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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이면 황백색의 댕댕이덩굴 꽃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주 작아서 보려고 하는 사람들 눈에만 보입니다.
▲ 댕댕이덩굴의 꽃 초여름이면 황백색의 댕댕이덩굴 꽃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주 작아서 보려고 하는 사람들 눈에만 보입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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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댕이덩굴의 꽃을 초여름이 시작되던 때 만났다. 줄기와 이파리가 마와 비슷해서 그냥 마꽃인가 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가다 잠시 쉬며 햇살을 내어놓은 시간에 나가보니 열매가 맺혔는데 분명히 '마'는 아니다.

그랬다.
그 작은 친구의 이름은 '댕댕이덩굴' 혹은 '댕강덩쿨'이었던 것이다.

비온 뒤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댕댕이덩굴의 꽃입니다. 물방울 하나보다도 작습니다.
▲ 댕댕이덩굴 비온 뒤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댕댕이덩굴의 꽃입니다. 물방울 하나보다도 작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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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크기는 빗방울 하나 달아놓을 만큼의 크기다. 황백색의 작은 꽃이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빗방울 하나보다도 작은 꽃, 그 꽃도 오랜만에 내린 비에 목욕재계하고 손님도 맞이한다.

댕댕이덩굴의 뿌리는 한방에서 치열, 신경통, 류머티즘, 이뇨 등에 사용된다고 한다. 물론, 유독성 식물이므로 일반인들이 그냥저냥 약을 지어서 복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고혈압 억제에 특효라 알려지면서 상용화하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자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찾아왔다기 보다는 제 몸의 일부를 나눠주면서 공생하는 것이겠지요.
▲ 댕댕이덩굴 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자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찾아왔다기 보다는 제 몸의 일부를 나눠주면서 공생하는 것이겠지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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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풀, 그냥 잡초라고 불리는 것들이 품은 것들이 인간에게 유용한 것이니 말이다. 지구에서는 하루에 수십수백 종이 인간이 만든 탐욕의 고리 때문에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과연 인간은 그들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작은 애벌레가 찾아왔다. 제 몸의 일부를 나눠줄 것이다. 그렇게 나눠주고도 넉넉하게 피어날 댕댕이덩굴, 작은 꽃이지만 바라보는 눈이 흐뭇해지는 이유다.

댕댕이덩굴의 열매와 물방울, 대략 크기가 짐작이 가시나요?
▲ 댕댕이덩굴 열매 댕댕이덩굴의 열매와 물방울, 대략 크기가 짐작이 가시나요?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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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도 댕댕이덩굴에 걸려 넘어진다"는 말이 전해진다. 작고 보잘 것 없다고 해서 깔보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고도 하지만, 실제로 댕댕이 덩굴의 줄기는 바구니를 만드는 데 사용하므로 질긴 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댕댕이덩굴이 등장하는데, 포도주의 신으로 알려진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이야기다.

'디오니소스는 표범을 타고, 손에는 솔방울 모양의 손잡이가 달리고, 댕댕이덩굴로 장식된 긴 막대기를 가지고 있다.'(그리스로마신화, 범우사, 1988년, 522쪽)

노린재가 찾아왔습니다. 댕댕이덩굴에 맺힌 물방울 하나 물고 갑니다.
▲ 댕댕이덩굴 노린재가 찾아왔습니다. 댕댕이덩굴에 맺힌 물방울 하나 물고 갑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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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제우스와 세밀레의 아들이며, 대지의 풍요를 주재하는 신이다. 포도 재배와 관련된 술의 신이며 로마신화의 바쿠스에 해당한다. 디오니소스는 '불완전한 신'으로 포도주의 신이다.

댕댕이덩굴 열매의 맺힌 빗방울, 그곳을 찾아와 물방울을 훔쳐가는(?) 노린재를 보면서 하늘에서 내린 비가 혹시 댕댕이덩굴에 맺힌 순간 기가 막힌 술로 변한 것이 아닐까 상상을 해본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댕댕이덩굴에 걸리면 백발백중 넘어질 게다. 황우도 걸리면 넘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사람이야 어련하겠는가?

중부지방에서는 10월 경에 익는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제주도에서 담은 것으로 그 어느해 12월에 담았습니다.
▲ 댕댕이덩굴 열매 중부지방에서는 10월 경에 익는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제주도에서 담은 것으로 그 어느해 12월에 담았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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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담았던 댕댕이덩굴의 열매를 찾아보았다.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하면 시월쯤에 검은 포도처럼 익는데, 모양과 색감이 상당히 예쁘다.

사연 없는 사람 없는 것처럼,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모든 풀꽃들도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그들을 깊이 바라본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보던 것을 지금의 내가 보고 지금 내가 보는 것을 나의 아이들의 아이들이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태풍이 중부지방은 가볍게 지나간 듯하다. 아직 태풍과 관련된 소식은 듣지 못했으나 4대강 주변이 상당히 걱정된다.

그곳에서 수천수만 년 자라던 것들을 모두 거둬내고 시멘트로 포장한 일은 아무래도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이었던 것 같다. 그것을 막지 못한 나는 훗날 아이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있을까 싶다.


태그:#댕댕이덩굴, #노린재, #디오니소스, #바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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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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