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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임진각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그게 뭔 소리야?"

지난 22일 월요일 오후 4시 무렵, 전남 장흥에서 서울로 올라오느라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뚫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 아찔한 소식을 접했다.

관련 뉴스를 확인했다. 임진각에서 탈북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문제로 북한이 휴전선 부근에 병력을 집중시키며 경고하자 우리 국군도 맞불을 놓기 위해 응전태세를 갖추었다는 내용이었다. 불안감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그저 간절하게 빌 뿐이었다.

'설마, 전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겠어. 전쟁 나면 모두 죽는데… 제발.'

임진각 주변 안내도. 빨간선이 경의선 노선이다.
 임진각 주변 안내도. 빨간선이 경의선 노선이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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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배경이 된 임진각은 전쟁의 아픈 상처와 통일에 대한 염원이 함께 서린 곳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이틀 전과 하루 전, 임진각과 임진강역, 임진나루에서 연이어 북녘 땅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곳에서 평화를 깨는 마찰음이 전해진 것이다.

어린이의 소망, "북한 친구들아 빨리 만나보고 싶어"

지난 20일, 그동안 몇 차례 찾은 바 있었던 임진각을 제대로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1953년 한국전쟁 포로 1만 2773명이 이 다리를 건너 귀환하였기 때문에 '자유의 다리'라고 명명되었다. 원래 경의선 철교는 상·하행 2개의 다리가 있었으나 폭격으로 파괴되어 다리의 기둥만 남아 있었는데 전쟁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서쪽 다리 기둥 위에 철교를 복구하고 그 남쪽 끝에 이 임시다리를 설치했다. 당시에는 포로들이 차량으로 경의선 철교까지 와서는 걸어서 이 다리를 건너왔다고 한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 왼쪽 철로가 도라산역과 문산역을 잇는 경의선이 오가는 곳이고, 그 아래 자유의 다리가 놓여 있다. 오른쪽 다리는 복구를 하지 않았으며, 그 아래 부분에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 왼쪽 철로가 도라산역과 문산역을 잇는 경의선이 오가는 곳이고, 그 아래 자유의 다리가 놓여 있다. 오른쪽 다리는 복구를 하지 않았으며, 그 아래 부분에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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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자유의 다리 부군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를 위해 방치된 자유의 다리 안내판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 부군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를 위해 방치된 자유의 다리 안내판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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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다리' 부근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바람에 '자유의 다리' 안내 표지판은 보기 흉한 모습으로 한쪽에 방치되어 있었다. 자유를 향한 바람이 내팽개쳐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유의 다리를 걸어 들어가자 맨 끝에 대형 태극기 몇 개를 배경으로 여러 소망 글귀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방의 등불 '코리아' 알이랑 민족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아, 조선은 하나입니다!"(2012년 9월 27일 조선사람 최흥욱)
"북한 친구들아 빨리 만나보고 싶어."(나윤서)

모두의 바람은 한결같았다.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서 기쁘게 만나보자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전쟁도, 비극의 역사도 모를 어린아이들이 내건 해맑은 글귀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임진각 장단역 증기기관차. 한국전쟁 당시의 참혹함이 기관차 곳곳에서 보인다.
 임진각 장단역 증기기관차. 한국전쟁 당시의 참혹함이 기관차 곳곳에서 보인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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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기억에 남은 것은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였다. 설명을 보니 한국전쟁 중 피폭·탈선돼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04년 문화재로 등록한 후 역사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임진각에 전시했다고 한다. 기관차를 둘러보니 설명 그대로 1020여 개의 총탄 자국이 역사의 아픈 흔적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증기기관차에서 자랐다는 뽕나무. 희망은 강철도 뚫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증기기관차에서 자랐다는 뽕나무. 희망은 강철도 뚫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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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차 옆쪽, 북녘 땅이 보이는 곳에는 특이한 나무가 한 그루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증기기관차 위에서 자랐다는 뽕나무였다. 철책과 철조망을 배경으로 뽕나무와 북녘 땅을 함께 바라보며 언제쯤이면 저 철조망을 거둬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뽕나무가 강철을 뚫고 희망을 틔웠듯이 간절히 염원하면 통일도 이룰 수 있겠지.

임진강역에서 평양까지 209km

임진각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임진강역사 내부. 벽면에 통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차 있다. 왼쪽 아래 자유 방명록이 놓여 있어 누구나 소망글귀를 남길 수 있다.
 임진각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임진강역사 내부. 벽면에 통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차 있다. 왼쪽 아래 자유 방명록이 놓여 있어 누구나 소망글귀를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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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에서 약 10분 정도 걸으면 임진강역이 나온다. 도라산역과 문산역을 잇는 경의선이 지나는 곳이다. 오후 12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임진강역. 열차 시간을 보니 30여 분 이상이 남았다. 하릴없이 역사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예상 외로 볼거리가 가득했다.

역사 내부를 빼곡하게 채운 것은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이 남긴 깨알 같은 소망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 군에 입대한 청춘과 연인의 사연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자유 방명록이 인상적이었다. 배차 시간이 긴 탓에 지루하지 말라고 마련해 놓은 듯한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연을 남겼다.

자유 방명록에 남겨진, 이병 애인이 병장이 되기를, 2014년 5월 5월까지만 기다려 주기를 바라는 청춘남녀의 글귀. 분단 조국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준다.
 자유 방명록에 남겨진, 이병 애인이 병장이 되기를, 2014년 5월 5월까지만 기다려 주기를 바라는 청춘남녀의 글귀. 분단 조국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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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잘 기다리고 있을게. 아버님 어머님한테도 잘 하고 있을게. 여기 와서 짱 좋아. 나중에 이병 말고 병장 때 또 오자. 병장 이상익…이였음 좋겠다. ㅎㅎ."(이상익 ♡ 이진선)

"오빠 군대 가면 내가 기다릴게." "2014.05.05까지만 기다려!"

남북 분단으로 인한 청춘의 고뇌는 방명록에 숨김없이 드러났다. 이병 애인이 빨리 병장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그렇지만, 2014년 5월 5일까지만 기다리라는 바람은 차라리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래도 청춘이여, 걱정하지 마시게. 국방부 시계는 누가 뭐래도 반드시 돌아가니까.

도라산역쪽에서 경의선 열차가 도착하고 있다. 탑승 요금 1000원을 내고 임진강역에서 평양까지 209km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도라산역쪽에서 경의선 열차가 도착하고 있다. 탑승 요금 1000원을 내고 임진강역에서 평양까지 209km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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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역사를 가로질러 선로 앞에 서니, 임진강역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평양까지 206km. 나는 생각보다 가깝다고 했고, 동행한 지인은 생각보다 멀다고 했다. 가깝거나 멀거나, 저 선로를 따라 도라산역을 지나 의주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 한편이 알싸하게 저려왔다.

임진각을 벗어나며 봤던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글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철마는 반드시 다시 의주까지 달릴 수 있겠지.

임진각 한 편, 외롭게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던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글귀.
 임진각 한 편, 외롭게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던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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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아픔이 서린 곳, 임진나루

지난 21일, 임진나루를 찾았다. 군부대로 가로막혀 있던 임진나루가 무려 60년 만에 전격적으로 민간인에게 공개된 것이다.

군부대에 가로막혀 있던 '임진나루'가 무려 60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인에게 공개됐다. 선조가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건너 의주로 향했다고 한다.
 군부대에 가로막혀 있던 '임진나루'가 무려 60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인에게 공개됐다. 선조가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건너 의주로 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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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면 율곡리 화석정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임진나루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파천의 길목이며 고려, 조선시대 개성과 한양을 잇던 의주로 구간의 주요 교통로였다."

군부대 철책 앞, 임진강을 내려다보며 이곳이 임진나루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임진나루는 임진왜란의 아픔에 더해 한국전쟁의 상처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터.

안내를 맡은 문화관광해설사는 "파주에서 오랫동안 살았지만 저도 이곳에 처음 와 봤다"며 "임진강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곳은 임진나루, 황포돛배를 탈 수 있는 두지리 이 둘뿐"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임진강변은 모든 곳이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화석정에도, 자유로가 뻗어 있는 곳에도 어김없이 군부대가 설치한 철책은 씁쓸하게 임진강을 차단하고 있다.

그런데 참게가 군부대의 방어선을 열고 민간인에게 임진나루를 선물로 내줬다. 앞으로는 1년 중 참게축제가 열리는 8일 간은 누구나 임진나루를 밟아볼 수 있다. 참게가 참 착한 일을 했다.

60년 만에 일반에게 처음 공개된 임진나루는 생각보다 초라한 모습이었다. 고기잡이를 위한 배 9척 만이 쓸쓸하게 임진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보안 문제로 인해 군부대를 등지고 찍었다.
 60년 만에 일반에게 처음 공개된 임진나루는 생각보다 초라한 모습이었다. 고기잡이를 위한 배 9척 만이 쓸쓸하게 임진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보안 문제로 인해 군부대를 등지고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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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조국에서 북한 아가씨와의 결혼식을 꿈꾸다

이틀 간 파주개성인삼축제와 임진리 참게축제를 보기 위해 임진각과 임진강역, 임진나루를 찾았었다. 임진각에서는 한국전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중국 관광객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자유의 다리'에 서서 기념촬영을 하던 중국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임진나루에서는 가족끼리, 부부끼리 나들이를 나온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한 노신사는 "서울에서 열차와 택시를 이용해 임진나루를 찾았다"며 교통이 불편한 임진나루에서 서울로 다시 돌아갈 일을 걱정하면서 "문산역까지 가는 버스 시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실향민이었을까. 노신사의 눈시울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의 안경 너머로 전해지는 사연은 어떤 것이었을까.

통일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어린아이도 노신사도 예외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통일 운운하면 곧바로 빨갱이로 몰리기 십상이다. 전쟁의 아픈 역사를 돌아보며 통일을 생각하자는 임진각에서는 여전히 전쟁 기운이 감돌고 있다. 민족의 통일을 이야기하는데 언제까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으로 갈라져 논쟁을 벌어야 하는 것일까.

오는 12월 대선에서 통일의 다리를 놓을 수 있는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 한 가지 더. 마흔 두 살 노총각인 나, 통일 조국에서 북한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렸으면 좋겠다. 아니, 적어도 다음 세대는 하나 된 나라에서 자유롭게 만나고 결혼하는 게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 끝부분에 내걸린 한 어린아이의 소망. "북한 친구들아 빨리 만나보고 싶다." 소망 그대로 다음 세대에는 통일된 조국에서 자유롭게 만나고 결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 끝부분에 내걸린 한 어린아이의 소망. "북한 친구들아 빨리 만나보고 싶다." 소망 그대로 다음 세대에는 통일된 조국에서 자유롭게 만나고 결혼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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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임진각, #임진강, #임진강역, #자유의 다리,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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