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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입니다.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우리에게 시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연재 '전통시장 고군분투기'는 기자를 지망하는 청년들이 시장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점들을 다룰 것입니다. 장소는 서울의 전통시장 30곳입니다. 취재 원칙은 하나 입니다. '시장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 기자말

마장동축산물시장의 하루는 새벽2시에 시작된다.
 마장동축산물시장의 하루는 새벽2시에 시작된다.
ⓒ 안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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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웠던 시장 골목에 가게 불이 하나 둘 켜지고 좁은 길 사이로 냉동 트럭과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검은색 우비를 입은 사람들은 쉴 틈 없이 냉동 트럭에서 도축된 돼지와 소를 가게로 운반한다. 새벽의 찬 공기와 피비린내, 사람들의 땀 냄새가 섞인 이곳은 마장축산물시장이다.

서울시 성동구 마장동에 위치한 마장축산물시장은 1963년 도축과 고기판매로 시작했다. 시장의 크기가 점점 커지며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 축산물 유통의 60~70%를 담당하고 있다. 하루 평균 한우 800~1000마리가 취급되며, 연간 200만 명의 이용객과 종사자 1만2000명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현재 도축장은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서울에서 사라지고 도·소매가 중심을 이룬다.

마장축산물시장의 하루는 새벽 2시에 시작된다. 부천, 안성, 안양, 음성 등지에서 도축된 소와 돼지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보통 오후에 경매가 이뤄지는데 당일 오후와 다음날 새벽에 두 번에 걸쳐 마장축산물시장으로 배달된다. 배달된 소와 돼지는 바로 부위별 해체작업을 시작한다. 해체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정확한 명칭은 식육처리기능사다. 하지만 마장축산물시장에서는 '정형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지난달 30일, 일을 하게 된 곳은 도매와 정형을 함께하는 <청정푸드>다. 이곳은 사장인 양영선 (41)씨와 최무성(38), 오현석(36)씨 총 세 명이 일한다. 새벽 5시, 개점준비와 고기 받는 일과 들어온 소의 품질과 한우등급판정확인서를 꼼꼼히 살피는 일은 8개월 차인 현석씨가 담당한다. 1개월 차인 무성씨는 작업에 쓰일 도구와 진공포장기를 살핀다. 이날 들어온 소는 10개월 된 C등급 거세우다. 소는 머리와 내장을 제외하고 4등분 되어 들어온다. 무게가 각각 100kg으로 성인 남성이 혼자 들기엔 버겁다. 작업대에 소를 올려놓고 뼈를 발라내는 발골과 부위별로 나누는 정형이 시작된다.

배달은 가게의 막내 최무성(38) 씨의 몫이다.
 배달은 가게의 막내 최무성(38) 씨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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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 작업과 함께 현장교육이 이뤄진다.
 정형 작업과 함께 현장교육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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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사,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직업

정형을 시작할 무렵 앞치마를 두른 남성이 가게로 찾아왔다. 스스로 "마장동의 프리랜서"라고 소개한 염동수(48)씨다. 그는 20년 이상의 정형 베테랑으로 마장축산물시장을 돌며 정형을 도와주고 필요한 부분을 구매한다.

"소 가격은 등심이 좌우합니다. 등심 가격이 전체 소 가격의 60%를 차지합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가격 차이가 심해지죠. 뒷다리 부분은 초보자도 정형할 수 있지만, 등심이 있는 앞다리 부분은 베테랑만이 할 수 있어요."

보통 소 한 마리를 정형하는데는 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오늘은 전체 물량이 소 한 마리뿐이다. 정형과 함께 현석씨에 대한 교육이 이뤄진다. 칼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현석 씨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염동수씨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칼 돌리지 마! 그렇지! 조심해서! 뼈 보여 안 보여? 빠르고 정교하게! 알겠어?"

현석씨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듯 정형에도 순서가 있다. 처음 일 년은 고기를 진공 포장하는 것부터 배달까지 온갖 잡일을 하며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익힌다. 일 년이 지나서야 칼을 쥐게 된다. 정형 교육을 받고 10년이 지나야만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정형일이 고되고 위험한 탓에 10명 중 2명만이 기술자가 된다. 염동수씨는 정형을 다이빙에 비유한다. 떨어지는 건 같아도 기술점수가 다르듯 정형도 누구나 칼을 쥐고 고기를 나눌 수 있지만, 품질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10년 전만 해도 백정이란 인식이 강했지. 작업 환경도 불결하고 사회적 시선도 안 좋았어. 지금은 깔끔한 환경에서 작업하고 능력만큼 돈도 벌게 되니 인식이 많이 변했지.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 좋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직업이야."

사장 양영선(41) 씨도 정형 작업에 참여한다.
 사장 양영선(41) 씨도 정형 작업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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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떼이고 구제역 파동도 이겨낸 힘

정형이 거의 끝나갈 무렵 사장 양영선씨가 출근한다. 거래처에 주문을 확인하고 배송될 물건을 살핀다. 고기는 주로 서울과 수도권의 음식점이나 마트에 납품된다. 양 사장은 마장동축산물시장에서 16년 동안 일했다. 10년 동안 일을 배우고 자신의 가게를 꾸민 지 6년째다.

그가 마장동에서 장사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품질과 인간관계다. 좋은 품질의 소를 구하고 납품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만약 소의 품질을 바꿔 납품하면 상인들 사이에서 바로 퇴출이다. 마장축산물시장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종종 그런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갈비 남는 거 없어? 그러지 말고 좀 풀어."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부족한 물량을 상인들끼리 서로 사고 팔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변 상인들이 찾아온다. 서로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돕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좋아야 한다. 그래서 양 사장은 "적을 두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언제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는 까닭에서다.

뼈와 살을 분리하는 작업은 신속, 정확하게 이뤄진다.
 뼈와 살을 분리하는 작업은 신속, 정확하게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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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운영하며 힘든 점도 있다. 물건을 납품하고 돈을 떼이는 일이 많다. 마장축산물시장의 도매는 선 납품 후 결재가 일반화되어있다. 물건을 납품했지만, 음식점이 폐업하면 돈을 받을 방법이 없다. 이런 까닭에 일 년에 4000만 원을 떼인 적도 있다.

또 유통구조문제도 있다. 언론에서 소 가격이 폭락했다고 보도해도 경매에 참여하면 가격은 늘 비슷했다. 농민들은 싼 가격에 소를 팔지만, 막상 도매에 넘어오는 가격은 일정했기 때문에 유통구조에 대한 불만이 있다. 그는 구제역 파동도 여러 번 넘겼다. 소 가격이 폭등하고 물량을 구할 수 없었다. 손해를 보면서도 납품을 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참고 견뎠기에 이 자리까지 왔다.

그의 목표는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을 충족한 시설을 갖추는 것이다. 군부대나 학교 같은 곳에 대규모 납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HACCP 시설을 갖춘 대형업체가 많이 생기며 마장축산물시장에 있는 소규모 업체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는 "4~5년이면 소규모 업체는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양 사장의 표정은 밝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꿈이 있기 때문이다.

마장축산물시장의 하루는 오후 3시면 끝난다. 납품까지 마치고 나면 하루 동안 피로 얼룩진 도마를 닦고 바닥을 청소한다. 퇴근 준비를 하는 직원들의 표정은 밝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지만, 일찍 끝나는 특혜를 누리는 순간이다. 고된 노동이 끝나고 웃으며 소주 한 잔을 하러 가는 그들의 삶 터, 여기는 마장축산물시장이다.

등급의 함정
특별한 날, 좋은 음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한우다. 한우라고 무턱대고 먹는 게 아니다. 등급을 살핀다. A++은 먹어줘야 기분이 좋다. 비싸지만 가격 값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등급의 맛을 어떨까. 정형사들은 "무조건 등급만 보고 먹지 말라"고 말한다.

한우의 등급은 A, B, C, D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A는 고기의 함량이 많다. B는 고기와 지방이 적절히 섞여 있다. C는 지방의 함량이 살짝 많다. D는 등외로 육우를 이야기한다.

등급은 다시 ++, +, 1, 2, 3으로 나누어진다. 소비자들이 고기를 선택할 때에는 B와 C도 괜찮다고 한다. 무조건 등급에 의존하는 게 아닌 취향에 따라 고기를 먹는 게 좋다고 한다. 고기를 선택할 때에는 선홍빛인지, 마블링 즉, 지방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지, 지방보단 고기가 많은지를 꼼꼼히 따지면 좋은 고기를 고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연재는 김진석 사진작가가 기획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 중인 안형준(29), 임경호(29), 박기석(27) 3명이 취재를 진행합니다.



태그:#마장동, #한우, #정형사, #식육처리기능사, #마장동축산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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