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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나머지 모든 것과 연계되어 있다.
- 모든 것은 어디로든 반드시 가야 한다.
- 자연은 무엇이 최선인지 안다.
-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건 없다.
(미국의 생물학자 배리 커머너가 제시한 '생태학에 관한 네 가지 법칙', 본문 203쪽)

맹그로브. 어쩐지 다정한 느낌을 주면서도, 왠지 슬픈 느낌을 아울러 주는 묘한 이름 맹그로브. 그동안 나는 맹그로브라는 나무 이름을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았는데, 가만히 그 이름을 입 속에 넣어 읊조리면 이상하게 자주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아마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냥 내 주위에서 맴돌다가 우연히 발견한 어떤 소중한 물건처럼, 맹그로브도 그냥 주변에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무엇으로 맴돌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내 의식에는 있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없지도 않았다.

맹그로브의 눈물과 함께 사라지는 세계
▲ <맹그로브의 눈물>, 케네디 원 지음 맹그로브의 눈물과 함께 사라지는 세계
ⓒ 프롬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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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지오그래픽>의 공동 창립자이고 초대 편집장을 지낸 뉴질랜드의 작가 케네디 원의 책 <맹그로브의 눈물>을 읽은 뒤에야 비로소 맹그로브는 내게 '하나의 의미'가 되어 다가왔다.

맹그로브는 주로 간만의 차가 있는 강어귀, 염분 많은 습지, 진흙투성이인 해변 등에 형성되는 삼림의 일종이다. 세계적으로 열대에서 아열대 지역인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호주, 인도 근해,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분포한다. 독특하게 버팀뿌리(지주근)를 갖고 있는데, 이 뿌리를 진흙 위로 내어서 공기를 호흡한다.

'맹그로브'라는 말의 어원은 조간대에 자라는 나무 종류를 총칭하는 말레이어 표현 '망기망기'(mangi-mangi)에 작은 숲을 뜻하는 영어 '그로브'(grove)가 붙어 만들어진 것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강가나 늪지에서 뿌리가 지면 밖으로 나오게 자라는 열대 나무나 그 숲'이라 할 수 있다.

저자 케네디 원은 맹그로브를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나무'라고 했다. 이 표현은 지금 맹그로브가 처한 현실을 엿보게 한다. 맹그로브가 자라는 습지를 얼핏 보면 사람들이 바다로 접근하는 걸 가로막는 해안의 덤불숲처럼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맹그로브 숲은 지구상에서 가장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생태계라고 말했다.

물론 저자는 이런 시각을 단호히 반대한다. 맹그로브 숲을 '바다의 열대우림'이라고 지칭하며, 전 세계에 걸쳐 서식하고 있는 이 숲은 도리어 지구상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생물학적으로 복잡한 생태계에 속한다고 한다.

맹그로브는 한 발은 육지에, 한 발은 바다에 담근 채 두 영역의 생명체에게 생존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독특하고 가치 있는 생태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취약한 해안의 방파제 구실을 하며, 해초나 산호초 같은 해양 생태계에는 양분을 공급하고, 지구의 탄소 균형에도 크게 기여한다고 했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해안에 거주하는 수억 인구에게 집과 자원, 일거리를 제공하며, 이들을 보호해주는 터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맹그로브의 눈물>은 이러한 맹그로브 숲이 지난 40년간 어떻게 파괴되어 왔으며, 그 파괴에 저항하며 지키려 애쓴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들을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맹그로브 숲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려준다. 이 책의 목적은 결국 맹그로브를 살리고 지키고 가꾸자는 것일 텐데, 저자는 이 목적을 위해 맹그로브가 서식하는 지구 곳곳을 다니며 그 실태를 아름답고 슬픈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새우 양식업은 맹그로브에겐 천적이다

저자가 처음 찾아간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맹그로브 지대인 순다르반스다. 이 지역은 3분의 1은 인도이고 3분의 2는 방글라데시 영토이다. 순다르반스를 다니며, 숲에 들어가서 생업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맹그로브 숲이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를 찾았다. 슈퍼마켓, 재목 저장소, 지붕재 창고, 연료 저장고, 약국. 숲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이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방글라데시 산림청은 이런 이유로 숲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매년 100만 명이라고 했다 하니, 숲의 품이 얼마나 넓고 소중한지 알 수 있다.

이 순다르반스에 애정을 가지는 특별한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세계 최대의 맹그로브 습지이기도 하지만 맹그로브가 가장 잘 보호된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에 이토록 방대한 숲이 거의 손상되지 않고 자원도 풍부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숲에도 점차 여러 가지 위기가 닥치기 시작한다. 삼각주가 서서히 기울어 강의 흐름이 달라지고, 인접국인 인도에서 갠지즈강을 가로지르는 댐을 건설해서 물과 퇴적물의 부족으로 거대한 맹그로브가 말라죽는다. 무엇보다 무서운 그늘은 새우 양식업이다.

'새우 양식업!' 이 말은 우리에게 무감각할지 모른다. 자연산 새우는 그 양이 적어서 수요를 채우지 못하고, 값이 비싼 반면에, 양식 새우는 값싼 새우를 대량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으며, 소비자들도 값싼 새우를 풍부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새우를 양식한다는 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감각하게 여기는 새우 양식업은 맹그로브에겐 천적이다. 숲을 파괴하여 운영하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산업이라 할 수가 없다. 맹그로브 숲이 파괴되면 환경과 생태계 파괴가 이어지고, 그 숲에 깃들어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생계의 터전이 사라지며, 풍부한 자원과 아름다운 풍광도 우리를 위로하지 못할 텐데, 그리 된다면 새우를 맛있고 값싸게 먹기 위해 치러야 할 고통이 너무 크다.

저자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순다르반스를 떠나, 개발로 인해 습지가 황무지로 바뀌고 전통적인 삶의 방식이 파괴되는, 나머지 99%의 맹그로브 숲을 찾아 브라질로 떠난다. 저자가 당도한 곳은 브라질 노르데스치. 이곳에서 저자는 집중적으로 새우 양식업의 문제점을 부각시킨다.

브라질에서 새우 양식업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뒀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1998년에서 2003년 사이 브라질의 새우 양식업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당시 생산량이 7000톤에서 무려 9만 톤으로 급증했는데, 그 중 95퍼센트가 이 지역 양식장에서 생산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번영의 원동력이던 바로 그 양식장이 사회적, 환경적 손상의 주범이 되었다. 양식장은 자연 생태계와 그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간 공동체를 내몰았다.(본문 38쪽)

새우 양식업이 가져오는 환경 파괴는 재앙 수준이다. 1파운드의 새우를 키우려면 먹이 2~3파운드가 필요하므로 새우보다 더 많은 물고기들을 잡아야 하고, 새우 1톤당 1600갤런의 물을 소비하는데, 이 오염된 물은 정화되지 않은 채 자연 수로로 버려져 사람들이 먹는 담수를 짠 물로 만들어 버린다.

참치를 몰아내고 미국 최대 해산물이 된 새우

'핑크골드'라는 말은 일확천금 할 수 있는 새우 양식업을 두고 한 말이다.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은 이 핑크골드 사업에 뛰어들었고, 맹그로브 숲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2001년 전 세계 맹그로브 숲의 52%가 수산 양식업으로 파괴되었고, 그 가운데 새우 양식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38%에 달한다.

맹그로브는 새우 양식업으로 최적지인 해안지대에서 자라고 숲을 이룬다. 새우 양식업자에겐 이런 사실이 큰 문젯거리가 아니다.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상업성이라는 저항할 수 없는 힘 앞에서 환경 파괴에 대한 고민은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매년 1~2%의 맹그로브가 도끼와 화약, 불도저의 공격으로 무참히 쓰러졌다. 내륙 지방의 열대우림이 소를 키우고 콩을 재배하기 위해 파괴된 속도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제 3세계 숲에는 심각한 타격이 이중으로 가해진 셈이었다. 육지에서는 농업이 열대우림을 베어내고 불태웠다면, 해양에서는 수산 양식업이 맹그로브 숲을 불도저로 밀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열대우림의 파괴는 곧바로 긴급하고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반면, 맹그로브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본문 56쪽)

그렇다면 개발도상국에서 새우 양식업이 확대된 원인은 뭘까? 그것은 서구 사회에서 새우 수요가 급증한 데 있다. 미국 내 새우 소비량은 1980년과 2005년 사이에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가격은 반으로 떨어졌고. 이 기간 동안 새우는 패스트푸드 식당의 메뉴나 교외의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싼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고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요리로도 훌륭하다는 이유로, 2002년  이후, 새우는 참치를 밀어내고 미국의 최고 해산물 자리를 차지한다. 미국인은 매년 1인당 8.8킬로그램의 새우를 소비한다고 한다. 이렇게 새우를 탐닉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어부들이 양식 새우로 인해 몰락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새우를 먹으면서 무너져버린 숲과 그 곳에서 추방된 생명체를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브라질을 떠나 에콰도르에서도 오래 머무른다. 에콰도르는 이미 1990년대 초반에 맹그로브의 절반을 잃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을 지키기 위한 개인과 단체의 노력도 보여준다. 그들은 여러 가지 협박에도 불구하고,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함께 새우 양식장을 무너뜨리는 투쟁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저자가 현대판 체 게바라라고 한 '맹그로브 생태계 수호협의회' 회장 리데르는 맹그로브 지역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을 '루차 후타스', 즉 공정한 싸움이라고 하며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을 다지고 있다.

플로리다 해안에서 50km 떨어진 카리브해에 있는 파나마 군도 중에 비미니 섬이 있다. 헤밍웨이가 1930년대에 7년 간 이 섬에 머물면서 소설 <노인과 바다>의 영감을 얻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인연이 깊은 섬이기도 했다. 1964년이었고, 킹 목사가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을 준비하기 위해 이스트 비미니의 맹그로브 숲 안쪽, 사색과 글쓰기에 적합한 곳에서 머물렀다는 것이다.

4년 뒤에 다시 킹 목사는 비미니를 찾았다. 그때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을 예감하고는 작성한 연설문에 자신의 추도사를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흘 후에 암살되었다. 평화의 희망과 암살의 비극을 함께 품었던 맹그로브 숲에 대하여 킹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사방이 생명으로 넘칩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 모든 걸 보면서 신을 믿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제 나는 이곳을 신성한 땅이라고 부릅니다."(본문 99쪽)

우리의 작은 선택이 전 지구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저자는 헤밍웨이와 킹 목사를 안아 들였던 이 아름다운 비미니 섬이 훼손될까봐 고심한다. 이스트 비미니의 맹그로브 숲이 골프장이 되거나 한낱 휴양객의 재미를 위해 거래되지 않기를 소망하고 있다.

저자가 책의 말미에 맹그로브 한 그루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는데, 그 가치란 무척이나 소중하여 차라리 숭고하기까지 한데, 꼼꼼하게 읽어가며 그 가치를 내면화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간절함이 있다. 여러 가지 수치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내가 눈여겨 본 것은 맹그로브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였다.

저자는 애런 엘리슨이라는 생태학자의 말을 소개한다. 즉, 맹그로브를 자원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이미 맹그로브는 존중과 상생의 존재가 아니라 소비와 사용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며, 맹그로브가 골프 코스나 리조트나 일주일에 저녁 세 끼를 새우로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알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작은 선택 하나라도 전 지구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책임 있는 소비,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사회적으로도 공정한 음식을 고집하고 요구할 때, 맹그로브의 감소 시계는 멈출 수 있다는 말로 저자 케네디 원은 생태적인 실천을 간곡히 요구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맹그로브 사이를 떠돌던 나의 여정은 소통의 부재 너머를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그 여정을 통해 맹그로브, 땅, 야생 생물, 사람, 생계, 해안 보호, 양어장, 그리고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새우 뷔페까지, 이 모든 연결고리를 찾아내려고 했다. 맹그로브 숲을 걷는 것은 땅과 바다, 인간과 야생이라는 서로 맞물린 세계들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본문 212쪽)

덧붙이는 글 | <맹그로브의 눈물>, 케네디 원 지음, 서정아 옮김, 프롬나드, 2013년 2월 29일, 1만 3천 원



맹그로브의 눈물 - 소금제국의 군왕

케네디 원 지음, 서정아 옮김, 프롬나드(2013)


태그:#맹그로브, #습지와 생태, #수산 양식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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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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