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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해수욕장 앞에 있는 조도. 처음에는 이런 낭만적인 여행, 낭만적인 트레킹을 꿈꿨다.
▲ 속초해수욕장 속초해수욕장 앞에 있는 조도. 처음에는 이런 낭만적인 여행, 낭만적인 트레킹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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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우쭐해 있었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지난 6월 3일, 오랜만에 필자의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오름)에 게재됐던 것이다.  그 글을 작성한 필자의 의도가 표심으로 연결된 것 같아 무척 의기양양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서울시교육감선거에서 고승덕 후보가 물을 먹지 않았던가! (관련기사 : 스스로를 폭로한 루소, 딸이 폭로한 고승덕)

"푸하핫! 선거의 여왕이 있다는 데 난 이제부터 선거의 왕이다! 그럼 나도 정치컨설턴트나 해볼까?"

하지만 선거는 끝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필자도 다시 역사트레킹을 리딩해야 했다. 선거가 끝난 이틀 후인, 6월 6일에 강원도 속초에서 '속초해변길 역사트레킹'을 주최해야 했던 것이다.

<집밥> 소셜다이닝 홈페이지서 속초 해변길 트레킹 모집

속초해변길 트레킹은 <집밥>이라는 소셜다이닝 홈페이지에서 모집했다. <집밥>은 홀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1인 가족이나 자취생들을 위한 모임으로, 파편화된 도시적인 삶을 극복하고, 서로 식사를 나누며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해 보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공유기업이다. 그렇다고 <집밥>이 밥만 먹는 모임은 아니다. 자전거 타기나 버스투어, 악기 연주 같이 음식과는 상관없는 모임들도 개설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필자도 <집밥>에서 속초해변길 역사트레킹 모임을 개설했다. 모임 회비로는 1만 7천원을 책정했다. 이렇게 회비를 걸어놓아야 중구난방식의 참여를 막을 수 있을뿐더러 참가자들에게 행동식도 제공할 수 있다. 6월이었지만, 30℃에 육박하는 날씨가 많았던 터라 일찍 모집완료가 되었다. 초여름, 동해바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았다.

외옹치에서 바라본 속초해수욕장. 푸른 동해바다와 황토빛 모래사장이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 눈을 즐겁게 해준다!
▲ 속초해수욕장 외옹치에서 바라본 속초해수욕장. 푸른 동해바다와 황토빛 모래사장이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 눈을 즐겁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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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정도 참가 신청했는데, 출발 전날 그 인원에 맞춰 간식을 샀다. 장시간 트레킹에 필요한 영양바, 초코바, 영양갱, 소시지, 육포, 음료수 등을 샀다. 품목이 다양해서 그랬는지 무게도 엄청나서 비닐봉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마트에서 사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그렇게 저렴하게 샀더니 머리 한 구석에서는 이런 '창조'적인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 이렇게 구매를 해도 돈이 남네! 그러고 보니 다 지출해도 고속버스비, 저녁식사비, 담배값 정도가 더 남잖아. 야 이거 남는 장사네. 창조경제가 따로 없구나! 푸하핫~ 이거 완전 창조경제야! 창조경제!'

모임의 집결지는 속초시 동명동 시외버스터미널이었다.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나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 서울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모임으로 전락 될 수 있기에 일부러 속초시에서 직접 만나기로 했다. 이 말은 모임의 마스터인 필자를 포함한 참가자 전부가 다 다른 고속버스로 개별적으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버스로 이동을 할 때는 오직 문자나 카톡(모바일 메신저)으로만 대화가 가능할 뿐이었다. 또한 그 대화의 주관자도 리더인 필자라는 것이다. 왜? 해당 참가자들의 연락처는 모임지기인 필자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울터미널에서 강남터미널로

6월 6일, 오전 8시.

날씨는 화창했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동서울터미널이 있는 강변역으로 향하는 전철은 한산했다. 10인분에 가까운 간식과 음료를 넣은 배낭이 무겁기는 했지만 그래도 느긋하게 전철에 앉아 갈 수 있었다.

'간만에 동해바다도 보고, 돈도 벌고... 오늘 제대로 창조경제 좀 해보자고!'

필자는 전철을 타는 내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총 얼마나 이익을 보려나?

오전 9시경, 동서울터미널 매표소.

"예? 표가 없다고요?"
"지금 당장 떠나는 건 없고 2시간 정도 지난 후에 출발하는 건 있어요."
"두 시간 후면...?"
"오전 11시 차에요."
"왜 이런 거에요. 왜 이렇게 빨리 매진 됐어요?"
"오늘이 연휴잖아요. 강원도 쪽은 차들이 매진된 게 많아서 증차한 노선도 있어요. 끊으실 거에요?"
".... 그거라도 주세요."


유명한 아바이마을의 갯배. 속초해변길 트레킹에서는 갯배를 타고 이동을 한다.
▲ 갯배 유명한 아바이마을의 갯배. 속초해변길 트레킹에서는 갯배를 타고 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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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 시간은 오후 1시경이었다. 속초까지 거의 2시간 정도니 꾸역꾸역 가도 좀 늦을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모임의 주관자가 지각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2시간 동안 터미널 대합실에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차라리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10시 이전에 차만 타면 그래도 해볼 만한 '게임'이었다.

"이거 환불해주세요."
"수수료 10%가 공제되고 환불됩니다."
"......."


터미널마다 다른가? 다른 지역터미널에서는 수수료를 받지 않던데... 그래도 수수료보다는 시간 약속이 더 중요했다. 환불을 하고 그 길로 20분 거리에 있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속초까지 가는 제일 빠른 차표 하나 주세요."
"제일 빠른 게 10시 50분차인데 괜찮으세요?"
"예? 그보다 빠른 건요?"
"다 마감됐어요."


터미널에 나타난 관광버스

그냥 동서울터미널에 있을 걸 그랬다. 외형적으로는 10분을 번 것처럼 보였으나 강남보다는 동서울터미널이 더 동쪽인데다 강원도로 진입하는 길이 더 수월하기에 결과적으로 오히려 더 시간을 잃어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네. 참가자들한테 집합시간을 늦춰달라고 해야겠다. 미안하지만 말야.'

참가자들은 흔쾌히 수락해 줬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차가 많이 밀린다는 멘트를 남겼다.

'밀리면 얼마나 밀리겠어. 5일 빼면 투표일부터 8일까지 계속 연휴인데. 여행객들이 많이 분산됐겠지. 난 오늘 트레킹 리딩만 잘하면 돼!'

속초해변길의 종착지는 대포항이다. 대포항은 어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 대포항 속초해변길의 종착지는 대포항이다. 대포항은 어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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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버스 출발시각이 되자 그 마음은 우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속초 예상 도착시간이 4시간 30분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플랫폼에 서 있는 버스는 정식 고속버스가 아니라 'XX관광'이라는 로고가 선명한 일반관광버스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떠났으면 터미널에서 일반 관광버스까지 '대절'하여 승객을 실어 나르겠나!

서울을 빠져나가기 전부터 정체가 시작됐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 버스는 서울-춘천간 고속도로에서부터는 아예 도로에 멈춰 섰다. 그렇게 가다가는 오늘 내로 못 도착할 것만 같았다. 일이 완전 꼬이게 된 것이다.

6일 현충일을 맞아 속초 동명항 입구에 서 있는 '수복기념탑' 앞에서 설명하려 했던 한국전쟁과 현재의 동북아 정세는 저 멀리로 사그라지는 느낌이었다. 속초해수욕장 옆에 불쑥 튀어나온 외옹치에서 설명하려 했던 무동력선을 이용한 재래식 문어잡이 방식도 역시 저 멀리로 흩어져버리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속초해변길 역사트레킹 카톡 단체 채팅방은 무기력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말들에 휩싸인 필자는 가시 방석 위에 있는 느낌이었다. 언제 그런 무기력 말들이 칼날이 되어 필자를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작은 항구인 외옹치항.
▲ 외옹치항 작은 항구인 외옹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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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칼날이 날라 왔다. 유독 날카로운 카톡 메시지를 날렸던 참가자가 있었는데 그 분이 결국 이런 멘트를 날렸던 것이다.

"환불해줘요!"

그 분은 왜 '교통량 예측을 하지 못했냐'는 원망의 메시지도 함께 남겼다. 필자는 죄인처럼 연거푸 사과의 멘트를 날려야 했다. 교통량을 예측하지 못한 것까지도 사과해야 했다. 모바일 상이기는 했지만 태어나서 그렇게 사과를 많이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속초에 도착하니 오후 5시 30분이었다. 무려 6시간이 넘게 걸렸던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편을 알아봐야 할 처지였다. 참가자들에게 둘러싸인 필자는 청문회에 불려나온 것처럼 진땀을 흘리며 말을 이어나가야 했다. 다행인건지 아닌지, 그 날카로운 멘트를 날린 분은 미리 서울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렇게 하여 속초해변길 트레킹은 한 걸음도 제대로 떼지도 못하고 종료가 됐다. 참가자들의 원망이 섞인 환불명세서를 받아들고... 10인 분에 가까운 행동식은 현지에서 풀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울로 가져왔다. 간식들을 먹으며 계산기를 두들겼다. 참가비를 환불하고, 은행수수료를 부담하다보니 적자였다. 내 고속버스비에 저녁식사는커녕 5만 원 이상이 마이너스가 된 것이다.

'이걸 어쩌냐. 마이너스 됐어!'       

모임이 깨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이렇게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뒤로 보이는 곳이 외옹치다.
▲ 외옹치 모임이 깨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이렇게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뒤로 보이는 곳이 외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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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안녕하십니까? 역사트레킹 마스터 곽작가입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태그:#속초트레킹, #속초해변길, #창조경제, #속초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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