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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상장사 100억대 배당부자 19명, ▲ 상장사 100대 부자 중 자수성가한 이는 25%, ▲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주식 부호 1·2위, ▲ 10대 그룹이 보유한 토지는 여의도 넓이의 62배, ▲ 미성년자 억대 부자가 269명... <재벌닷컴>이 밝힌 우리나라 재벌과 거대부자들의 2015년 3월 14일 현재상황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만 있는 기업형태가 바로 '재벌'이라는 기업그룹이다. 그간 권력과 거대기업은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때로는 소원했다가 때로는 친밀했다가를 반복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재벌의 나라, 그를 대표하는 삼성의 나라가 되었는지 아파하는 국민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원래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부의 편중은 이승만 정권의 태동과 함께 정치적 이용목적과 재벌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맞아 떨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박정희 정권도 그렇게 재벌과 공존했다. 이어지는 정권들도 엎치락뒤치락하기는 했지만 역시 거대기업과 손을 잡고 권력을 유지해 왔다.

최 부잣집은 돈만 많은 가문이 아니었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이영호 지음 / 사닥다리 펴냄 / 2015. 2 / 264쪽 / 1만3500원)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이영호 지음 / 사닥다리 펴냄 / 2015. 2 / 264쪽 / 1만3500원)
ⓒ 사닥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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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래 한민족은 경주 최 부자로 알려진 경제에 대한 올바른 식견을 갖춘 품격 있는 경제인의 나라였다. 돈의 90%를 10%의 거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웃지 못 할 기형을 최 부자 가문이 지금 살아있다면 어떻게 말할지 참 궁금하다.

이영호의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 힘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인 경주 최 부잣집에 관한 연구서이다. 철학자 이영호는 책에서 최 부잣집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최진립 장군부터 12대손 최준에 이르기까지 300년을 이어 온 최 부잣집의 경영철학과 고고한 인간 영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책에선 최 부잣집의 부의 형성과 인간사랑, 가훈과 철학이 올올히 읽힌다. 집안의 역사와 함께 독자들 앞에 선 최 부잣집의 민낯은 지금의 재벌의 형태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다소 생뚱맞기까지 하다. 동학농민혁명의 기틀인 동학사상의 교주 최재우와 최시형이 최 부잣집이 배출한 걸출한 인물들이다.

어떤 면에서 부잣집 후손들이 동학농민혁명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말하면 재벌이 재벌 개혁을 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러나 당시 최 부잣집이 어떤 부자였는지를 잘 알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마라. ▲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 며느리들은 시집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 사방 100리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는 최 부자 가문의 가훈이다. 높은 지위를 향한 욕심이 나라를 망치게 할 때가 많은데, 최 부잣집은 그것부터 한계를 정하고 있다. 돈은 아무리 가져도 끝이 없는 법인데, 최 부잣집은 만석으로 그 한계를 정하고 있다. 오늘날 재벌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문어발 경영, 부의 편법승계, 나라님보다 더 높은 재벌공화국의 회장님들은 도저히 이해 안 되는 철학이리라.

어떻게 하면 임금을 덜 줄까 생각하는 게 오늘날 대부분 기업의 고민일진대,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고 말한다. 흉년에 형편이 어려워 헐값에 땅을 팔려는 농민의 심정을 헤아려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않았다. 며느리라도 종들처럼 무명옷을 입음으로 3년간 가난한 이들의 삶을 경험하도록 하였다. 나라님도 못 구제한다는데 이웃의 구제를 100리까지 책임졌다.

철학이 있는 부는 아름답다

오늘날 재벌로 대변되는 부자를 보는 눈이 그리 곱지 않은 것은 왜일까. 정당하게 벌어 적당하게 쓰는데도 그럴까. 아니다. 정당하게 벌지도 않고, 적당하게 쓰지도 않는다. 현종 13년(1671년)에 삼남 각처에 대흉년이 들었다. 굶어죽는 사람이 도처에서 생겨났다. 이때 최 부잣집 최국선은 창고를 열어 구휼에 나섰다.

"모든 사람들이 장차 굶어죽을 형편인데 나 혼자 재물을 가지고 있어 무엇 하겠느냐. 곡간을 열어서 모든 굶는 자들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하라. 그리고 헐벗은 사람들에게는 옷을 지어 입혀 주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95쪽

경주의 사방 100리는 감포, 포항, 영천, 밀양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다. 성종 2년에 경상도에서만도 7만 4000명이 아사했다. 신료들은 타락했고 왕은 손을 못 썼다. 그러나 최 부잣집이 나서서 이웃을 구휼했다. 부의 아름다운 사용으로 경주 최 부자 가문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였다.

최 부자 가문의 인간사랑은 오늘날에 보기 드문 것이다. 빈부귀천이 또렷했던 시대에 가히 꿈도 못 꿨던 일이 최 부자 가문에서는 일상이었다. 소작농이나 종을 대할 때 사랑으로 대했다. 오늘날 기업은 노동자들의 요구가 거세면 직장폐쇄라는 칼날을 노동자들에게 들이댄다. 인간 사랑이란 눈 씻고 보려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최 부잣집은 달랐다.

"사람을 대할 때 어린아이와 같이 대하라"(동학강좌 7장)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 한다"는 성경의 내용과도 부합되는 말이다. 최 부자 가문의 최시형에 의해 주창된 동학강좌에는 어린아이뿐 아니라 부인(여자)에 대한 사랑의 배려를 말하고 있다.

최진립의 셋째 아들인 최동량은 노복들에게도 큰 애정을 가지고 대했다. 노비들에 대한 인간존중, 그 시대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최 부잣집은 그랬다. 주종관계와 남존여비가 엄연했던 시대에 최 부자 가문은 그야말로 인간 사랑이란 면에서 선각자 집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식이 못 하는 일은 노복이 해주니 아무리 신분제도가 엄연해도 '일꾼처럼 고귀한 것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친척이 없는 일꾼이 병이 들거든 집에서 보살펴 주고 각별히 증세를 유의하여 물어 고쳐주라"고 딸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경주 최 부잣집은 돈이 많아 부자가 아니다. 철학이 있어 부자다. 인간 사랑이 있어 부자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만주에서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일제와 항거할 때 최 부자 가문의 12대손 최준은 있던 돈을 몽땅 털어 독립운동 자금으로 보냈다. 12대에 걸친 300년 최 부잣집의 끝은 그렇게 장렬했다.

거의 모든 부를 10%의 부자들이 거머쥐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경주 최 부잣집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순분자로 몰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돈이라는 맘몬을 숭배하는 물신사상이 팽배하면 팽배할수록 경주 최 부잣집의 가훈과 철학이 더욱 빛난다.

나라를 위해 장렬히 부를 포기한 최 부잣집의 뒤를 혹 어떤 부자가 잇지는 않을까 기대해 보는 것은 너무 나가는 것일까. 이제 조선의 부자 말고 대한민국의 진짜 부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부의 한계를 알고 부의 아름다운 종말을 아는... 경주 최 부잣집의 정신을 가진 부자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이영호 지음 / 사닥다리 펴냄 / 2015. 2 / 264쪽 / 1만3500원)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영호 지음, 사닥다리(2015)


태그:#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 #이영호, #경주 최 부자,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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