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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시'(세종시) 건설은 단군이래 최대의 역사(役事)로 불린다.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는 고층건물들을 보면서 역사를 실감한다.

하지만 지상이 아닌, 땅속을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세종시 개발지역에서는 지금 단군이래 최대의 유적 유물 발굴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김교년 행정복합도시건설청 학예연구관(고고학 박사)은 "발굴 대상지역의 면적이 1200만 평방미터에 달한다"며 "도시 건설지역이 넓은 만큼 발굴조사 대상지역 또한 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김 연구관은 실무차원에서 발굴조사 기획을 전담하고 있는 사람이다.

"옛날에 행복도시 자리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뿌리에 대한 궁금증은 생래적이다. 나, 그리고 우리들 또한 먼 훗날에는 뿌리의 일부분일 테니까.

지난 한해 행복도시의 발굴 작업을 정리한 '문화유적 발굴 2013' 책자가 최근 발간됐다. 수많은 발굴 성과를 집대성한 김 연구관을 만나봤다.    

"청동기 시대부터 오늘날 개발지역 자리에 사람들 살아"

세종시 건설은 예산이나 규모 면에서 단군이래 최대 역사이다. 하지만 유적 발굴 또한 최대 규모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 최대 유적 발굴 세종시 건설은 예산이나 규모 면에서 단군이래 최대 역사이다. 하지만 유적 발굴 또한 최대 규모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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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지역에 옛날에도 사람들이 많이 살았겠죠. 언제 가장 많이 살았을까요.
"지금이죠. (웃음) 현재까지의 발굴 유적이나 유물을 기준으로 하면, 적어도 4만년 전까지는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습니다. 구석기 시대, 가까운 공주 석장리 유적지 같은 곳을 기준으로 하면, 구석기의 끝자락쯤에 해당하는 시기부터 최소한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 뒤로 계속해서 이 땅에 사람들이 살았습니까.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 등의 유물과 유적이 고루 나오는 걸로 봐서, 그렇게 추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최근 행복청이 발간한 '문화유적 발굴 2013' 책자를 보면 다양한 종류의 묘가 눈에 띱니다. 토광묘, 석곽묘, 목곽묘, 옹관묘, 석실묘 등등 아주 다채로운데요. 묘들이 유적발굴에서 갖는 의미는 뭡니까.
"장묘 풍습은 쉽게 변하지 않잖아요. 이런 까닭에 묘는 당시 사회를 짐작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다양한 묘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사회가 오늘날의 행복도시 개발지역에 과거에 존재했다는 뜻이겠지요. "

-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현재의 개발지역에 사람들이 대규모로 살기 시작했나요.
"연구를 계속해봐야 알겠습니다만, 청동기 시대부터는 오늘날 개발지역 자리에 널리 사람들이 분포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청동기 시대는 대략 기원전 1200년에서 300년 시기이다. 그러니 적어도 30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면, 이 지역 어디에서나 사람들과 마주칠 확률이 매우 높았다는 뜻이다. 강과 산, 들판이 조화를 이룬 행복도시 지역은 그 당시 근동에서 최고의 인기 '신도시' 지역이었을 수도 있다.

행복청 학예연구관인 김교년 박사가 최근 발간한 '문화유적 발굴 2013' 책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행복청 제공)
▲ 김교년 박사 행복청 학예연구관인 김교년 박사가 최근 발간한 '문화유적 발굴 2013' 책자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행복청 제공)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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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한 세력을 가진 인물이 이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쯤입니까.
"지금까지 발굴 조사만을 토대로 한다면, 삼국시대 백제의 토호세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첫마을 지역에 복원된 석곽묘 등을 기준으로 할 경우 현재 행복도시 지역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미칠 만한 인물이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행복도시 개발지역에서 과거의 유물 유적이 많이 발견되는 편인가요.
"평균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문가들이 100곳을 발굴대상으로 지목하면, 그 가운데 15곳 정도에서 유적이나 유물이 나오는 게 국내의 평균적인 수준인데, 행복도시 개발지역도 그 정도거든요."

- 보통 사람들 눈에는 옛날에 사람들이 어디쯤에 살았을지 짐작하기가 참 어려운데요. 전문가들은 어떻게 찾아냅니까.
"먼저 사람이 살 만한 지형인가가 중요하고요. 오늘날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이 과거에도 선호되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전문가들만의 눈도 있습니다. 일종의 노하우인 거죠."

- 행복도시 지역은 과거 백제의 영향권 안에 주로 있었던 것 같은데요. 고구려나 신라의 유물 혹은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신라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강면에 있는 산성은 고구려 유적으로 확인됐습니다. 고구려가 옛날에 최남단으로 행복도시 일대에 까지 세력을 뻗쳤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 유물조사는 도시 조성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나요.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향후 5년, 그러니까 대략 2017년 안에는 종료될 것 같습니다."

- 도시 계획에 영향을 줄 만한, 다시 말해 그대로 보존해야 할 만한 유적 발굴은 없습니까.
"최근 복원작업이 끝난 첫마을 고분군을 제외하고는 아직 그같은 수준의 유적 발굴은 없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세종시 닷넷(sejongsee.net)에도 실렸습니다. 세종시 닷넷은 '세종 사람들'과 지역 전화번호 정보 등이 담겨진 커뮤니티 포털입니다.



태그:#세종시, #행복도시,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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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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