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모든 당우(堂宇)의 이름에는 그 집 주인의 철학이 배어있기 마련입니다. 이이화 선생님의 당호, '蛟猶明也堂'에는 일관해 오신 선생님의 족적과 다르지 않은, 존경하는 역사속의 네 분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문경학살사건 희생자유족회 채의진 대표께서 이 당호를 서각 했습니다.1949년 12월24일 빨치산 토벌대가 문경 석달마마을을 불태우고 주민 86명을 총살했을 때, 어머니를 비롯 가족 9명을 잃은 채의진(蔡義鎭) 어르신. 이이화선생님은 2000년 동아시아평화인권국제회의에서 기구한 운명의 채의진 선생과의 만남이 2000년 9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과거사 청산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모든 당우(堂宇)의 이름에는 그 집 주인의 철학이 배어있기 마련입니다. 이이화 선생님의 당호, '蛟猶明也堂'에는 일관해 오신 선생님의 족적과 다르지 않은, 존경하는 역사속의 네 분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문경학살사건 희생자유족회 채의진 대표께서 이 당호를 서각 했습니다.1949년 12월24일 빨치산 토벌대가 문경 석달마마을을 불태우고 주민 86명을 총살했을 때, 어머니를 비롯 가족 9명을 잃은 채의진(蔡義鎭) 어르신. 이이화선생님은 2000년 동아시아평화인권국제회의에서 기구한 운명의 채의진 선생과의 만남이 2000년 9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과거사 청산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집의 전면에 걸린 '歷史舍廊房'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당호. 선생님께서 이 집에서 추구하시는 목표와 가치가 드러나 있습니다. 모든 융합을 뜻하는 선생님 함자의 ‘離'자 처럼, 이 집에서 역사속의 인물을 불러와 선생님께서 현재의 우리와 함께 경계를 허물고 이야기꽃을 피우겠다는 선생님의 실천의지가 담긴 당호이지요.
 집의 전면에 걸린 '歷史舍廊房'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당호. 선생님께서 이 집에서 추구하시는 목표와 가치가 드러나 있습니다. 모든 융합을 뜻하는 선생님 함자의 ‘離'자 처럼, 이 집에서 역사속의 인물을 불러와 선생님께서 현재의 우리와 함께 경계를 허물고 이야기꽃을 피우겠다는 선생님의 실천의지가 담긴 당호이지요.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역사학자 이이화(李離和) 선생님은 독학으로 한국사를 연구해 온 분이시지요. 특히 왕조사 대신 민중사를 중심에 두고 그 삶을 복원해 오셨습니다. 원고지 2만 5천매 분량의 저술이 22권으로 엮어진 <한국사 이야기>(한길사)는 10년 동안 계속된 저술이었습니다.

평생, 민중의 애환에 발을 딛고 민중사를 중심에 둔 역사를 복원해오시고 계신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
 평생, 민중의 애환에 발을 딛고 민중사를 중심에 둔 역사를 복원해오시고 계신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민족문화추진회 전문위원 겸 국역실장, 서울대 규장각 해제위원,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동학농민전쟁 10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이사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상임공동대표 등 발자취를 통해 이 선생님이 어디에 발을 딛고 역사를 바라보고 계신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난 8월 17일 장준하선생의 37주기 추모식과 더불어 진행된 추모공원 제막식에서의 이이화선생님
 지난 8월 17일 장준하선생의 37주기 추모식과 더불어 진행된 추모공원 제막식에서의 이이화선생님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폄훼되었던 역사 속 인물을 재평가하고 소외되었던 인물을 발굴했습니다. 반봉건, 반외세의 동학농민전쟁,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고구려사 보전, 과거사 정리, 친일청산 운동을 일관되게 실행해 오신 선생님입니다. 집필실을 아치울에서 헤이리로 옮긴 선생님 댁의 당호는 '역사사랑방'입니다.

강연을 가시는 외에는 두문불출 하시는 선생님 집필실 앞에는 '역사사랑방'이라는 당호 외에 또 다른 당호를 새긴 작은 판각이 걸려있습니다. 

'蛟猶明也堂(교유명야당)' 

蛟 ․ 猶 ․ 明 ․ 也는 바로 이이화 선생님이 존경하는 네 분의 함자를 모은 것입니다. '蛟'는 허균의 호인 교산(蛟山)에서, '猶'는 정약용의 당호인 여유당(與猶堂)에서, '明'은 전봉준의 어릴적 이름이었던 명숙(明叔)에서, 그리고 '也'는 선생의 선친 호인 야산(也山)에서 가져온 것이지요.

이이화 선생님의 서재에 걸린 판화 한 점. 蛟猶明也堂의 '明'은 바로 전봉준의 어릴 적 이름인 명숙(明叔)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판화는 현장미술가 최병수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이화 선생님의 서재에 걸린 판화 한 점. 蛟猶明也堂의 '明'은 바로 전봉준의 어릴 적 이름인 명숙(明叔)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판화는 현장미술가 최병수 작가의 작품입니다.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이이화 선생님께서 집필실을 드나드실 때마다 마주칠 수 있는 눈높이로 걸린 이 판각에 새겨진 네 분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불평등한 신분 질서에 저항했던, 차별 없는 민중의 세상을 꿈꾸었던 분들이지요. 그리고 자신의 권위를 더 높이는 학문이 아니라 대중의 삶을 고양시킬 수 있는 실용학문에 힘썼습니다. 

이이화 선생님은 이 네 글자 옆에 '離'를 하나 더 넣어도 손색없는 방식으로 일관해 오신 분을 기 언급한 삶의 궤적만으로도 충분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속한 아치울은 양주군이었고, 70년대 말 남양주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86년 구리시로 승격되면서 구리시 아천동이 되었습니다. 아차산을 등지고 발치에 한강을 면한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이 작은 마을로 이이화 선생님은 1981년 10월 20일에 이사했습니다. 그 이후 이이화 선생님과의 인연을 따라 김점선, 박완서 선생님 등 많은 문화예술인과 학자들이 모여 들어 구시시에서는 이곳을 '문화예술마을'로 불렀습니다.

2007년 1월 3일 헤이리로 집필실을 옮기신 이이화 선생님은 마침내 올해 8월 22일에 헤이리로 주민등록을 옮겼습니다. 이것은 아치울의 당호였던 '아차산방'을 역사 속에 묻고 '蛟猶明也堂'과 '歷史舍廊房'이 함축한 가치에 더욱 힘을 실어 오늘의 역사를 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이화 선생님의 서가
 이이화 선생님의 서가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이이화(李離和)라는 선생의 함자는 주역의 대가인 선친 야산(也山) 이달(李達·1889~1958) 선생님이 팔괘의 이괘(離卦)에서 '離'자를 가져다가 돌림자 '和'로 엮어 지은 것입니다. 역(易)에서 '離'는 불(火)를 의미하고 불은 이질적인 것들을 녹여 하나로 융합하는 힘을 지닌 것으로 봅니다. 

오늘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가 이이화 선생님께서 지향하는 삶의 모델인 네 분을 상기하며 '인권과 평등'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민중의 것이 되도록 책으로, 강연으로 일관하고 계신 이이화 선생님의 말씀을 반추했습니다. 

"모든 역사는 자신들이 사는 현대와 맞물려 있다."

고 장준하 선생의 미망인 김희숙 여사님과 함께한 이이화선생님
 고 장준하 선생의 미망인 김희숙 여사님과 함께한 이이화선생님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이이화, #역사학자, #장준하, #김희숙, #헤이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