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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토로스 & 토르소> 겉표지
ⓒ 북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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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살인의 영감을 얻는다. 사이코 살인마가 판을 치는 범죄영화나 범죄소설을 보고나서 그 안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모방하기도 한다.

또는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본따서 모방범죄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진이나 미술작품도 살인의 모티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끔찍한 범죄현장 또는 자살한 시체의 사진를 보면서 살인의 충동을 느끼거나, 죽음과 폭력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을 보면서 살인을 구상할 수도 있다.

이런 살인자들은 대부분 살인 후에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현장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연출해둔다. 자연스럽지 않은 자세로 시체를 놓아둔다거나 특유의 표식을 남겨둘 수도 있다.

독특한 방법으로 시신 일부를 절단할 수도 있다. 살인을 통해서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는지 정확히 알아내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이들에게 살인은 하나의 의식인 셈이다.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의식.

작은 섬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크레이그 맥도널드의 2008년 작품 <토로스 & 토르소>에서 바로 이런 방식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작품의 무대는 1935년 미국 플로리다 주의 키웨스트 섬이다. 이곳 등대 주변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당했는데 범인은 시체의 배를 갈라서 내장을 전부 끄집어 냈다. 그리고 그 안에 톱니바퀴 같은 기계부품을 채워 넣었다.

주인공 헥터 라시터는 이 섬에 살면서 범죄소설을 쓰고 있다. 이 섬에는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술가 비숍 블레어 등도 함께 머물고 있다. 헥터는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초현실주의 미술과 살인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논한다.

죽은 사람의 열린 복부 안에 기계부품이 담겨 있는 모습이, 마치 살바도르 달리나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미술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헥터는 이 살인을 가리켜서 '초현실주의 살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스스로도 확신하지는 못한다. 이 크지 않은 돌섬에 초현실주의 화풍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누가 이렇게 피가 철철 흐르는 방법으로 비웃을 정도로 초현실주의를 업신여기는지, 아니면 화가에게 원한이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키웨스트에 거대한 허리케인이 몰려오고 있다. 헥터는 단골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여성 레이첼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허리케인을 피하기에 자신의 집만큼 좋은 곳도 없다고 설득한다. 최악의 허리케인이 섬을 강타하고 헥터와 레이첼이 집안에 은둔해있는 동안, 또다른 기괴한 살인사건이 연달아서 발생한다.

살인과 예술을 논하는 사람들

실제로 초현실주의 미술품들 일부에서는 인간(특히 여성)의 몸을 이상하게 묘사해 두었다. 르네 마그리트는 <과대망상>에서 여성의 토르소를 비정상적인 비율로 그려놓았다. 만 레이의 <기도>에서는, 벌거벗은 채로 가슴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는 여성을 한 남자가 끌어안고 있다. 마치 자신이 그 여성을 죽인것 처럼.

이런 작품들 안에 어떤 심오한 의도가 담겨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이 이상한 살인마라면 그림 속의 모습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단지 충동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행으로 옮기고, 마침내 현실로 옮겨진 미술작품을 감상하며 만족감을 음미하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헥터를 사로잡은 범죄는 20년이 넘게 그를 따라다닌다. 그 기간동안 헥터는 헤밍웨이와 싸움을 벌이고, 살인사건 용의자가 된 영화감독 오손 웰스를 달아나게 만든다. 여배우 리타 헤이워드와 함께 침실에 들기도 한다.

<토로스 & 토르소>는 범죄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격동기를 살아갔던 예술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이 예술가이기 때문에 살인사건과 초현실주의를 연결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예술작품은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제공한다. 살인자들에게 그 상상력은 살인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들은 예술작품 속에 자신들의 비틀린 내면을 투영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토로스 & 토르소> 크레이그 맥도널드 지음 / 황규영 옮김. 북폴리오 펴냄.



토로스 & 토르소

크레이그 맥도널드 지음, 황규영 옮김, 북폴리오(2012)


태그:#토르소, #초현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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