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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추가분담금 문제로 아파트 열쇠를 받지 못한 서울 동대문구 전농 제7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조합원들이 시공사인 삼성물산 직원에게 항의하고 있다.
 4월 30일 추가분담금 문제로 아파트 열쇠를 받지 못한 서울 동대문구 전농 제7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조합원들이 시공사인 삼성물산 직원에게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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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분담금을 안 내셔서 아파트 열쇠를 드릴 수 없어요."

안내데스크 직원의 말에 김숙이(61·여)씨는 황당해하며 언성을 높였다.

"열쇠 내놔, 왜 안 내놔! 돈 낼 것 다 냈는데, 왜 안 내놔!"

한 시간 가량 승강이가 오갔지만, 김씨는 끝내 열쇠를 받지 못했다. 30일 그는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 삼성 래미안크레시트에 입주할 계획이었다. 김씨와 그의 가족 7명은 이삿짐을 풀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시공사인 삼성물산 직원은 계속 "(김씨의 경우) 추가부담금 686만 원을 내지 않으면 집 열쇠를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열쇠 내놔!"

김씨 주변에 모인 20~30명이 함께 외쳤다. 새 아파트로 입주할 날을 기다렸던 전농 제7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원들이었다. 몇 명은 이날 입주 청소를 위해 아파트를 찾았지만, 현관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했다. 삼성물산은 이들에게 '각서' 제출을 요구했다. 각서에는 '본인이 납부해야 할 분양대금(추가분담금 포함), 이주비 원리금, 기타 비용을 완납하지 않은 상태로 입주 전 해당세대 OOO를 위해 세대출입을 하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사 왔는데 열쇠를 안 준다" "청소하려면 각서 쓰래요"

4월 30일 삼성물산쪽은 서울 전농동 래미안크레시티에 방문한 재개발조합원들에게 '추가분담금을 미납했다'는 내용의 각서 작성을 요구했으나 항의가 빗발치자 이 내용을 수정한 '확인서'로 형식을 바꿨다.
 4월 30일 삼성물산쪽은 서울 전농동 래미안크레시티에 방문한 재개발조합원들에게 '추가분담금을 미납했다'는 내용의 각서 작성을 요구했으나 항의가 빗발치자 이 내용을 수정한 '확인서'로 형식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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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이 결혼식인데, 아직 가구도 못 들여놓고... 청소하려면 이 각서를 쓰랍니다. 분명히 지난주 토요일(27일) 조합원 총회 때 부결됐는데 추가부담금을 내지 않으면 열쇠를 안 준대요. 제가 이 일로 편두통이 다 생겼어요."

강재홍(37·남)씨의 얼굴에는 난감함과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강씨는 "추가부담금 200만 원을 내라고 하는데, 비용이 많고 적고를 떠나 (내야 할 이유를) 납득 못하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열쇠를 받지 못한 김숙이씨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김씨는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됐는데, (이 자리에서 추가부담금을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받으려면 다시 총회 열어 통과시키면 되는데... 이게 삼성이란 1위 기업이 부리는 횡포"라고 말했다.

전농 제7구역 주택재개발정비구역은 2006년 10월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아 2010년 10월 착공했다. 올해 3월 말, 조합은 조합원들에게 '4월 27일 정기총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안내하며 미리 회의자료를 보냈다. 안건은 ▲ 관리처분계획 변경의 건 ▲ 보류시설/유치원 분양의 건 ▲ 조합운영비 예산 승인의 건 ▲ 사업비 예산 승인의 건 ▲ 용역계약 등 승인의 건 등 다섯 가지였다.

첫 번째 안건 '관리처분계획 변경'이 문제였다. 조합은 조합원들에게 "분양 수입이 줄고 추가 공사비가 들어간 데다 금융비용 등이 발생했으니 추가부담금 109억 원을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용은 크게 조합 예비비 20억 원, 삼성물산 쪽에 지급해야 하는 사업비 금융비용 89억 원으로 나뉜다. 조합은 조합원 1인당 평균 726만 원(자산 평가액 등에 따라 실제 부담금은 제각각)을 더 부담해야 입주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자와 운영비 미리 받으려는 것... 어떻게 입주를 빌미삼나"

삼성물산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래미안크레시티 아파트에 입주 예정인 전농 제7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소속 조합원들에게 '추가분담금 등을 완납하지 않은 상태에 방문했다'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해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삼성물산은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래미안크레시티 아파트에 입주 예정인 전농 제7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소속 조합원들에게 '추가분담금 등을 완납하지 않은 상태에 방문했다'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해 조합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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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건은 지난 27일 총회에서 전체 조합원 약 1500명의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조합 쪽은 "당시 참석자 760여 명 가운데 600명 정도가 찬성표를 던졌다"고 설명했다. 반면 추가분담금에 반대하는 쪽에선 "전체 조합원 가운데 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은 추가분담금 문제에 항의하는 뜻이었고, 약 150명은 총회장 밖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고 반박했다.

박춘석씨는 3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우리가) 잔금과 이주비를 내면 시공사(삼성물산)가 받아야 하는 돈은 다 받아가는 건데 추가로 이자와 운영비까지 부담하라는 것"이라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삼성물산이 요구하는 금융비용 가운데 50억 원 정도는 6월 말 입주가 끝난 후에도 사업 수입 회수에 문제가 생길 것을 감안해 책정한 비용이다. 박씨는 "삼성은 '6월 말까지 입주률이 최대 75% 정도일 것 같아 (수입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할 수 있으니) 미리 받아야 겠다'는 건데, 어떻게 입주를 빌미로 (돈을 받으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복잡한 추가분담금 문제에는 동대문구청도 얽혀있다. 당초 동대문구청은 아파트 단지 내에 문화센터와 학교 등을 짓기 위한 문화시설부지를 214억 원에 매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매각이 늦어지면서 이자 부담이 늘어났고, 이 금액 또한 삼성물산에 지불해야 할 금융비용에 포함됐다.

박씨는 "전날 다른 조합원들과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김종순 조합장, 삼성 관계자 등을 만난 자리에서 구청장이 '문화시설부지 매입원금에 금융비용을 더한 250억 원 지불보증각서를 쓸 테니 입주를 허용해달라'고 했지만 삼성이 거부했다"고 얘기했다.

"109억도 줄인 것... 조합이 해결할 길 없다" "삼성 입장, 조합과 비슷"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래미안 크레시티 아파트 전경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래미안 크레시티 아파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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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순 조합장과 조진국 부장은 "(조합이) 아직 공사비 및 사업비 2200억 원을 못 갚았는데, 시공사 입장에선 채권을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삼성이 추가분담금을 미납한 조합원의 입주를 막아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들은 또 조합원들이 '책정 사유가 불분명하다'는 추가분담금 규모는 "원래 325억 원이었지만, 조합이 이런 저런 비용을 줄여 109억 원이 됐다"고 말했다.

그들은 '6월 30일까지 입주가 만료된 후에 발생하는 금융비용'을 미리 부담하려는 까닭 역시 "조합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조 부장은 "당초 삼성은 문화시설부지 원금 214억 원 전액을 (조합에서 먼저) 분담해달라'고 했는데, 언제 (구청에서) 받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미리 (분담)하는 게 금융비용을 덜 부담하는 방법이라 택했다"고 말했다.

또 "관리처분계획은 조합과 조합원 내부의 일이고, 시공사와 조합의 관계는 도급계약에 따라 달라진다"며 "(추가분담금 안건이) 총회에서 부결됐다고 시공사에 항의할 수 없다"고 했다.

총회의 효력이 조합원-삼성물산까지 미치지 않는 만큼, 삼성물산이 추가분담금 미납을 이유로 입주를 막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조 부장은 '그럼 해결책은 뭐냐'는 질문에 "조합에서 (추가분담금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징수 권한도 없고 조합이 대신 내줄 돈도 없다"고 답했다.

삼성물산 홍보팀 관계자는 현 상황과 관련해 "저희가 말씀드리기 적절치 않다"며 "이미 조합에서 충분히 들은 것으로 아는데, 그쪽 입장과 대동소이하다"고 답했다. '당장 이사 온 사람에게 열쇠를 주지 않고 있는 건 삼성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 부분에도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김숙이씨는 이날 오후 6시를 조금 넘겨 마침내 새 집에 발을 들였다. 열쇠를 달라며 항의한 지 7시간여 만이었다. 김씨는 "아기들이 네 명씩이나 돼 울며 겨자먹기로 추가분담금을 냈다"며 "없는 사람 울분 터진다, 있는 사람(삼성물산)의 횡포"라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 약 40명은 현재 '동대문구청이 나서서 해결하라'며 구청장실을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태그:#재개발, #추가분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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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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