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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명 무용공(無智名 無勇功)'.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이다. 싸움을 잘 하는 장수일수록 그 이름이나 용맹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평소 잘 준비하고 대처해 쉽게 이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애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2009년 신한생명 당시 부회장 직을 떠나면서 직원들에게 편지를 통해 "금융인이 가져야 할 성품이 '무지명 무용공'의 마음"이라며 "조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말고, 늘 리스크에 대비해 준비하는 인재가 진정한 금융인"이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신한금융지주 회장 취임 후에도 신입 사원 연수 등을 통해 직원들에게 이 말을 자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부 평가도 '무지명 무용공'?

지난 3월 신한카드는 '완전 판매를 위한 우리의 다짐 선언식'을 통해 '완전 판매를 통한 정도 영업, 고객 정보 보호 재혁신, 건전한 소비 지원, 카드업과 연계한 '따뜻한 금융' 실천 강화 등 4가지 신뢰 회복 방향을 천명했다
 지난 3월 신한카드는 '완전 판매를 위한 우리의 다짐 선언식'을 통해 '완전 판매를 통한 정도 영업, 고객 정보 보호 재혁신, 건전한 소비 지원, 카드업과 연계한 '따뜻한 금융' 실천 강화 등 4가지 신뢰 회복 방향을 천명했다
ⓒ 신한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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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신한금융그룹 인사 평가 방식에 '무지명 무용공'이 녹아들고 있다. 최근 신한금융투자는 직원평가제도를 개편했다. 그 골자는 실적이 아니라 고객 수익률로 직원을 평가한다는 것.

"단기매매에 치중하기보다는 장기 투자 및 금융 상품 등을 중심으로 한 고객 자산 관리 강화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란 것이 그룹 측 입장이다. "아무리 실적이 좋더라도 고객에게 수익을 안겨주지 못한 직원에게는 마이스터 선정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못박고 있다.

신한은행은 영업점 평가에 소비자 보호지수를 포함시켰다. "판매직원이 상품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지,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했는지, 소비자 입장에서 적합한 상품을 안내 받았는지를 지점 KPI(핵심 성과 지표, Key Performance Indicator)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은행권 최초로 도입한 평가 방식이라고 한다.

신한생명은 고객 불만과 민원 예방을 위해 '완전 판매(고객이 계약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상태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것)'를 위한 5가지 주요 항목을 선정하여 영업 현장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불완전 판매율, 대외 민원, 해피콜 승낙률, QA 이행율, 변액보험 미스터리 쇼핑(감독 조사원이 고객으로 가장하고 해당 서비스 수준을 파악하는 행위) 등 5개 항목으로, 각 채널별로 우수지점과 하위 10% 지점을 선별 평가하는 제도라고 한다.

따뜻한 금융 조직 잇따라 선보여

신한은행은 올해 1월 금융소비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수록한 금융정보지 '신한 금융정보 가이드'를 은행권 최초로 창간했다
 신한은행은 올해 1월 금융소비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수록한 금융정보지 '신한 금융정보 가이드'를 은행권 최초로 창간했다
ⓒ 신한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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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평가 방식은 한동우 회장이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하고 있는 '따뜻한 금융론'과도 직접 맞닿아 있다. 한 회장은 "따뜻한 금융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금융의 본업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것"이라며 "'금융의 본업을 통해'는 따뜻한 금융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이며,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 조직 개편의 '화두'도 따뜻한 금융의 연장선에서 읽힌다. 지난해 7월 신한은행은 소비자 보호 센터를 소비자 보호 본부로 확대 개편하고 본부장을 신규 선임했다. 소비자 보호 및 권익 제고 활동을 강화화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올해 1월 정보보안본부를 독립적인 본부로 승격·신설한 것 역시 '따뜻한 금융'의 일환으로 소개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도 지난해 말 준법감시본부를 신설하는 한편, 소비자 보호 관련 업무를 통합 운영하던 기존 '투자자 보호 센터'를 '금융 소비자 보호센터'로 확대 개편했다. 또한 "영업 일선에서 진행되는 펀드 판매 행위에 대한 투자자 보호 강화와 금융투자 상품 불완전 판매 방지를 위한 표준투자권유준칙 준수 여부를 체크하는 미스터리 쇼핑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월 신한카드가 '완전 판매를 위한 우리의 다짐 선언식'을 통해 '완전 판매를 통한 정도 영업, 고객 정보 보호 재혁신, 건전한 소비 지원, 카드업과 연계한 '따뜻한 금융' 실천 강화 등 4가지 신뢰 회복 방향을 천명한 것이나, 약 한 달 뒤 신한생명이 '고객 정보 보호 서약식'을 실시한 것 역시 한 회장의 경영 방침에 대한 '화답'으로 볼 수 있다.

1982년 신한은행 사훈으로의 '귀환'?

1986년 3월 18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신한은행 광고. 1982년 문을 연 신한은행의 사훈은 '새롭게, 알차게, 따뜻하게'였다
 1986년 3월 18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신한은행 광고. 1982년 문을 연 신한은행의 사훈은 '새롭게, 알차게, 따뜻하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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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와 같은 움직임은 고객 정보 유출, 부당 대출, 불완전 판매 등 잇따라 발생한 금융권 사고의 '반작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신한금융그룹도 "신한금융그룹이 비록 최근 사고에서 비껴난 측면이 있긴 하나, 선도 금융그룹으로서 금융권 사고에 대해 책임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신한금융그룹이 이와 같은 '고객 중심'의 변화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시점이 금융권 사고가 터지기 이전이란 점은 그래도 주목할 만하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9월 미국 다운존스가 발표한 DJSI 월드 지수(Dow Jones Sustainability Index World )에 편입된 바 있다.

DJSI는 재무적 정보 뿐 아니라 윤리 경영, 사회 공헌도, 고객 관계 관리, 환경 성과, 이해 관계자 참여 등 다양한 가치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지수다. 이 지수에 편입된 기업은 전 세계 시가 총액 상위 2523개 사 중 333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내 금융권에서는 신한금융그룹이 유일하다.

1982년 문을 연 신한은행의 사훈은 '새롭게, 알차게, 따뜻하게'였다. '따뜻한 금융'으로의 '귀환'을 표방한 신한금융그룹, 그 결과가 소비자들에게도 '무지명 무용공'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태그:#한동우, #신한금융, #신한은행, #손자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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