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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는 '2013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로 김종술 서부원 윤근혁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은 한 해 동안 최고의 활동을 펼친 시민기자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시상식은 2014년 2월 14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00만원, 그리고 부상으로 태블릿PC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14 2월22일상'과 '2013 특별상', '2013 올해의 기사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 드립니다. [편집자말]
특별한 인터뷰 기사 청탁을 받았다. <오마이뉴스>에서 2013 올해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된 같은 지역 시민기자를 인터뷰하라는 거였는데, 기꺼이 수락했다. 그런데 편집부 기자의 말인즉 안타깝게도, 내가 인터뷰할 기자님은 나를 전혀 모른다 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정미경 기자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더라"며 안타까워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시민기자조차 존재 자체를 모를 만큼 내 기사쓰기가 그동안 질적, 양적으로 미흡했음을 반성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2013 올해의 뉴스게릴라 수상자인 서부원 시민기자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2013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 서부원 기자
 2013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 서부원 기자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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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려니, 그동안 서부원 기자에게 품었던 경외감이 일종의 두려움으로 작용했다. 그의 기사를 읽었던 느낌에 비추어 짐작컨대, 그는 몹시 철두철미한 성격에 지나치게 올곧고 진지해서 일말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는 무척 깐깐한 성격임이 분명할 것이었다. 게다가 직업도 하필 '교사'였다. 여고 2학년 학부모인 내게 교사들이란 늘 불편한 존재다.

아이 학업에 소홀한 학부모로서의 열등감이 작용한 탓일 것이다. 아이가 자율학습을 빼달라는 도움요청 문자를 보내올 때마다 매번 그럴싸한 핑계를 조작해서 통화해야 했던 곤혹스런 존재들로 담임, 교사라는 이미지는 내게 잘못 인식되어 있었다. 서부원 기자님은 남자고등학교의 '학생부장' 출신이라 했다. 내 소심한 고민을 듣더니 편집부 기자는 "그 부분은 절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라고 나를 적극 안심시켜주었다.

"만나보시면 알겠지만 그 기자님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딱딱한 성격 아니십니다. 그러니 염려 놓으세요."

그렇다면, 소개팅 할 것도 아니고, 마음을 편히 갖고 그 기자님을 공부해 보기로 했다. 기사들을 토대로 서부원 기자의 신상 털기에 들어갔다. '올해의 뉴스게릴라'니까 2013년에 쓴 기사를 중점적으로 탐색해나갔다. 그런데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세 페이지, 열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기사 작성 연도가 여전히 '2013'에 머물러있다. 한 페이지에 다섯 개의 기사가 묶여 있으니 이미 50개 넘는 기사를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11페이지 째가 돼서야 비로소 올해의 첫 기사가 등장했다.

올해가 다 가려면 아직 보름 정도 남았으니 이 속도면 아마도 일 년에 쓴 기사 개수가 60개를 돌파할지도 모르겠다. 나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다작이다. 또 기사들이 엄청나게 길다. 한편의 기사를 완독하자면 마우스 휠을 계속해서 내려야 해서 손목이 아플 지경이다. 이 많은 기사들을 언제 다 읽나...

평교사 신분으로 교육부 장관을 향해 일침

기사에 의하면, 서부원 기자는 교사라면 누구나 기피하기 마련인 '학생부장'을 역임했다. 학기 초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마땅한 방과 후 시설을 물색하느라 맞벌이 부부의 고충에 직면하기도 했다. 한국사 과목 서부원 선생님의 수업방식은 독특해서 영화 <지슬> <5·18비디오> <백년전쟁> 등의 시청각자료들을 상영하는 것으로 수업을 대체하기도 한다. 내신에 민감한 입시경쟁체제의 고교생들을 상대로 모둠 수업 방식을 시도했다가 당연히 내신점수관리에 철저한 상위권 학생, 학부모들의 반발과 원성을 사기도 했다. 교사로서 끊임없이 시도하는 독특한 수업방식과 돌출행동으로 그는 결국 '종북', '문제교사', '몰상식한 교사'로 낙인찍힌 처지다.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 <오마이뉴스>에 게재한 숱한 문제기사들도 한몫 했다. 그러나 전혀 개전의 정 없이 더욱 왕성한 기사쓰기를 강행하며 평교사 신분으로는 서남수 교육부 장관을 향해, 가톨릭 평신도 '서 안젤로' 자격으로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의 발언을 규탄하는 공개편지를 최근 <오마이뉴스>에 실었다. 지난여름에는 학교 교문 앞에서 '불의가 횡행하는 현실에 침묵은 악'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국관련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여행을 무척 즐기는 그는 지난겨울에는 타이완을, 여름에는 일본 규슈지방을 다녀왔다. 제주도를 특히 사랑해서 자주 찾지만 궁극에 닿고 싶은 영혼의 종착지는 체 게바라의 나라 '쿠바'다. 쿠바여행의 그날을 위해 블로그 네임 '멋진 신사'님은 오늘도 열심히 카메라를 작동중이다.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 입시경쟁에 내몰린 청소년들,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춘, 반교육적 정책의 피해학생 등은 그의 카메라 렌즈 조리개를 조절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피사체들이다.

방대한 분량의 기사들은 대충 읽는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서부원 기자님의 지난 일 년여의 행적을 더듬다보니 다시금 처음에 품었던 불안이 증폭되었다. 그 숱한 비난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문제기사들을 꾸준히 양산해 내고 있는 이 강성기질의 소유자가, 과연 '만나보면 소탈하고 격의 없고 명랑 쾌활한 성격'이 가능할지, 편집부 기자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강한 의구심이 재발했다.

'제가 지금 시험기간이라 오늘 오후가 한가합니다.'

다음날(13일) 접선 날짜를 잡자는 문자를 보냈더니 곧바로 답장이 왔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딸도 요새 시험기간이라고 했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당장 그날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나야말로 주5일 놀고 이틀 쉬는 사람이니 남는 게 시간밖에 없지만 교사에게 시험기간은 드물게 한가한 날일 것이다.

"'위로 차원에서' 준 게 아닌가, 그런 결론이 났습니다"

"전 아직도 실감이 안 납니다. 제가 상을 받게 됐다니까 얼떨떨했어요."

카페 안으로 카키색 점퍼 차림에 실제로 '무척 밝고 명랑하고 활달하고 선량한' 인상의 남성이 들어섰다. 나는 먼저 수상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넸다. 반갑게 악수를 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수상 사실을 부당한 오류로 받아들이는 눈치였고 내게도 동의를 구하는 듯한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했다. 쟁쟁한 시민기자들도 많고 많은데, 왜 하필 자신이, 올해의 뉴스게릴라 중 한 명으로 선정됐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는, 무척 혼란스런 상태였다.

그러나 그날의 주제인, 수상에 관한 '우울한' 이야기만 아니라면 그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주도해 나갔다. 처음 품었던, 어색하고 어려운 만남이 되면 어떡하나, 했던 두려움은 첫 대면서부터 확실하게 불식되었다.

서부원(아래 서씨) :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거든요."
정미경(아래 정씨) : "편집부에서 올해의 뉴스게릴라 수상자 중에 광주 시민기자 한 분이 있다기에 저는 곧바로 아!, 서부원 기자님이시다, 하고 예상했는데요?"

서씨 : "에이, 기자님도 똑같이 편파적이시네. 수상 사실을 수긍하기가 어려워서 어제는 제가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들을 차분하게 되짚어보았거든요? 그랬더니 2002년도에 첫 기사를 쓰기 시작해서 10년 넘게 기사를 썼더라고요. 제가 오랜 세월, 꾸준히 기사를 쓰니까 순전히 '위로 차원에서' 이 상을 준 게 아닌가, 그런 결론이 났습니다."

정씨 : "네, 기자님 주장대로 수상자 선정기준이 시민기자로 장기 근속하는 것이라면, 시민기자가 현재 7만 명이라니까, 해가 갈수록 수상자 숫자는 이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많은 문제기사들을 쓰고서도 교직을 아직까지 온전히 유지하고 계시는 것이 가장 안심이 되더군요." 
서씨 : "하하하!(매 대화의 시작과 중간, 끝마무리를 커다란 웃음소리로 추임새를 넣으시는 기자님의 특이한 대화법상, 너무 자주 등장하는 너털웃음소리를 묘사하는 의성어는 이하 생략하기로 한다) 기사가 나가고 나면 비난, 항의, 냉대, 협박 등이 가해지죠. 그래도 격려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제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가 비교적 관대한 편인가 봐요. 많은 분들이 제가 교사 생활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걱정해 주시는데 다행히 무탈합니다. 저는 안티마저도 제 기사에 보여주는 관심과 애정이려니 여기면서 즐겁게 쓰는 편입니다."

정씨 : "'종북 교사', '문제교사' , '몰지각한 교사'로 찍히고도 동요하지 않으신다니 다행입니다. 혹시 생각나는, 가장 섬뜩한 내용의 쪽지 있으세요?"
서씨 : "어떤 분이, 밤길 조심하라는 쪽지를 보내왔더군요."

정씨 : "본인이야 협박이나 엄포가 무섭지 않은 담대한 성격의 소유자라지만 그런 기자님의 위험한 취향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지요..."
서씨 : "집사람은 제가 하는 일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편입니다. 그래서 기사를 쓰는 데 특별히 심리적 제약을 받지는 않습니다. 저는 기사를 쓴다거나 제가 뜻하는 바를 실행에 옮길 때 집사람에게 사전 고지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제가 하는 일, 쓰는 기사 자세히 모릅니다. 그런데 저번 1인 시위 건은 무척 섭섭해 하더군요. 자칫하다간, 직업의 명운이 걸린 문제를 어떻게 사전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독단으로 할 수 있느냐면서 많이 원망했어요. 집사람 친구가 우연히 학교 앞을 지나다가 피켓 들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알려주더래요."

지난 6월 27일 아침, 교문 앞에서 1인시위 중인 서부원 기자.
 지난 6월 27일 아침, 교문 앞에서 1인시위 중인 서부원 기자.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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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성장속도 따라잡을 수 없을 때 그만 둘 거예요"

정씨 : "대부분 시민기자들은 배우자에게 일차 검열을 받는다던데 기자님은 가장 까다로운 관문을 거치지 않으시는 셈이네요. 기사는 주로 언제 쓰시나요? 그리고 기사 한편 쓰는데 드는 시간은요?"
서씨 : "보통 두어 시간 걸립니다. 저는 기사를 주로 학교에서 점심시간이랄지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씁니다. 의도적으로 집사람 눈을 피해 학교에서 쓰는 것은 아니라 집에 오면 아예 컴퓨터를 켜지 않는 습관이 들어있어요."

정씨 : "두 시간요? 그 긴 기사들을 고작 두 시간만에..."
서씨 : "기사가 너무 길다고 편집부에서도 자주 지적합니다. 편집부 지적이 아니더라도 저조차 읽다보면 너무 길어서 집중이 안 돼요. 어떻게 하면, 하고자 하는 말을 작은 분량에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제 기사쓰기의 가장 큰 난제입니다."

정씨 : "아직도 학교 '학생부장'맡고 계십니까?"
서씨 : "아뇨. 지금은 학생부장 졸업하고 저의 오랜 염원이던 학부모 독서회를 맡고 있습니다. 학부모 독서회는 제가 무척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으니까 한번 잡은 이 직책을 장기집권하렵니다. 학교 행정실에 떼를 써서 예산 증액하고 기획한 일들을 벌이는 기쁨이 쏠쏠합니다. 유명강사들 초청 강연도 많이 마련하고 있습니다, 저번에는 홍세화 선생에 이어 안도현 시인이 저희 학교 강사로 다녀갔습니다. 안도현 시인이 그때, 떠들썩한 배심원 판결(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이 만장일치로 전부무죄 평결을 내렸지만, 재판부가 이를 뒤집고 일부 유죄를 선고한 일) 다음날이라 경황이 없었을 텐데도 강연 약속을 지켜주시더군요."

정씨 : "아! 저도 그날 안도현 시인 다른 강연을 들었었어요. 안도현 시인은 원래 기자님 학교 강연회에 오셨다가 덤으로 제가 참석했던 강연까지 맡아주신 거였군요. 그날, 안도현 시인을 섭외한 대단한 인물이 누군가 했더니 바로 서부원 기자님이셨어요."
서씨 : "저는 누군가를 간곡하게 설득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면 일부러 편지를 직접 써서 보냅니다. 세상이 아무리 최 첨단화 되어도 육필편지는 아직도 가장 강력한 소통수단이라는 것을 여러 번의 편지쓰기 경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안도현 시인에게 지방의 한 고등학교 학부모 독서회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편지를 직접 써서 부쳤습니다. 나중에 안도현 시인이 그러더군요. 요즘 세상에 편지까지 직접 써서 사람을 압박하는 원시인이 누군가 궁금해서 거절 못하고 수락했다고요."

정씨 : "매사에 굉장히 적극적인 성격이신 것 같습니다. 하고자 하는 것을 별 고민 없이 즉각 행동으로 옮기고 보는 추진력도 대단하시고, 참 부러운 성격이십니다. 기사만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신 것 같습니다."
서씨 : "아! 저, 축구도 엄청 잘합니다. 저 여러 군데 축구회에 소속되어 맹활약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이랑 똑같이 달리면서 자주 공을 찹니다. 아이들하고 운동장에서 함께 축구공 찰 수 있는 체력이 안 된다 싶으면 그땐 가차 없이 교직을 떠날 생각입니다."

정씨 : "기자님이 축구를 무척 좋아하신다는 것은 계속 축구얘기를 하시니까 충분히 짐작은 했습니다(남자가 군대 아닌 학교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장시간 들어주었다). 그런데 대체 축구하고 한국사 과목하고 무슨 상관이 있기에 축구공을 쫓아다닐 체력이 못 되면 학교까지 그만두신다는 건지요?"
서씨 : "집사람과 부부교사로, 결혼식에서 맹세했습니다, 평생 평교사로 남겠다고요.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교사의 역할은 단순히 지식 전수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학생들과 같이 고민하고 공감하고 생활면에서도 일치해야 합니다. 함께 운동장을 누비다보면 실내수업만으로는 불가능한 끈끈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업만 충실 하는, 지식 전달기능에만 머무는 교사는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사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들 몸의 성장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때 머리로 가르치는 일도 멈추려고 합니다. 제가 지금 100미터를 13초에 달리거든요? 제 신체나이로 봐서 아마 그때가 대충 55세쯤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정씨 : "축구공을 따라잡을 수 없는 나이가 되면 미련 없이 은퇴하실 것이고 특별한 은퇴 후의 계획은 있으신지요?"
서씨 : "제도권 교육에서, 사회에서 도태된 아이들, 가정에서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아이들 모아서 함께 작은 공동체를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다함께 같이 일하고 놀고, 먹고 하는 평등한 공동체 말이에요. 그러자면 돈이 있어야 하겠어서 이번에도 역시 모 대기업 회장에게 제가 손 편지를 써서 보내봤습니다. 나한테 이런 포부가 있으니 기업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좀 도와달라고요. 그런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요."

정씨 :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식 손 편지의 위력이 마음 약한 시인에게는 통하지만 자본가에게는 먹혀들지 않는군요. 기자님이 꿈꾸는 공동체라는 것이 일종의 대안학교 같은 것 아닌가요?"
서씨 : "뭐 굳이 분류하자면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만 저는 학교라는 형식을 염두에 둔다기보다는 실제로 함께 놀고먹고 일하는 자유롭고 화목한 공동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적게 쓰고 적게 누리며 행복할 수 있는 법 가르쳐요"

깨알같은 메모로 가득한 서부원 기자의 수첩
 깨알같은 메모로 가득한 서부원 기자의 수첩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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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
: "아까부터 메모장을 자꾸 들춰보고 그러시는데 굉장히 수첩에 의존하는 타입이신가 봅니다."
서씨 : "저는 수시로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메모하는 습관이 기사 쓰는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제 생각뿐만 아니라 지나가다 눈에 띄는 글이나 문구도 반드시 메모를 합니다. 제가 하도 메모장을 많이 쓰고 소비하니까 이 메모장을 아들이 사서 선물해주더군요."

정씨 : "기자님은 아이들 교육방식도 평범하진 않으실 것 같습니다. 과열경쟁체제의 정글 같은 우리 교육현실에서 기자님은 과연 어떤 소신을 갖고 자식들을 길러내시는지요."
서씨 : "제 아이들은 학원 한 개도 안 보냅니다. 대신 저는 아이들로 하여금 물질적 풍요와 쾌락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물질문명의 발전과 개발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보거든요.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 추세로 보자면 미래를 대비하는 슬기로운 지혜란 다름 아닌 물질에 대한 욕망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물질적 풍요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조기훈련이 필요합니다. 적게 쓰고 적게 누리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정씨 : "부모들의 가장 큰 거짓말, 공부가 전부가 아니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말은 개념 있게 하지만 정작 자식공부에 있어서는 다들 비이성적으로 연연하지요. 그렇지만 기자님 교육방식이 사실이라면 신선한 충격입니다."  
서씨 : "저는 아이들에게 그런 부모이고 싶어요. 나중에 제 아이들이 커서 아빠를 검색했을 때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아빠요. 아, 우리 아빠가 이런 생각으로 이런 삶을 사셨구나, 제 역사를 열람했을 때 아이들이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부모로 남고 싶습니다.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제가 묵묵히 옳다고 믿는 바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도 그런 욕구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쓰기도 그런 노력중의 하나이고요."

정씨 : "<오마이뉴스>와 11년 열애 끝에 올해의 뉴스게릴라상까지 받게 되셨는데 그동안 <오마이뉴스>와 쌓은 애증도 켜켜이 쌓여 있겠네요?"
서씨 : "교사 생활 16년째입니다. 5년쯤 됐을 무렵 교사로서 감당할 수 없는 매너리즘에 빠졌었어요. 그때 <오마이뉴스>를 만나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저절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제 직업병을 치유해준 고마운 치료제입니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면서 성취감과 보람도 수 없이 느꼈고 교사직에 대한 사명감과 신명을 충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씨 : "<오마이뉴스>에 게재하신 기사들이 독자들에게 매번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만큼 사생활에도 적잖은 곤란을 초래했을 법 한데요."
서씨 : "안티 반응조차 저는 기꺼이 접수합니다. 기사로 인한 후폭풍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편이고요. 경찰서에 하도 자주 출두하다보니까 관할 경찰서 형사하고 형님, 동생 하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국정원은 주로 사실관계 확인 차원에서 전화만 하더군요. 그래서 아직 국정원과는 그런 끈끈한 유대관계는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억울한 일을 한번 당하고보니 <오마이뉴스> 기사의 위력을 실감하겠더군요. 차 접촉사고를 심하게 당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비소에서 헌 부품을 새 것으로 속여서 교체해놨더라고요. 제가 또, '자동차 1급 정비사자격증' 소지자거든요. 그래서 전문가적 안목으로 부품들을 살펴보니 죄다 중고부품을 새것으로 위장해 놓았더라니까요. 제가 항의를 하니까 적반하장으로 정비소와 보험회사가 동시에 저를 오히려 겁박하는 겁니다. 험악한 정비소 직원들과 거대 보험사를 상대로 개인이 싸우는 것은 버거운 일이더군요. 제가 기댈 곳은 오마이뉴스 뿐이었습니다.

그 일을 자세하게 기사로 썼고 포털에까지 뜨면서 독자 반응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자그마치 메일이랑 쪽지가 천개가 넘게 오는데(내가 잘못 들었나?) 일일이 답장을 하자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모범답장을 하나 작성해갖고 Ctrl+C(복사하기), Ctrl+V(붙이기) 키를 부지런히 움직여가면서 답장을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악덕정비소와 보험사는 단단히 대가를 치렀지요. <오마이뉴스>는 그렇게 제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밀접한 영향을 끼친 고마운 매체입니다. 반면 시민기자 활동 중에 회의를 느낀다거나 기사 때문에 위축되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정씨 : "오늘 기자님의 <오마이뉴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그 많은 기사 쓰느라 수고하셨고 오늘도 3시간 넘게 답변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서씨 : "고생하셨습니다."

축구, 여행, 운동, 국가, 동료 심지어 일베 학생과도...

제대로 된 수상자 인터뷰 기사가 되려면 이쯤에서 <오마이뉴스> 독자들을 향한 수상소감을 간략하게 부탁해야 맞겠지만 아직도 수상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혼란스런 서부원 기자를 더 이상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그 부분은 생략했다. 사실 나는 그날은 서로 존재감만 확인하고 채증사진만 찍고 실질적인 인터뷰는 차분하게 메일이나 문자로 보충하려 했다. 인터뷰어는 메모장은커녕 필기도구도 없이 왔는데 인터뷰이는 두터운 메모장에 무언가를 꼬박 꼬박 기록하고 있었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원래 직업은 의사였다. 그는 왕진가방을 들고 다니는 틈틈이 수많은 희곡과 소설을 썼다. 그는 '나는 의사를 본처삼아 문학을 애인 삼아 살아간다'라고 자신의 이중적인 삶을 규정했다. 내가 만난 서부원 기자는 '교직이 본처이고 <오마이뉴스>를 애인' 삼아 살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는 <오마이뉴스> 말고도 심각한 관계의 애인들이 있다. 축구, 여행, 운동, 국가, 동료 심지어 요새는 일베 학생들과도 교분을 트고 지낸다고 한다. 그러므로 오마이뉴스가 그의 유일한 애인일 것이라는 짐작은 착각이었다.

그는 <오마이뉴스>에 쏟는 만큼 그 다양한 애인들에게도 성실하고 공평하게 정열과 애정을 발산하고 있는 듯 보였다. 본처인 교직에 충실하면서 그 숱한 애인들과의 외도를 불협화음 없이 건사해 나가는 비결은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낙천적이면서도 단호하고 진지하면서도 순수한 그의 종잡을 수 없이 다중인격적인, '좋은 성격'에 있는 것 같았다.  


태그:#올해의 뉴스게릴라, #서부원, #교사,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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