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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진 연천군 중부전선 부근 동이리마을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진 연천군 중부전선 부근 동이리마을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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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눈이 내렸는지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온통 하얀 눈 세상이다. 나이가 든 탓일까, 눈이 너무 많이 오면 귀찮은 존재가 된다. 미끄러져 낙상하기도 쉽고, 걷기도 힘들고….

그러나 하얀 눈으로 덮인 세상은 여전히 내 동심을 유발한다. 눈은 앙상한 가지를 덮고, 가을걷이를 한 후 아무것도 볼 것 없는 황량한 들판도 덮어 하얀 도화지로 만들고 만다. 나는 눈으로 만든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동심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김장김치를 땅에 묻고 그 위에 만든 인디안 원두막위에도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김장김치를 땅에 묻고 그 위에 만든 인디안 원두막위에도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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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눈도 치울 겸 나는 폰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밤새 내린 눈은 발목이 빠질 정도로 소복이 쌓였다. 금년 겨울 들어 가장 많이 내렸다. 눈삽을 가져오기 위해 창고로 가는데 김장 항아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인디언 원두막이 하얀 눈에 덮여 원시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저 인디언 원두막 안, 땅 속에 묻어 놓은 김치를 생각하니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인다. 바람이 불자 참나무 가지에 쌓여 있던 눈이 민들레홀씨처럼 휘날려 떨어진다. 멋진 풍경이다. 장독대에도 눈 모자를 쓴 항아리들이 눈사람처럼 서 있다.

눈 모자를 쓰고 있는 장독대 항아리
 눈 모자를 쓰고 있는 장독대 항아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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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지에는 대신 눈을 치워줄 사람도 없다. 내집 앞 눈은 내 손으로 치워야 한다. 나는 창고에서 눈삽을 꺼내들고 창고와 본채 사이에 작은 길을 하나 냈다. 그리고 테라스에 쌓인 눈을 치우고 빗자루로 쓸었다. 그 다음에는 대문으로 통하는 정원에도 역시 작은 길을 하나 냈다. 나는 쓰레기 더미로 가는 곳과 정자로 가는 정원에도 역시 외줄 길을 만들어 놓았다.

테라스에 눈을 치우고 쓸어 냈다
 테라스에 눈을 치우고 쓸어 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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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으로 통하는 정원에 외줄 길을 낸다
 대문으로 통하는 정원에 외줄 길을 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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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으로 올라오는 가파른 길은 여러 번 손이 가야 한다. 거의 45도 각도로 가파른 언덕은 눈을 치우지 않으면 그대로 얼어버려 걷기도 힘들고 자동차의 통행도 어려워진다. 눈이 얼어붙기 전에 치워야 한다. 또 눈이 녹아버리거나 얼어버리면 눈을 치우기도 어려워진다.

맨 처음 작은 길을 수직으로 하나 내고, 그 다음에는 작은 길에서 수평으로 눈을 하나하나 밀어내야 한다. 눈삽으로 눈을 밀어내는 작업을 끝내면 다시 빗자루로 내려가면서 한 번 쓸고, 다시 올라오면서 쓸어야 눈이 완전히 치워진다. 눈을 완전히 치우기 위해서는 4번의 손이 가야 한다. 그렇게 작업을 하고 나니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역시 운동이란 좋은 것이다. 

먼저 눈샆으로 외줄기 길을 낸다
 먼저 눈샆으로 외줄기 길을 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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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 쓸어, 4번 손이 가서 치운 대문 앞 길
 밀고 쓸어, 4번 손이 가서 치운 대문 앞 길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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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무도 찾아 올 리 없는 중부휴전선 오지이지만 그래도 길은 내 놓아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연천군 동이리 마을은 주변에 있는 전원주택에는 주말에만 가끔 사람들이 찾아올 뿐 주중에는 거의 아내와 나 둘이서만 지낸다. 일주일 내내 사람은 물론 자동차도 구경하기 어려운 오지이다.

그래도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다. 박새와 까치, 기러기, 까마귀, 솔개 들이 늘 집 주위를 찾아온다. 박새와 참새들은 거의 처마 밑이나 테라스까지 찾아와 먹이를 구걸한다. 까치는 높은 참나무 가지나 전깃줄에 앉아 까악 까악 하고 아침 인사를 건넨다.

참나무 위에 지어 놓은 까치집에 앉아 인사를 하고 있는 까치
 참나무 위에 지어 놓은 까치집에 앉아 인사를 하고 있는 까치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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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추운 겨울 밤을 어떻게 잘 지냈니?"
"까악까악. 너무 추웠지만 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나도 까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언어는 서로 통하지 않지만 우린 마음으로 통한다. 까치는 한동안 자신의 집을 들락날락했다. 어디선가 까마귀가 까치집으로 날아오자 근처에서 보초를 서던 까치가 쏜살 같이 날아와 까마귀를 쫓아냈다.

까마귀는 혼비백산하며 도망을 쳤다. 아마 알이나 새끼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집안을 들락날락 하는 까치는 어미고, 망을 보는 녀석은 아빠인 것 같다. 까치부부는 자기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거의 필사적인 노력한다. 까마귀는 까치보다 훨씬 덩치가 큰데도 목숨을 걸고 덤비는 까치를 당해낼 재간이 없는 모양이다.

까치집을 들락 달낙하는 까치. 아마 새끼나 알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까치집을 들락 달낙하는 까치. 아마 새끼나 알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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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까치에게 쫓겨 혼비백산 달아나는 까마귀
 아빠까치에게 쫓겨 혼비백산 달아나는 까마귀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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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를 쫓아내고 망을 서고 있는 아빠까치
 까마귀를 쫓아내고 망을 서고 있는 아빠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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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러기들의 개체수가 엄청 많아졌다. 기러기들은 하늘을 종횡무진 날아다닌다. 어떨 때는 수백 마리, 수천마리가 날아다니기도 한다. 겨울이면 틀림없이 찾아드는 철새들을 보노라면 새들의 생존 방법이 참으로 놀랍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늘을 종횡무진하면 날아 다니는 기러기 떼
 하늘을 종횡무진하면 날아 다니는 기러기 떼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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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그 뿐인가? 우리 집에는 들고양이도 찾아오고, 노루와 고라니도 찾아온다. 한 겨울 녀석들은 나와 가장 친한 벗들이다. 오늘 아침에도 고라니 한 마리가 나를 보더니 숲으로 줄행랑을 쳤다.

"야,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돼. 난 네 친구야."

그러나 고라니는 워낙 의심이 무척 많은 녀석이다. 괜히 눈을 헤치며 달아나는 고라니에게 미안하다.

후다닥 놀라며 숲속으로 줄행랑을 치는 고라니
 후다닥 놀라며 숲속으로 줄행랑을 치는 고라니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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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는 창가까지 찾아와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뭐, 먹을 것 좀 없나요?" 하면서. 나는 가끔 먹다 남은 음식(생선, 고기 뼈 등)을 들고양이에게 보시하곤 한다. 그러면 녀석은 슬금슬금 훔쳐보며 하나도 남김 없이 깨끗이 먹어 치운다. 새들을 위하여 가끔 모이도 준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찾아드니, 나는 집으로 오는 길에 눈을 치우고 친구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법정스님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고 했다. 3.8선 넘어 휴전선 오지에 새들마저 날아가 버리고 없다면, 고라니나 들고양이, 까치나 기러기들마저 없다면, 정말 외롭고 쓸쓸해질 것이다. 저 친구들이 있기에 나는 홀로 있지 않고 또 외롭지 않다.

정원에 서 있는 천연 크리스마스 트리
 정원에 서 있는 천연 크리스마스 트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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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정원에는 천연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을 가득 이고 여기저기 서 있다. 아마 금년 크리마스는 저 크리마스 트리들과 함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낼 것 같다.


태그:#눈치우기, #폰카로 찍은 눈 세상, #까치, #고라니, #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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