을 따라간다. 그 길가에 묵언마을이 있다. 마을 유래는 별개로 이름만으로 일주문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을 비우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는 것이다.

칠현산에 바짝 기대어 있다. 맞배지붕의 지붕선이 상큼하다
▲ 칠장사 정경 칠현산에 바짝 기대어 있다. 맞배지붕의 지붕선이 상큼하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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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에 이르면 철당간지주가 제일 먼저 반긴다. 당간지주는 절을 알리는 상징물이므로 절 입구에 세워진다. 대부분 당간은 돌로 되어 있지만 여기는 철당간이다. 철당간은 높아서 멀리서도 절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칠장사 당간지주는 12미터, 건물로 치면 14층 높이 정도 남았는데 원래는 28층 높이였다 하니 꽤나 높았었다. 몇 날을 걸어 찾아오는 객들에게 당간에 걸린 깃발은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철 당간을 쓰는 이유가 이게 전부일까? 우리나라 철 당간은 공주 갑사와 청주시내 용두사터 그리고 칠장사에 있다. 우연인지 공주 구시가지, 청주시내, 칠장사 세 곳 모두 풍수지리상 배가 떠가는 지형, 행주형(行舟形)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배모양 지형에 돛 역할을 했다는 말이 있다. 공주갑사, 청주 용두사터, 칠장사에만 남아 있는 철 당간지주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 철당간지주 배모양 지형에 돛 역할을 했다는 말이 있다. 공주갑사, 청주 용두사터, 칠장사에만 남아 있는 철 당간지주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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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형 지형에는 닻, 돛, 키 중 하나만이라고 있으면 좋다. 자연물이 없으면 인위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이 때 철당간은 돛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는 배지형이 많다. 예전엔 많은 곳이 철 당간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당간지주와 일주문 사이에는 주차장과 가게가 있다. 예전엔 모두 절터였겠지만 지금은 차와 가게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또 새로 조성된 주차장이 절 깊숙이 들어와 있어 그다지 보기가 좋지 않다. 그래도 일주문에 접어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부석사만은 못하지만 제법 잘 자란 은행나무 길이 천왕문까지 안내한다.

칠장사에는 담이 없다. 아직 담 쌓을 여력이 없는 것인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 모르지만 오히려 담 없이 홀로 서있는 건물들이 고고해 보인다. 건물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도 깊은 맛이 난다. 천왕문도 마찬가지다.

칠장사에는 담이 없다. 홀로 서 있는 천왕문이 고고해 보인다
▲ 천왕문 칠장사에는 담이 없다. 홀로 서 있는 천왕문이 고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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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은 보림사의 사천왕을 최고로 치지만 칠장사 사천왕도 그에 못지않다. 나무로 깎아 만든 게 아니라 진흙을 빚어 만든 소조상이다. 목조와 소조는 반반 정도 된다. 옹기처럼 굽거나 청동 같은 쇠붙이로 만든 사천왕은 없다.

사천왕이 밟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칠장사가 임꺽정과 연을 맺고 있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탐관오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사천왕 발밑에 있는 것은 본디 악귀일 것이나 후대로 오면서 중생들을 경계하고 가르치기 위해 탐관오리나 벼슬아치 등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절을 찾는 자의 마음에 따라 복수의 대상으로 여길 수도 있다.

사천왕 발밑에 깔린 사람은 탐관오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 단죄 사천왕 발밑에 깔린 사람은 탐관오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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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에 대해 깊이 있고 세밀하게 그린 작가는 <혼불>의 최명희가 아닌가 싶다. 최명희의 눈에 칠장사의 사천왕도 비켜가지 않았다. 최명희는 눈에 집중하였다. 사천왕 중에 가장 슬픈 얼굴은 칠장사 사천왕이라 하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이 칠장사 사천왕의 눈들은 거꾸로 새까만 자위에 흰 고리눈이었습니다. 그 흰 고리 안에는 진 고등색 동자가 우물에 빠진 달처럼 박혀 떠있어요. 그 눈의 검은자위는 저 신비롭고 무궁한 우주의 광막한 어둠 같기도 하고, 반면에 무명(無明)의 깊은 바다 같기도 했습니다. 말할 수 없이 엄숙하고 고적하고 비밀스러운 그 검음, 거기 동그랗고 차 오른 흰 눈물, 그 흰 고리 눈물은 사바 예토의 말 못할 고통과 비애를 다 빨아드리고도 남을 듯 찰랑거리고 있었지요."

작가 최명희의 눈에는 칠장사의 사천왕의 눈이 슬프게 보였나 보다
▲ 사천왕상 작가 최명희의 눈에는 칠장사의 사천왕의 눈이 슬프게 보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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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벗어나면 바로 마주하는 건물이 명부전이다. 명부전은 칠장사의 여러 이야기를 그림동화처럼 보여준다. 칠장사에 얽힌 설화와 전설, 서사적 이야기를 벽화로 담고 있다. 활 쏘는 궁예의 모습, 임꺽정과 그 무리, 임꺽정의 스승인 병해대사, 혜소대사와 7인의 도적을 벽화로 그렸다.

벽화마다 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의 주요무대도 칠장사다. 임꺽정의 스승 병해대사가 이 곳 칠장사에 머물러 임꺽정과 칠장사의 연은 깊다. 병해대사와 임꺽정 모두 백정 출신이다. 천한 신분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의적과 대사로 변화한다. 이들 모두 사회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 스스로는 이미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어 평등의 세상을 구가했을지 모른다. 

칠장사는 삼라만상 속세의 이야기를 모두 포용하는 너그러움을 보여준다. 불교가 민간신앙과 사람 냄새나는 속세의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명부전이기에 가능하리라. 천왕문에서 <혼불>의 최명희를 만나고 명부전에서 <임꺽정>의 홍명희를 만나고 있다. 두 거장 '명희'를 만나고 있다.

전각으로 그래도 볼만한 것은 대웅전이다. 칠장사에 있는 집은 범종각을 제외하면 모두 맞배지붕이다. 대웅전은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인데 조선후기에 나타나는 양식으로 독특한 것이다. 맞배지붕의 깔끔함과 다포계 공포의 화려함이 어우러져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도 볼만하다. 빛바랜 채색은 제 나이에 비해 겉늙어 보여 예스러운 풍치가 그윽하다.

다포계 공포에 맞배지붕이어서 독특하다
▲ 대웅전 다포계 공포에 맞배지붕이어서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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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옆에는 봉업사터에서 가져온 석불입상한기가 놓여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 얹고 왼손은 가만히 내리고 있는 모습이 경례를 하는 듯하다. 머리와 몸에서 발산하는 불꽃무늬 광배는 날개처럼 보여 마치 하늘을 향해 금방 날아오를 것 같다.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 봉업사터석불입상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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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업사는 죽주산성이 있는 비봉산 자락에 드넓은 터를 잡고 있었던 폐사지다. 지금은 당간지주와 오층석탑만 남아 터를 지키고 있다. 당간과 석탑, 이 곳 칠장사에 모셔져 있는 석불을 감안하면 봉업사는 대단한 절이었음에 틀림없다.

당간지주와 오층석탑이 당당히 터를 지키고 있다
▲ 봉업사터 당간지주와 오층석탑이 당당히 터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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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장사는 여러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절답게 대웅전 옆, 언덕길로 영역이 이어진다. 언덕위에는 칠장사의 중요 이야기가 담긴 나한전과 혜소국사비가 있다. 칠장사에는 혜소국사가 일곱의 도적을 개화시켜 현인이 되게 한 전설이 남아있다. 칠장산이 칠현산이라는 별명을 갖은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지금의 칠장사는 혜소국사와 큰 연을 맺고 있다.

이런 국사의 업적을 글로 새겨놓은 비가 남아있다. 혜소국사비다. 비신과 귀부, 이수가 세 동강나있다. 까만 오석과 하얀 화강석이 대비된다. 비신은 우에서 좌하방향으로 칼로 베인  것처럼 자국이 나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 적장, 가토가 칠장사 노승을 칼로 베니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렸다는 이야기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왜적의 칼자국이 사실인 것처럼 훼손당한 흔적이 있다
▲ 혜소국사비 왜적의 칼자국이 사실인 것처럼 훼손당한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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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소국사비 옆에 칠현인의 현신이라는 일곱나한이 모셔져 있는 나한전 있다.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제일 인기 있는 전각이다. 나한전은 박문수의 과거급제와 관련한 일화로 유명 기도처가 되었다. 나한전 뒤로는 나옹선사가 심었다 전해지는 노송이 나한전을 감싸고 있어 이 나한전은 그나저나 신령스러운 기운이 더해지고 있다.

나한전 안에 일곱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 나한상 나한전 안에 일곱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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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아래 칠장사 전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두 맞배지붕의 지붕선이 산뜻하다. 명부전과 천왕문도 눈에 들어온다. 시대를 초월하여 두 분의 '명희'가 연을 맺고 있는 점이 다시 생각난다. 옆에는 나의 아내가 함께하고 있다. 나의 아내 이름은 이명희. 세 명의 '명희'가 내 주위를 맴돈다. 나도 '명희'라는 이름으로 하여 칠장사와 연을 맺고 칠장사를 떠났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pressianpl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칠장사, #사천왕, #철당간지주, #나한상, #혜소국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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