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군산야구 100년사> 표지.
 군산야구 100년사 표지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요즘엔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뇐다. 활시위를 힘껏 잡아당기고 과녁에 시선을 집중하는 궁사의 심정을 헤아려보기도 한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드는 책, <군산 야구 100년사>(329쪽) 마지막 수정 시안을 인쇄소로 넘긴 11월 29일 이후부터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홀가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초조하고 불안하다.

지난 9월 말, 석수철 군산상고 감독을 끝으로 '역전의 명수'들 취재를 마치고 원고 수정·보완 작업에 들어갔다. 두 달 가까이 고치고 보완하고 또 고치고··. 출판 경험이 없는 '생초보'에 문장력이 허약해 자꾸 막히고 몸살기도 느껴졌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리가 따랐다. 감수와 윤문을 의뢰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으나 그럴 형편도 못 되었다. 

검토 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심정은 감격 그 자체였다. '나도 책을 내는구나!'하는 감탄의 소리와 함께 뿌듯함이 밀려왔다. 오·탈자를 골라내고 문장을 매끄럽게 보완하는 나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지금은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시안을 꺼내보기조차 두렵다. 화살이 시위를 떠난 상황에서 오타를 발견해도 더는 수정이 불가능해서다. 

처음부터 군산의 야구 역사를 책으로 엮으려고 시작한 게 아니었다. 메인에 배치되는 기사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어 주위에서 권유를 받아도 말 대접이려니 하고 정중히 사양해오던 터였다. 다만, 2011년 2월 '군산의 서양 의료사'를 5회에 걸쳐 올렸듯, 군산의 근현대사를 분야별로 연재하려고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었다.  

주변의 관심과 격려에 용기 얻어 책 만들기로 결정

1970년대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입장식 장면
 1970년대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입장식 장면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2011년 4월 지인들과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였다. 첫 도착지는 캄보디아 제2의 도시 시엠립(Siem Reap) 공항. 입국 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50대 여성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며 어디에서 오셨느냐고 묻는 그에게 '전북 군산'이라고 하자 "아,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잘 알죠!"라면서 친정 오빠 대하듯 반가워했다.

그는 경기도가 고향이라며 여고 시절 고교야구 '광팬'이었고, 군산상고가 게임에서 지면 밥도 안 먹고 울었다는 말도 했다. 외지인이 고향에 관심만 가져도 반가운 것은 인지상정. 여성 가이드의 군산상고 얘기는 일행 모두를 흐뭇하게 하였다. 군산의 철도와 야구를 두 번째 연재 후보로 정해놓고 고민하던 필자는 귀국해서 야구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운도 따랐다. 2013년 12월 17일 대한야구협회(KBA)가 한국의 야구 원년을 1905년에서 1904년으로 공식 발표하였고, 2014년 1월 초에는 1896년~1979년 야구사를 집대성한 <한국 야구사 연표>를 KBO와 KBA가 공동 발간했기 때문.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군산의 최초 야구인(양기준·1896~1975) 손자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색 바랜 앨범과 서랍 구석에서 잠자던 자료가 하나둘 모아졌고, 2013년 1월에는 김준환 원광대 감독을 시작으로 취재에 들어갔다. 그해 연말에는 다양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국 향토문화전자대전' 군산편에 기재할 '군산의 야구역사 100년'을 정리하였다. 취재 중 기증받은 군산상고 야구 관련 사진들은 보석처럼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에 전시회를 추진하였고 책까지 만들게 되었다.

70년 전에도 군산상고에 야구부 존재해

군산야구 100년사 사진모음
 군산야구 100년사 사진모음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군산 야구 100년사>는 옛날 신문기사 300여 개와 흑백사진 100여 장을 관련 서적을 참고하여 시대별로 수록하였다. 제1장은 일제강점기, 제2장은 1945년~1970년대, 제3장은 개발에서 소외되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던 1970~1980년대 군산 시민에게 기쁨과 희열을 맛보게 해준 '역전의 명수'들과 주변 인물들을 취재한 내용을 정리했다.

이번 책 출간은 구전으로 전해지던 군산의 야구 역사를 옛날신문과 기록물을 참고로 수정 보완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1923년 일본인에 의해 개교한 군산중학교가 학생야구 효시로 알려졌으나 1902년 서양선교사 전킨(Junkin)이 지금의 구암동산에 설립한 영명학교에서 처음 시작했고, 최초 야구인도 김판술(1909~2009) 전 보사부 장관에서 양기준씨로 바뀌었다.

군산은 1910년을 전후해 야구가 처음 보급됐고, 1923년 고국을 방문한 하와이교포 학생야구팀이 그해 6월 군산 영명학교에서 경기를 치렀다. 1927년에는 18세 이하 소년야구대회(4팀 참가)도 개최됐으며, 1935년 여름에는 동경 유학생 모국방문단 야구경기도 열렸다. 해방 후 격변기에도 군산의 야구는 활발했으며, 70여 년 전에도 군산상고에 야구부가 존재했음을 기록과 증언을 통해 알아낸 것도 큰 수확이었다.

누리꾼들의 다양한 반응, 감동 자아내

책 발간을 제의받고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독자들의 높은 관심과 주위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결단을 내렸다. '야구 100년사', 제목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힘을 북돋워 주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특히 야구관련 기사 대부분이 오름과 으뜸에 배치되고, 연재코너를 만들어보라는 <오마이뉴스> 편집부 권유는 힘이 부칠 때마다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었다.

기사 몇 꼭지는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 톱뉴스로 올랐으며 누리꾼들의 다양한 반응은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야구가 지금도 건제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고 최관수 감독 기사에 달린 100여 개 댓글 중 '프로 탄생 이전 한국 야구사의 전설이었다.' '언론 기사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려본 것도 처음이다.' '어떤 형태로든 최관수를 기리는 사업에 동참하겠다.' '지역을 떠나 흉상 제작에 보탬이 되고 싶다.' 등의 내용은 감동을 자아냈다. 

한다고 했으나 독자들의 욕구를 채우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고 미약하다. 그럼에도 인구 28만을 힘겹게 턱걸이하고 있는 지방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야구 한 종목만으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자부심을 느낀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다'는 말이 있다. 다음 세대가 군산의 체육, 군산의 야구 역사를 정리할 때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군산상고 출신 프로야구 선수와 코치, 감독, 이용일 전 KBO 총재대행을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경기도 구리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 전북 전주시, 익산시 등을 몇 차례 다녀왔다. 급할 때마다 운전대를 잡아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 <군산야구 100년사>는 군산시와 신한은행 군산지점, 재경 군산시향우회 조시영 회장의 지원금을 받아 비매품으로 발행된다.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산야구 100년사, #군산상고, #역전의 명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