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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
땅에 검붉은 무엇인가가 묻어있는 게 보였다. 체리가 터져 그 즙이 자루에서 떨어지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바로 앞서 가던 꼬마의 피였다. 맨발로 하루 종일 맨땅을 뛰어다니던 꼬마의 발은 이미 까질 대로 까진 상태였다. 아직도 그 아이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많이 아팠을 텐데도 그 무거운 자루를 짊어지고 가던 그 아이가 날 향해 지어보이던 미소, 그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이었다. 미묘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마음을 후벼 팠다.(책 198쪽)


공동 저자인 유연주 바리스타가 동티모르의 커피농장에서 겪은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저자는 커피농장에서 커피를 수확하는 일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며 겪었던 경험담을 통하여 커피가 그리 문화적인 고상함을 입고 우리 앞에 서기까지 가난한 이들(특히 어린이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지난한 일정들을 소화했음을 말하고 있다.

커피의 원시사

국가대표 바리스타 안재혁 유연주의 <커피수업> 표지
 국가대표 바리스타 안재혁 유연주의 <커피수업> 표지
ⓒ 라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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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커피가 바리스타에 의해 카페아트라는 이름으로 현저하게 아름답게 치장되어 우리 앞에 놓일 때, 우리는 커피의 과거사에 대하여는 관심도 아는 것도 없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이미 경험한 커피콩 체리들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우리에게까지 온다. 이 책은 그 역사를 송두리째 일러준다.

커피는 어디서 언제 기호식품으로 마시기 시작했을까?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져봤을 법한 생각이다. 이 책은 커피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각 생산지들로의 전파 과정, 각국 커피의 색다른 맛 등을 전해주고 있다. 한국의 대표 바리스타로 우뚝 선 두 사람, 안재혁과 유연주의 바리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카페 창업 스토리,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바리스타로서 추천하는 책이나 음악 등을 진솔하게 기록해 주고 있다.

커피의 기원에 관한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에티오피아 아비니시아에 염소지기였던 칼디라는 아이가 있었다. 가뭄이 심해져 가까운 곳에 풀이 없게 되자 염소들을 먹이기 위해 마을을 한참 벗어났다. 고지대 숲을 발견하고 염소들을 그곳으로 안내했고 염소들이 배불리 먹는 걸 보고 만족했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염소들이 잔뜩 흥분한 상태가 되는 게 아닌가. 염소들이 먹은 풀들을 살펴보니 특정 나무의 열매가 섞여있었다. 그게 바로 커피콩 체리였다.

칼디도 그 나무열매를 먹어봤다. 하늘을 나는 듯 흥분되고 기분이 좋았다. 칼디는 그 열매를 이웃 수도사들에게 전했고 이때부터 수도사들에 의해 수도원에서 처음 음용이 시작되었다. 카페인 성분이 밤샘 기도를 하는 수도사들에게 각성을 주어 수행에 도움이 되면서 커피는 수도원에서 수도원으로 전달되었고 그러다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화산지형인 에티오피아는 자생 커피의 진원지이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에 대한 '분나 세레머니'라는 의식이 있을 정도다. 에티오피아는 커피나무를 기르지 않는다. 그냥 자란 나무에서 거둘 뿐이다. 에티오피아는 서쪽으론 카파, 남쪽으론 시다모, 동쪽으론 하라 종이 있고, '카페의 귀부인'이란 뜻의 '예가체프'가 있다.

커피의 전래사

에티오피아의 커피는 기어이 홍해를 건넌다. 그리고 당도한 첫 번째 땅이 예멘이다. 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로 건너 온 커피는 예멘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약용으로 쓰이다가 커피가 재배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음용하게 된다. 낙타카라반들에 의해 커피는 10세기경 세계로 퍼져나간다.

'모카커피'의 유래가 예멘이다. 예멘의 항구 알 모카가 커피의 주요 수출항이었던 게 기원인데, 이제는 그 이름의 커피만 남아있다. '모카커피'는 초콜릿향이 나는 커피로 알려져 있고 반 고흐는 '모카 마타리'를 사랑하여 커피에 관한 그림을 그릴 정도였다. 그 유명한 고흐의 그림, <아를르의 포름 광장의 카페테라스>가 그것이다.

아라비아의 커피는 네덜란드의 농장주들에 의해 인도네시아로 건너온다. 자바 섬에서 재배를 시작한 커피는 수마트라 섬의 만델링 족에게까지 퍼졌고, '인도네시아 만델링 커피'의 기원이 된다. 인도네시아에는 사향고양이가 사는데 이 고양이가 커피콩을 먹고 배설하면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코피 루왁'이 탄생한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거만한 부자 에드워드가 마시던 커피다. 웬만한 바리스타들도 맛보지 못한, 커피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번쯤은 마셔보고 싶다는 그 커피다.

나는 선교사가 들여온 '코피 루왁'을 몇 번이나 마셔봤으니 얼마나 행운인가. 지금도 입안에 번지던 알싸한 박하향을 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믹스커피는 인도네시아 산 로부스타 종으로 만들어진다.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식민지를 놓고 분쟁하고 있을 때 브라질의 팔헤타 대령이 분쟁 조정 역을 맡았다가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커피 맛을 보게 된다. 내연 관계이던 총독부인의 이별선물로 커피 씨앗을 제공받아 브라질에 심으면서 1700년대부터 브라질 커피가 본격적으로 재배된다.

커피의 정복사

브라질은 땅이 넓어 대규모로 커피를 생산했다. 커피 농장의 노동력은 아프리카에서 끌어온 노예들이 담당했다. 1550년에서 1888년까지 브라질로 팔려온 노예는 350만 명에 이른다. 이는 새로운 땅에 이주한 노예 중 1/3을 차지할 정도다. 브라질은 서반구 나라들 중에 가장 나중에야 노예제도를 폐지한 나라다. 이는 커피 농사와 무관하지 않다.

콜롬비아의 커피 역사는 스페인의 정복사이다. 금의 유혹을 따라 콜롬비아에 온 스페인 정복자들은 노예들을 시켜 금을 캐게 했다. 콜롬비아의 커피재배는 1700년대 초반 예수회 수도사들에 의해 남부지역에 소개되면서 시작된다. 1800년대 정치적 불안이 심해지면서 인디언들은 살상을 당하고 흑인 노예들이 커피농장에서 일하게 된다. 우리는 '콜롬비아 수프리모'를 마시면서 그들의 격동적인 삶을 반추할 수 있어야 한다.

코스타리카 역시 스페인의 신대륙 정복과 깊은 관련이 있다. 스페인 점령 하의 코스타리카 토착민들은 질병과 전쟁으로 죽어갔다. 이를 악물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담배농장에서 일했고, 18세기 들어 커피농장으로 일터가 바뀌었다.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커피는 코스타리카의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

마야의 후손인 과테말라 역시 코스타리카와 비슷하다. 스페인 사람들은 금이 그리 많지 않은 걸 알고 실망한다. 스페인령 수도 안티구아에서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다. 20세기 접어들어 다시 커피는 고향인 아프리카 케냐로 돌아온다. 커피가 시작된 에티오피아와는 너무 가까운 나라지만 커피는 세계 일주를 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오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커피는 '케냐AA'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계인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우리가 오늘날 여유롭고 운치 있게 마시는 커피의 역사는 커피의 본래 맛만큼이나 아리고 쓰다. 노예제도와 정복역사라는 두 기둥에 의해 버텨졌다. 커피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커피 맛이 그리 달달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한 대목을 적으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땅을 정복한 뒤 스페인 사람들은 과테말라에 금이 그리 많이 매장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흥미를 잃었다. 이후로도 그들은 계속해서 과테말라를 통치했지만 무관심할 정도로 내버려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은 스페인의 노동자가 되었고, 강제적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강요받았고, 일상다반사로 학살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믿음과 삶의 방식, 문화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책 187쪽)"

덧붙이는 글 | <커피수업> 안재혁 유연주 공저 / 라이스케이커 출판 / 2013년 초판발행 / 가격 15000원



국가대표 바리스타 안재혁, 유연주의 커피 수업

안재혁.유연주 지음, 라이스메이커(2012)


태그:#커피수업, #안재혁, #유연주,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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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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