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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편집자말]
학생부장이라고 해서, 그냥 미웠다. 10년도 더 지난 학창시절,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몽둥이를 들고 '매의 눈'으로 우리들의 머리와 옷차림을 훑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앞머리 3센티미터, 뒷머리 막 깎기'라는 규정을 어긴 학생에게 그 자리에서 '모닝빠따'를 야무지게 선물해주던 학생부장 선생님. 빈속에 들이붓는 모닝커피보다 쓰고 태양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청양고추보다 매운, 엉덩이로 맛보는 그 복잡다단한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다.

하지만 이분의 '학생부장 일기'를 읽으면서 '학생부장'이라는 낱말에 묻어 있던 미움을 조금은 털어버렸다. 그 흔한 몽둥이도 '사랑의 폭언'도 '찰진 욕설'도 하지 않는 학생부장 선생님. 도무지 '말로 안 되는' 말썽쟁이 학생 앞에서 울컥 올라오는 마음을 꾹꾹 누르며 수시로 수양(?)에 정진하는 선생님. 학생들에게는 마음 좋은 선생님이지만, 교육 현실의 부조리 앞에서는 한없이 매서워지는 '고발자'인 그는 서부원 시민기자다.

올해로 시민기자 활동 만 10년. 1월부터는 '학생부장 일기'라는 연재글로 학교폭력 등으로 점점 더 험난해지는 학생생활지도 일선교사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아 학생회 간부학생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떠난 서부원 시민기자를 기다려 7월 29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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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로 수학여행 간 학교... 제가 그 주인공입니다"

서부원 시민기자. 열 살배기 아들과 백두대간 종주 중.
 서부원 시민기자. 열 살배기 아들과 백두대간 종주 중.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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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자기소개부터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광주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는, 15년차 젊은(?) 교사입니다."

- 시민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대학 시절 교직에 마음을 두진 않았습니다. 짧지만 회사 생활을 하다 무엇엔가 홀린 듯 '운명처럼' 교사가 됐는데, 막상 학교에서 생활하다보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렇게 5년여를 보내니 찾아오는 무력감이란…. 갓 서른이 넘어 찾아온 매너리즘을 견뎌내기 위해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일기 쓰듯 홈페이지(지금은 폐쇄)에 올리곤 했는데 바로 그때 알게 된 곳이 <오마이뉴스>였습니다."

- 교사라는 신분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고 기사를 쓰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학교 현장의 문제들을 다루는 기사가 많은데 혹시 좀 '섭섭한' 소리를 듣지는 않나요?
"처음 학교에 관한 글을 쓸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제가 소심한 A형이거든요. 그런데 그 전부터 저는 이미 동료교사들에게 '불편한 존재'였어요. 일테면 주번제도를 없애자거나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학급별로, 테마별로 나눠서 가자고 제안하는 등, 솔직히 별생각 없이 기존의 관행에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거든요.

그 덕분에 영광스럽게도(?) 10년 전 저희 학교 개교 이래 최초로 수학여행을 테마별로 나눠서 갔습니다. 광주교도소로 소풍을 간 전무후무한 사례를 만든 주인공도 접니다. 당시 제자들도 지금 만나면 그 이야기부터 합니다. 그러던 터라, 어차피 '버린 몸'이라는 생각이 기사를 쓰는 데 용기를 불러일으켰다고나 할까요?"

- 시민기자로 활동을 학생들이 알고 있나요? 기사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아는 애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굳이 알리려고 하지도 않고요. 자칫 아이들을 선동(?)한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니까요. 아주 가끔씩 아이들이 토끼눈을 하고 달려와 제 기사를 읽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때마다 '동명이인 아닐까'라며 눙치고 넘어갑니다.

아이들이 <오마이뉴스>를 많이 읽게 해야 하는데, 영업(?)에 도움을 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되레 뉴스에 나왔다고 기뻐하곤 하더라고요. 이름을 숨기고 또 극도로 표현을 순화하다보니 내용 가지고 아이들이 문제 삼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때리는 것보다, 같이 축구 한 게임 하는 게 더 낫다"

- 1월부터 '학생부장 일기' 연재를 시작해, 21편의 기사가 나갔습니다. 한창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질 때부터 연재를 시작하셨는데요, 어떤 의도로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최일선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맞닥뜨려야 하는 담당교사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15년 교직생활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현장을 전혀 모르거나 알고도 모른 척하는 '윗분'들의 황당한 대책들만 하달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잖아도 관료주의에 찌들 대로 찌든 교직사회의 숨통을 끊어내는 짓입니다.

적어도 윗분들이 정책을 만들 때 그저 참고자료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 하나와, 내년에 바통을 이어받을 후임 학생부장 교사에게 인계인수할 뭐라도 남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업무를 인계인수하는 건, 기실 업무를 위한 마음을 다잡도록 자극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생생한 경험이 녹아 있어서 독자들의 호응도 좋은 것 같습니다. 둘레의 평은 어떤가요? 
"동료교사들에게는 내부고발자(?)처럼 인식된 까닭인지 별 반응이 없습니다. 제 '팬'이 돼주신 몇몇을 제외하면 제 글을 읽었다는 얘기조차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되레 다른 지역, 다른 학교 교사들의 격려 쪽지나 문자, 전화를 이따금씩 받습니다. '어찌 그리 내 얘기 같냐'며 고맙다고 칭찬해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 체벌에도 반대하시고, 흔한 학생부장 이미지와 다릅니다. 어쩌다 학생부장이 되셨나요?
"올 초 학생부 선생님들이 첫 미팅을 하면서 외친 슬로건(?)이 바로 '이미지 쇄신'이었습니다. 체벌, 단속, 얼차려, 몽둥이 등으로 점철된 이미지를 벗고 친근한 교사, 아니 삼촌이나 형처럼 다가서자고 했습니다. 실제 학생부 교사 평균 나이도 30대 중반이었으니까요.

학생부장이 된 이유는 단순해요. 업무분장을 하는데, 학생부장을 맡겠다는 교사가 없는 거예요. 학교폭력이 이슈화된 올 초는 학교마다 학생부장 '모시기'가 엄청 까다로웠다고 해요. 제 성향(?)을 잘 아시는 학교장의 요청도 있었고, 이른바 '막장' 애들과 한번 뒹굴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 덥석 물었어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들지만 후회는 없어요."

- 솔직히 때려서 가르치면 편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체벌 없이 가르치는 노하우가 있나요?
"'교육은 백년지대계.' 선현들의 말씀 틀린 것 하나 없어요. 그 뜻 그대로 교육은 기다림이에요. 돈에 미친 요즘 세상의 문법으로 번역하면 교육은 '장기 투자'라는 거죠. 눈앞의 변화와 성과에만 집착할 때 반드시 무리수가 따르게 됩니다. 그것이 체벌입니다.

때려서 달라질 아이라면 말로 타일러도 알아듣고, 말로 해서 안 될 아이라면 아무리 때린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사고뭉치 아이들을 체벌하는 것보다 그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축구 한 게임 하는 것이 생활지도에 훨씬 더 교육적이고 실효적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너나 잘하라'던 이웃 학교 교장선생님, 잊지 못합니다"

서부원 시민기자
 서부원 시민기자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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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7월에 가입하셨으니 만으로 10년이 지났습니다. 소회를 말씀해주시죠.
"벌써 10년이라니, 제가 생각해도 진짜 놀라운데요. 이렇게 얘기하면 좀 엉뚱하달 수도 있겠지만 <오마이뉴스>야말로 힘들 때 위로가 돼 준 든든한 벗이자, 교사로서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댈 즈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준 스승입니다. 모르긴 해도 수많은 시민기자들이 오늘도 글을 남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한 헌신이기에 앞서 우선 자신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기 위한 노력 아닐까 싶습니다."

- 400여 편의 기사를 쓰셨는데요, 잊지 못할 '사건'을 남긴 기사를 꼽아주시다면요?
"제가 사는 곳에서 절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히게 만든 그 기사. 5년도 넘게 지났지만, 잊을 수 없습니다. <상위권 학생만을 위한 '특별반'을 아시나요?>. 이 기사가 주위 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회자되면서, 급기야 글의 소재가 된 학교의 교장과 교감이 직접 찾아와 '너나 잘 하세요'라며 저와 저희 학교를 벌집 쑤시듯 하고 돌아갔습니다.

제가 동료교사들로부터 백안시된 결정적 사건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가 '침묵의 카르텔'을 강요받는 곳이라는 점을 절감한 계기였습니다. 아직도 타 학교 출장을 가서 저를 소개하면 '아, 그 기사 쓴 분'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 기사를 쓰는 데 자신이 가진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겸손한 척하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지만, 강점은 없습니다. 아내는 가끔 제 글을 읽고, 제발 간결하게 쓰라고 조언합니다. 뻔한 얘기를 왜 중언부언하느냐는 것인데, 아닌 게 아니라, 누군가와 공감하고 싶은 내용은 많은데 '임팩트' 있게 축약하는 능력이 정말 부족한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단어로 된 한 문장이 무릎을 치게 하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성향이야 어떠하든, 제가 김훈이라는 소설가를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 다른 시민기자분들 가운데 누구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주저함 없이, '사극으로 역사 읽기'의 김종성 시민기자님을 꼽습니다. 한국사 교사로서 그분의 기사를 통해 배운 게 정말 많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기는 계기도 되고, 기사를 스크랩하여 수업시간에 활용하고 있으니 제겐 참 고마운 분입니다."

- 한 해의 절반이 지나고 여름방학입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학생부장 업무를 충실히 마무리하는 것(너무 소박한가요?). 사실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어제 학생회 간부들을 데리고 이틀 동안 지리산 종주 등반을 다녀왔고, 2일부터 이틀간 동아리 아이들과 강원도 철원 답사를 떠납니다. 8일부터는 문경새재 답사 인솔이 잡혀 있고요. 8월 31일에는 학교 축제가 예정돼 있으니, 방학이 없어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방학이 이러니, 학기 중은 두말할 것도 없죠."

- '내 방'에 "오늘도 난 세계일주를 꿈꾼다"라고 해두셨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언젠가 반드시 이룰 겁니다. 물론 지금은 돈도 시간도 없지만, 대강의 계획안은 짜두었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 아프리카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훑고 난 후 쿠바에서 마무리하는 여정입니다.

가족 앞에서 미리 쓴 제 유언이 '화장해서 유골을 쿠바의 산타클라라에서 우뚝 서 있는 체게바라 동상 앞에 뿌려달라'입니다. 오래전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 난 후 지금껏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제 소망(?)입니다. 그랬더니 아내 왈, '쿠바 왕복 항공편 요금이 든 통장을 미리 준비해달라'고 하더군요."


태그:#시민기자,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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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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