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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뒷바라지와 생활비 등을 위해 아내가 빚을 지게 된 경우, 이혼할 때 채무도 재산분할이 가능해 남편도 분담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부부 쌍방의 총 적극재산에서 채무액을 빼면 남는 금액이 없는 경우 재산분할을 허용하지 않는 입장이었으나, 이번 대법원 판결로 종래 대법원의 견해를 변경한 것이다.

 

종래에는 예를 들어 부부 일방은 많은 빚을 지고 있는 반면 상대방은 그보다 적은 액수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경우까지도 재산분할을 허용하지 않아, 결국 이혼 후에도 부부 일방이 그 빚을 모두 떠안게 돼, 재산분할 제도의 취지 및 양성평등에 반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부부의 채무가 재산보다 많은 경우에도 여러 사정을 참작해 재산분할을 명할 수 있다고 판시한 첫 번째 판결이다.

 

사건은 이렇다. A(여)씨는 2001년 정당 등에서 사회활동가로 활동하던 B씨를 만나 결혼했다. A씨는 정당 활동을 하던 남편이 가계에 도움을 주지 못하자 개인과외 등으로 가정경제를 전담하면서 뒷바라지를 했다.

 

또한 A씨는 남편의 선거자금과 활동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2억7600만 원을 빌렸고, 보험사로부터도 3000만 원의 보험대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B씨는 2006년 8월 업무상 같이 살게 된 아내의 학교후배와 바람이 났고, 우연히 두 사람의 성관계를 목격한 A씨는 많은 충격을 받고 이혼을 생각했으나, 친정엄마의 설득으로 참고 살았다.

 

그럼에도 B씨는 2007년 11월 아내에게 자신의 외도를 정당화하고 모욕적은 언행으로 큰 상처를 주면서 오히려 이혼을 요구해 두 사람은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했고, 결국 B씨는 2008년 6월 이혼하자면서 집을 나가버렸다.

 

이후 두 사람은 이혼을 전제로 A씨의 빚 청산 문제를 논의했으나,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해 협의이혼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남편 B씨가 이혼 소송을 청구했다.

 

그러자 A씨는 "B씨의 잘못으로 이혼에 이르게 됐고, 3억 원이 넘는 빚 역시 생활비뿐만 아니라 B씨의 활동비와 선거자금 등으로 인한 것인 만큼 재산분할로 2억 원을 지급해 달라"며 맞소송을 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A씨와 B씨는 이혼하고, B씨는 A씨에게 위자료 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은 이혼을 원하고 2008년 6월경부터 별거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보면, 혼인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며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은 피고의 후배와 부정행위를 하고도 반성 없이 오히려 책임을 피고에게 떠넘기고, 그동안 가정경제를 전담해 온 피고가 건강을 이유로 원고의 시험공부에 대한 지원을 거절하자 곧바로 가출해 버린 원고에게 있다"고 밝혔다.

 

다만 재산분할 청구에 대해서는 아내(A)와 남편(B)씨의 총 적극재산에서 총 채무(소극재산)를 빼면 남는 금액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쉽게 말해 재산분할을 할 돈이 없다는 이유에서인데, 이는 종전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아내 명의의 빚은 부부생활을 하면서 생활비와 남편의 정치활동비용 등으로 부담하게 된 것들인데, 이 경우 재산분할을 허용하지 않으면, 원고는 이혼 후에도 부부공동생활을 위해서 진 빚을 혼자 떠안게 되는 반면, 피고는 전혀 빚을 부담하지 않게 돼  부당한 결과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쉽게 말해 갖고 있는 재산보다 채무가 많은 부부 사이에도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이 가능한지가 이 사건의 쟁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종전 대법원 판례는 이런 경우 재산분할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20일 "남편의 선거자금과 활동비 등을 뒷바라지 하느라 빚을 지게 된 만큼, 재산분할로 2억원을 지급해 달라"며 A씨가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재산분할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대구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대법원 판례 변경에는 대법관 8명이 다수의견을 냈고, 반대의견 2명, 별개의견 2명이 있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원심이 여러 사정을 참작해 원고의 재산분할 청구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부부의 총 적극재산이 채무액보다 적다는 이유만으로 재산분할 청구를 배척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부부의 일방이 청산의 대상이 되는 채무를 부담하고 있어 총 재산가액에서 채무액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금액이 없는 경우 상대방의 재산분할 청구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한 종전 대법원 판결들은 변경한다"고 밝혔다.

 

다만 "다만 채무의 분담을 명할 경우에도 적극재산을 분할할 때처럼 재산형성에 대한 기여도 등을 중심으로 일률적인 비율을 정해 당연히 분할 귀속되게 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상훈·김소영 대법관 반대의견...고영한·김신·김용덕 대법관 별개의견

 

반면 이상훈·김소영 대법관은 "재산분할 제도는 혼인생활 중에 부부 공동의 노력으로 형성한 순재산이 있는 경우만을 대상으로 한다"며 "다수의견은 실질적인 공평을 강조하지만, 남편이 직장을 가지고 아내가 전업주부인 가정이 아직도 많은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남편이 실직이나 사업실패로 지게 된 빚을 아내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부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아울러 고영한·김신 대법관은 "부부의 채무 총액이 적극재산 총액보다 많더라도, 재산분할 청구인에게는 순재산이 남아있지 않은 반면 상대방에게는 그 명의의 순재산이 있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순재산 범위에서만 재산분할을 허용해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고, 김용덕 대법관은 상대방의 적극재산 범위에서 재산분할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한편, 대법원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사건처럼 부부 쌍방의 총 채무액이 총 적극재산 가액을 초과하는 경우에도 일체의 사정을 참작해 재산분할을 명할 수 있다고 판시함으로써 채무도 재산분할을 허용한 것"이라며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부부의 양성평등과 실질적인 공평을 지향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며 "향후 법원의 실무도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재산분할,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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