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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바람이 부는지에 관심을 갖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최소한 연을 날리는 사람들은 늘 바람이 부는지를 확인하며 자연과 소통한다. 현대인들은 책이나 컴퓨터 화면을 보느라 늘 고개를 숙이고 생활하는데, 가슴을 펴고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연에 초점을 맞추는 연 날리기는 시력에도 좋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연을 자주 날리는 것도 아니고, 연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자꾸 연에 마음을 빼앗긴다. 중국에 오며 짐을 줄이기 위해 무게가 나가는 책의 권수를 최소화해야 했지만, 여러 책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래도 한 권 챙긴 소설책이 바로 연을 소재로 아프가니스탄 소년의 우정을 다룬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였다.

산동 웨이팡이 특별한 이유

연은 바람, 하늘을 관찰하게 하는, 자연과의 교감이다.
▲ 하늘을 배경으로 춤추는 긴 꼬리 연 연은 바람, 하늘을 관찰하게 하는, 자연과의 교감이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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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에서 린이(臨沂)라는 도시에 터를 잡고 살며 늘 연의 도시 웨이팡에 가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드디어 웨이팡에서 세계 연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개막일을 기다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웨이팡은 린이의 북쪽에 있는데, 버스는 무슨 일인지 자꾸 남쪽을 향해 달린다.

린이 시내를 1시간 반가량을 돌더니 손님을 다 태우고서야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결국 250km 거리를 5시간 반 버스에 갇혔다 내린다. 중국인들은 이런 시스템에 익숙한지 태연한데, 함께 간 한국 지인들은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 같은 비효율에 화도 나고, 어이없어 하는 표정들이다.

인구 925만 명의 웨이팡은 산둥성 면적의 10%를 차지하는, 린이 다음으로 큰 도시다. 하지만 별달리 유명할 게 없는 도시다. 물론 송대 범중엄이나 이청조 등의 문인을 배출한 곳이며, 그 문학적 후손이라 할 만한 모옌(莫言)이 2012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웨이팡의 이름을 알리긴 했다. 하지만, 그저 겨울 무 정도가 유명한, 이제 막 발전을 준비하는 2~3선 도시 정도로 인식된다. 그럼에도 내게 웨이팡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그 '연의 고향'에 연을 쫓는 아미르와 하산이 있을 것 같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연을 처음 만든 것은 춘추시대 말 묵자(墨子)라고 하는데, 나무로 3년 동안 만들었다가 하루 날리고 망가졌다(三年而成,飛一日而敗)고 한다. 장인의 신으로 추앙받는 춘추시대 노반(魯班)이 대나무와 천으로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연을 만들어, 웨이팡에는 그를 연의 신으로 모시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로 유명한 항우의 마지막 전투에서 한신은 소가죽으로 만든 연으로 신호를 보내 사방의 병사들에게 일제히 노래를 시작하도록 했다고도 한다.

한나라 때 종이가 발명되면서 우리나라 연과 같은 종이연이 만들어졌으며, 전쟁에서 거리를 측량하는 도구로 연이 자주 사용됐다. 송대의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청명상하도(清明上河图)>에 연 날리는 모습이 있는 걸로 보아, 이미 민간에 연이 널리 유행된 걸 알 수 있다. 어떤 연은 대나무 연살에 구멍을 내서 바람이 들어가 소리가 나도록 했는데, 이를 풍쟁(風箏)이라 하고, 소리가 나지 않는 지연(紙鳶)과 구분했다.

14세기에 하늘을 나는 장난감은 실크로드를 타고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미국국가박물관은 중국의 연을 인류 최초의 비행체로, 영국박물관은 중국의 다섯 번째 발명품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연들이 있었구나

연날리가 열리는 웨이팡 부연산 입구, 많은 노점상들이 어지럽게 들어서 있다.
▲ 부연산 연날리가 열리는 웨이팡 부연산 입구, 많은 노점상들이 어지럽게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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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팡에서 근무하는 선생님의 안내로 시내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바로 연 축제가 열리는 부연산(浮煙山)으로 향했다. 명나라 때부터 연 공예로 이름을 날렸던 웨이팡은 세계 연의 고향으로 불리며, 매년 4월의 세 번째 토요일에 세계 연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1984년 시작돼 올해로 32년째를 맞는 전통 있는 지방 축제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 기간에 국제연연합회 주최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20여 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세계 연날리기 대회도 동시에 개최된다. 2015년 대회의 주제는 '4월의 바람-계승, 포용, 창신(四月的風-傳乘, 包容, 創新)'이라고 한다.

만개한 개나리, 벚꽃, 라일락이 반겨주는 행사장 진입로를 들어서자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어지럽게 늘어서 있다. 오랜 역사에 비해 부대시설에 대한 정리와 운영이 미흡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자칫 연만 하늘에 미끼처럼 띄워놓고 장사나 하려는 상술로 비춰질 정도로 온갖 노점상이 행사장 주변을 점령한 모습이 다소 볼썽사납다. 부연산 패방을 지나 행사장이 가까워질수록 하늘에 뜬 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하늘을 바다 삼아 연들이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 하늘을 수놓은 연들 하늘을 바다 삼아 연들이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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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날려하는 연이다.
▲ 기구처럼 커다란 연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날려하는 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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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자재로 편대비행, 이착륙을 선보인다.
▲ 드론처럼 나는 연 자유자재로 편대비행, 이착륙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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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바다 삼아 헤엄치는 긴 꼬리의 문어, 가오리, 물고기연에서부터 여러 개의 동물 형상을 줄줄이 매달아 날리는 연, 여러 명이 동시에 줄을 잡고 날려야 하는 거대한 기구처럼 커다란 연까지 각양각색의 연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개막식이 막 끝나고 대회에 참가한 각국의 대표들이 워밍업 차원에서 연을 날리고 있는데, 전투기 편대처럼 8개의 연이 동시에 소리를 내며 드론처럼 자유자재로 하늘을 비행하는 연이 단연 압권이다.

4명이 양손에 얼레를 잡고 연을 날리는데 마치 리모콘으로 조정하는 것처럼 제비 모양의 연은 공중회전, 편대비행, 이착륙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한다. 또 한 서양 외국인이 혼자서 두 개의 연을 조정하는데,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똑같은 동작으로 음악에 맞춰 허공에서 연춤을 추게 하는 모습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하늘에 닿고 싶은 인간의 소망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멋진 연 공연을 하늘에 펼쳐 놓는다.
▲ 하늘을 헤엄치는 물고기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멋진 연 공연을 하늘에 펼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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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무대에 공연을 펼치는 참가자에 관객들이 많은 박수를 보내준다.
▲ 두 손으로 연을 조작하는 참가자 하늘 무대에 공연을 펼치는 참가자에 관객들이 많은 박수를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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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이 넓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연을 날리다 보니 줄이 엉키는 일도 많지만, 서로 웃으며 줄을 풀고 다시 날리는 모습이다. 근처에 연 파는 곳에 가서 우리 돈 1만5000원 정도 주고 꽤 큰 물고기연과 얼레를 사서 날려보니 부연산 언덕 바람을 타고 연은 아주 빨리 높은 곳까지 날아오른다.

줄이 엉킬 것이 걱정이긴 하지만 줄에 전해지는 바람의 무게를 감당하며 연과 교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낚시가방처럼 몇 개의 연을 준비해서 날리든 연 애호가들도 있지만, 현장에서 연을 사서 아이들과 체험해보는 관광객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연을 날리며 소원을 담아 줄을 끊어 날려 보내고, 그 이후에 연을 날리면 상놈이라고 했다는데, 중국은 일상 레저스포츠와 취미생활로 자리를 잡아 사시사철 공원에서 연을 날리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베이징 톈탄(天壇) 공원에서 연을 날리던 한 할아버지는 연은 그 자체로 공예예술품이면서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순간 과학의 원리에 의해 인간이 하늘에 닿고 싶은 소망을 실현해주는 매개체가 된다고 말했었다.

부연산 바람에 연을 날려본다.
▲ 손에 전해지는 바람의 무게감 부연산 바람에 연을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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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에 개막해 26일까지 이어진 2015 세계 연날리기 대회에서는 연싸움 부문에서 방글라데시팀이 우승하고, 전통, 창신, 용, 길이 등의 다양한 부문에서 각각 수상자가 가려졌다. 올해는 특히 연 길이 부문에서 6100m 기네스 기록으로 우승한 연이 나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 참가자는 싸이의 말춤을 연으로 구현해 많은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전통은 그것을 발판 삼아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웨이팡이라는 도시는 '연'이라는 전통을 통해 세계와 인연을 맺고 소통을 시도한다. 잠시 둘러본 웨이팡의 화려한 도심 야경은 소리를 내며 허공을 드론처럼 자유자재로 비행하던 연을 떠오르게 한다. 낡은 전통이지만 잘 계승해 발전시키면 얼마든지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연을 비상하게 하는 4월의 바람이 발전을 꿈꾸는 웨이팡에도 넉넉히 불어오길 바란다.

전통을 발판삼아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웨이팡의 모습이다.
▲ 웨이팡 시내의 야경 전통을 발판삼아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웨이팡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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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웨이팡,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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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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