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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서재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오래도록 함께해 온 책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뭔가를 읽고 쓰는 건 내 일상 최고의 기쁨이다. 서재의 한쪽 벽면을 가득 매운 책들 속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놓여 있다. '진퉁(짝퉁의 반대말로서 짝퉁은 가짜)'은 아니다. 여행 중 마음에 들어 거금을 지불하고 사서, 행여나 부서질까 수건으로 둘둘 말아 들여 온 녀석이다.

오래도록 이 주물을 소중히 여겼다. 서재를 서재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모조품이래도 대단한 조각가의 작품이란 사실이 예술에 대한 내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하지만 최근 영화 한 편을 본 뒤 이 주물은 나의 미움을 독차지하게 됐다.

후배 녀석이 우연히 언급한 말에 나는 89년에 제작된 오래된 영화 <까미유 끌로델>을 다운 받았고, 새벽녘 서재에서 홀로 감상했다. 그리고 영화가 모두 끝났을 때, '생각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뒤로 돌아'를 시켰다. 한마디로 '꼴보기 싫어서!'.

악마가 되어버린 까미유의 남자, 로댕

나만 몰랐지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얘기는 이미 유명하다.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스무 살의 까미유는 예술과 삶의 영역에서 권태기에 다다른 중년의 로댕을 만난다. 인체의 근육과 곡선을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표현할 줄 아는 까미유의 천재성에 로댕은 놀란다. 그리고 천재성만큼이나 정열적인 성격과 빼어난 외모에도...

로댕과 까미유에게 서로는 영감이 되고 함께 작업을 시작한다. 좋지 않은 환경이지만, 둘은 함께 작업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예술에 대한 공감대가 이들을 충만한 행복으로 이끈다. 그 행복 속에서 이들은 곧 스승과 제자를 넘어 연인이 된다. 어쩌면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까미유가 로댕의 여자로 평생 살고 싶은 꿈을 꾸게 된 것도.

하지만 로댕은 까미유를 떠난다. 그의 아내가 되어 예술과 삶의 동반자가 되고 싶다는 까미유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지 않는다. 애절하게 매달리는 까미유에게 로댕은 말한다. 30여년 동거해 온 로즈를 떠날 수 없다고.  

로댕이 로즈를 떠나지 못한 것이 그녀의 음식 솜씨 때문인지 익숙함과 편안함 때문인지 또 아니면 세인의 비난이 두렵거나 까미유의 천재성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이 있어 그런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어쨌든 로댕은 까미유만의 것이 되지 않겠다고 말하고, 까미유는 그런 그를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처음에는 까미유의 홀로서기가 성공적인 듯 했다. 남은 사랑을 일에 대한 열정으로 몽땅 소진해 버리겠다는 듯 조각에 몰두하고 빛나는 작품들이 탄생한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알콜중독에 빠지고 로댕에 대한 피해 망상에 사로잡힌다.

로즈의 손에 끌려가는 로댕, 그리고 로댕에게 무릎 꿇고 애원하는 자신을 표현한 까미유의 작품
 로즈의 손에 끌려가는 로댕, 그리고 로댕에게 무릎 꿇고 애원하는 자신을 표현한 까미유의 작품
ⓒ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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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은 악마야. 나를 망치고 있어!", "로댕이 날 죽일거야!"

한때 자신의 전부였던 남자가 이제는 악마라고 소리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곡되었을지언정 그것 또한 결국 사랑의 한 모습일수 밖엔 없는 것 아닐까?

로댕에 대한 사랑, 분노와 적대감으로 모습을 바꾼 그 미칠듯한 사랑은 그녀를 파멸로 이끌어간다. 그녀는 로댕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우울증과 피해 의식, 편집광적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밤마다 로댕의 집을 향해 돌팔매질을 해대는가 하면 자신의 조각품들을 망치로 깨부수는 등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행동을 한다.

결국, 그녀는 가족에게까지 버림받은 채 정신 병원으로 향하는 마차에 실려 가 죽음에 이른다. 무려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그곳에서 살아간다. 그간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로댕을 죽을 때까지 증오하면서 아니 미치도록 사랑하면서.

'여성성'이 중시되던 당시에 화장과 장신구보다 진흙과 석고를 가까이 한 까미유였기에 그녀는 로댕을 사랑했을 것이다. 조각과 예술의 세계를 공유하며 그의 작품 완성을 돕고 기꺼이 옷을 벗고, 그의 모델이 되면서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영혼과 영혼을 잇는 공감과 공유의 행복이 그녀를 비극으로 몰고 갔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답은 '영혼의 부딪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인 것일까? 대답에 앞서 비슷한 사랑을 했지만, 해피엔드를 맞이한 연인의 얘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존 스튜어트 밀과 헤리엇 스튜어트

존 스튜어트 밀은 천재였다. 그리고 천재성을 제대로 키워낼 축복받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뷰유한 사업가의 아들인 밀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여러 언어와 학문에 대해 개인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학교를 다니지도 않고, 아침이면 아빠와 산책하며 전날 읽은 책들에 대해 논하고 아빠의 친구이자 공리주의자의 창시자인 벤담에게서 '공리주의란 무엇인가'를 직접 배우며 성장했으니, 그는 당연히 또래 친구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밀은 천재이고, 유복했으나... 외로웠다. 그런 그가 함께 얘기 나누고 함께 생각하며 외로움을 벗게 된 것 그리고 세상에 적극적으로 발을 담그기 시작한 것은 한 여자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밀은 어느 모임에서 한 여자에게 반해버리고 만다. 처음으로 생각과 생각이 공유되는 행복한 순간을 맛보게 해 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물 다섯의 밀이 스물 셋의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결혼 4년 차의 두 아이의 엄마였다.

그럼에도 사랑에 빠진 밀과 헤리엇은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헤리엇은 이혼이 허락되지 않는 당시의 현실 속에서 별거를 시작한다. 둘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 오직 편지만을 주고받으며 정신적 사랑을 키워간다.

헤리엇과 책과 신문과 세상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며 비로소 소통의 즐거움을 맛본 밀은 그 공유된 생각들을 책으로 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17년간의 정신적 사랑을 지속해 온 이들은 헤리엇의 남편이 암으로 사망한 뒤에야 결혼한다. 헤리엇과 결혼한 밀은 헤리엇을 통해 최초의 남성 페미니스트가 되기도 했다. 밀은 자서전에서 헤리엇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녀의 두 눈엔 총기가 가득했고 그녀와 얘기를 나눈 사람들은 한결같이 해박한 지식과 창의적인 발상에 깜짝 놀라곤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식탁 위에 팔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는 일뿐이었다."

1800년대 중반. 당시 여성이 사회에 진출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여성의 뇌는 남성의 뇌보다 작아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여성에게는 선거권조차 주어지지 않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밀은 참을 수 없었다. 그건 헤리엇 때문이었다. 자신과 대화가 가능하며 어쩌면 자신을 능가하는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사회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신문에 '여성의 뇌가 작은 것이 문제라면 코끼리에게 선거권을 주라'고 기고를 하는 등 여성의 사회 진출과 선거권 확보를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최초의 페미니즘 서적인 <여성의 종속>을 집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으며, 그가 '영속계약'의 불합리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밀이 "어린 시절에 집안의 약속으로 이루어진 결혼이란 영속계약은 불합리"하니 "이혼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외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랜 기다림 끝에 맺어졌던 이들의 결혼생활은 7년 반 만에 헤리엇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그녀가 죽은 뒤 밀은 결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소수자란 이유로 차별받는 현실을 몸소 체험한 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사회의 원칙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세상을 향해 외치기로.

밀은 오랫동안 근무한 동인도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아내의 유해를 묻은 아비뇽 근처에 집을 마련해 그녀의 무덤을 돌보며 밤낮으로 책 쓰기에 열중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그와 그녀의 생각이 결집된, 정말이지 그 위대함을 찬송할 수밖에 없는 <자유론>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몇 단계 뛰어넘는 공리주의를 만날 뿐 아니라, 개성과 자유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는 어조로 만날 수 있다. 특히 "한 사람의 권력자가 다수를 침묵하게 만드는 것도 올바르지 못하지만, 그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부당한 것은 다수가 한 사람을 침묵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에는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난다.

나는 이 문장 속에서 위대한 사상가뿐 아니라 자신의 여자를 무한히 존중하고 사랑하는 한 남자를 본다. 소수자라는 이유로 세상에 나가지 못한 자신의 여자를 위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한 남자, 그 남자의 사랑이 읽히는 것이다. 그 사랑은 밀이 책 서두에 쓴 문장들에서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진리와 정의에 대한 높은 식견과 고귀한 감정으로 나를 한없이 감화시켰던 사람. 칭찬 한 마디로 나를 무척이나 기쁘게 해 주었던 사람. 내가 쓴 글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녀의 영감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런 글을 나와 같이 쓴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 함께 했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비통했던 순간을 그리며 나의 친구이자 아내였던 바로 그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친다."

1800년대였다. 당시 어떻게 이런 사랑이 가능했을까. 밀은 헤리엇의 사상과 지식과 감성을 인정하고 존경했다. 그것을 빛내기 위해 자신의 최고의 저작 서두에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녀의 영감에서 나온 것'이고, 이 책을 그녀가 '나와 같이 쓴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헤리엇을 칭송했다. 그것은 로댕의 그것과 참으로 대조적이다. 로댕은 자신의 작품에 지대한 영감과 기여를 한 까미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지조차 않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까미유와 헤리엇. 둘 중 어떤 여자의 삶을 살고 싶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참으로 뻔해진다. 그런데 대답에 앞서 또 한 여자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술의 공감대에서 비롯된 완벽한 사랑을 한 것은 둘과 같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끝맺음한 조르드 상드다.

상처도 사랑이라는 조르드 상드

고풍스런 거실과 은은한 커피향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 쇼팽의 야상곡. 그런데 이 곡에는 쇼팽과 조르드 상드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조르드 상드가 얼마나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는지, 또 그 끝이 얼마나 아팠는지를 안다면 피아노 선율에선 비릿하고 짠 눈물 같은 맛이 난다.

상드는 10년간 쇼팽의 연인이었다. 그녀는 결핵으로 투병하던 쇼팽의 곁에서 그를 지켰고 병에서 비롯된 그의 고약한 행동들도 모두 감내했다. 하지만 결국 그와 이별한다. 그렇다면 그녀 역시 "쇼팽은 악마다!"라고 소리쳐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상드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문학으로 자신의 아픔을 승화시켰다. 상처투성이로 끝나버린 사랑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비록 쇼팽이 죽어가며 그녀를 찾았을 때 상드는 쇼팽을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사랑은 가치 있는 것"이라며 쇼팽과의 사랑을 아름답게 정리했다.

아파도 사랑한다 -조르드 상드

나는 덤불 속에 가시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꽃을 찾던 손을 거두지는 않겠네
그 안의 꽃이 모두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꽃의 향기조차 맡을 수 없는 것이기에
꽃을 꺾기 위해서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의 상처도 감내하겠네
상처받기 위해 사랑하는게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받는 것이므로.

로댕에게 버림받는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 까미유. <자유론> 서두를 통해 사랑받고 존경받았음을 온 세상에 보여주는 헤리엇. 그리고 '아파도 사랑이었다'고 시를 쓴 조르드 상드. 위대한 작품, 위대한 예술가와 사상가의 뒤에는 이처럼 인간적이고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까미유가 될 것인지, 헤리엇이 될 것인지 또 상드로 살 것인지는 선택의 몫이다. 나와 너의 세계가 만나 영혼이 뒤섞여 완벽한 일치를 이루는 백프로의 사랑.

"그 끝이 모두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기에... 아니 모두가 그 끝을 아름답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태그:#까미유 끌로델, #헤리엇, #조르드 상드, #로댕,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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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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