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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도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다. 게다가 엘승타사르하이(элсэн тасархай) 주변의 사막은 어떠한 움직임도 주저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낙타를 태워준 낙타 주인의 게르(Ger)를 방문하여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실제로 몽골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게르의 내부는 아주 넓었다.
▲ 유목민 게르 실제로 몽골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게르의 내부는 아주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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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 함께 게르 안으로 들어섰다. 몽골의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게르는 여행자용의 작은 게르와 달리 내부가 제법 넓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작아 보이는 게르 안은 상상외로 넓었다. 한여름이지만 게르 내부는 전혀 덥지 않았다. 게르 입구의 반대편에는 가족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함께 부처님을 모신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유목민 한 가정의 일상이 담긴 포근한 집이었다.

게르 주인아저씨의 환대

부처님을 모시는 제단과 함께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있다.
▲ 게르의 제단. 부처님을 모시는 제단과 함께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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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게르 입구의 왼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게르의 주인아저씨는 나에게 환영의 표시로 코담배 병인 호륵(khuurug)을 건넨다. 이 코담배는 게르의 주인이 먼 길을 온 손님에게 인사로 건네는 반가움의 표시이다. 나는 코담배를 공손하게 받아서 향을 맡은 후 뚜껑을 연 채로 그에게 돌려주었다. 뚜껑을 닫은 채로 돌려주면 예의가 아니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코담배에서는 은은한 향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코담배의 향이 아주 좋다고 이야기하였다.

향을 맡은 후 뚜껑을 닫지 않고 돌려주는 것이 몽골의 예절이다.
▲ 코담배. 향을 맡은 후 뚜껑을 닫지 않고 돌려주는 것이 몽골의 예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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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의 안주인이 보온병에 담겨있던 수테차(Сүүтэй цай)를 정성스럽게 담아서 내어온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멀리서 온 손님들을 아주 극진히 대한다고 들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넓은 초원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 곳이라서 일단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 때문일 것이다.

몽골에서는 전통적으로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따뜻한 수테차를 내오는 관습이 있다. 우유를 주로 하여, 차(茶), 소금, 물을 섞어 끓인 수테차는 티벳에서 전래되었지만 지금은 몽골의 전통 차가 됐다. 곡물이 부족한 몽골에서 수테차에 섞인 차는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 되어왔을 것이다. 몽골의 게르마다 맛이 다르다는 수테차를 나는 감사하게 받았다. 수테차도 일종의 밀크티인데 맛은 한국에서 먹는 밀크티에 비해 상당히 심심했다.

이 집 안주인이 나의 아내에게도 자연스럽게 수테차를 권하는데 그만 아내가 수테차를 먹지 않겠다고 해버렸다. 몽골 게르에서는 안주인이 내주는 수테차를 거부하면 실례인데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한 아내가 마시지 않겠다고 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집 안주인이 무안하지 않도록 아내 대신 수테차를 한 잔 더 받아서 열심히 마셨다. 처음에는 무슨 맛인가 싶던 수테차도 자꾸 먹으니 특유의 달라붙는 매력적인 맛이 느껴진다.

으름, 타락, 아롤 등 맛있는 유제품이 한가득

우유를 계속 끓이자 윗부분이 노랗게 엉겨 붙는다.
▲ 우유 끓이기. 우유를 계속 끓이자 윗부분이 노랗게 엉겨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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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의 난로 위에서는 노란 우유가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우유를 진하게 끓이자 우유의 윗부분이 노랗게 엉겨 붙는다. 그러자 안주인이 우유 윗부분에 뜬 기름 부분을 떠내서 응고를 시킨다. 이렇게 응고된 덩어리에서 물기를 뺀 후에 뭉쳐서 만든 음식을 내어놓는데 이것이 바로 '으름(Urum)'이다. 일종의 버터인 으름에서는 원초적인 비릿한 우유 맛이 난다. 원래 버터를 좋아하는 나는 싱싱한 버터, 으름을 빵에 바르지 않고 으름 맛 그대로 양껏 먹었다.

우유를 끓여서 응고시킨 몽골식 버터인 으름에서는 초원의 풍미가 있다.
▲ 으름. 우유를 끓여서 응고시킨 몽골식 버터인 으름에서는 초원의 풍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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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은 손님이 오면 간식용으로 내오는 음식인데 오늘 나와 아내가 낙타를 타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몽골의 여인네들이 만드는 으름은 가축의 오줌보나 가죽 주머니에 담겨서 보관되는데, 지금 이 으름은 바로 눈앞에서 끓인 우유에서 나온 으름이니 맛이 더할 나위 없이 싱싱하다. 보기에 허름해 보이는 으름이지만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예쁘게 장식만 한다면 최고의 인기를 끌 것 같은 건강식이다.

게르의 주인은 오랜만에 온 낙타타기 손님을 제대로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번에는 몽골 사람들이 즐겨 먹는, 우유로 만든 몽골의 떠먹는 요구르트, 타락(тараг)이 그릇에 가득 담겨 나왔다. 울란바토르 같은 도시에서는 타락에 과일 등의 첨가물을 넣어서 맛있게 만들어 먹지만 이런 초원지대에서는 여러 가축의 젖을 이용하여 (첨가물을 넣지 않고)직접 타락을 만들어 먹는다.

몽골식 떠먹는 요구르트인 타락에서는 강한 신맛이 난다.
▲ 타락 떠먹기. 몽골식 떠먹는 요구르트인 타락에서는 강한 신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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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르 안에는 안주인이 직접 만든 타락이 큰 솥에 가득 담겨 있다. 달달한 요구르트만 많이 먹어본 나는 타락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하며 타락 한 숟가락을 입속에 넣어보았다. 입속에서는 강한 신맛과 함께 신선한 요구르트의 향미가 가득해졌다. 단맛 나는 감미료가 없어서 신맛이 강하지만 그 신맛이 오히려 더 건강한 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몽골의 초원지대에서는 타락을 먹을 때 설탕을 듬뿍 뿌려서 먹기도 한다는데 이 집 안주인은 순박하게도 전혀 단맛을 첨가하지 않았다.  

몽골의 유목민들이 타락을 만들어 먹는 것은 오랜 시간 동안 몽골 초원지대에서 살아가면서 축적된 삶의 지혜이다. 한 유목민 가정의 여러 가축에서 모은 젖들은 한 가정이 하루에 다 마시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다. 그런데 가축의 젖은 상온에서 그대로 보관하면 이틀만 지나도 상해 버리기 때문에 소독을 위해서 젖을 끓인 후 보관을 시작한다. 이렇게 타락으로 발효를 시키면 일주일 정도 보관하면서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유제품들은 몽골인들이 초원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기본 식품이다. 그리고 채소는 거의 먹지 않고 육식을 주로 하는 몽골인들이 건강하게 사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유제품 덕분이다.

말젖을 햇볕에 말린 아롤은 겨울철에 유용한 영양 간식이다.
▲ 아롤. 말젖을 햇볕에 말린 아롤은 겨울철에 유용한 영양 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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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가득 담긴, 캐러멜같이 생긴 유제품은 '아롤(Aaruul)'이다. 아롤은 말에게서 짠 끈적한 말젖을 말려서 단단한 치즈처럼 만든 유제품이다. 이 몽골 전통의 유제품은 말젖 덩어리를 깍두기 썰 듯이 잘라서 햇볕에 말린 것이다. 이 아롤은 여름에 비축하여 말젖이 적게 나오는 겨울철에 유목민의 영양 간식으로 애용되고 있다. 내가 방문한 유목민의 게르 지붕에서도 한여름의 태양에 아롤을 널어서 말리고 있다.

아롤을 입속에 넣어보니 아주 딱딱해서 한 번에 깨물어먹기는 어렵다. 나는 아롤을 입안에 넣고 녹이다가 깨물어 먹었다. 단맛 없는 담백한 맛이었지만 말젖으로 만든 유제품이라서 부드럽고 풍미가 풍성하다. 몽골 친구에게 물어보니 딱딱한 아롤은 자꾸 씹어 먹으면 이가 튼튼해지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도 자주 먹인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껌처럼 씹으면서 이도 관리하고 동시에 영양 식품을 섭취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간식도 없을 것이다.      

집 안에 복을 불러오는 악기

몽골의 대표적인 현악기인 마두금을 게르에 걸어두면 복이 온다고 한다.
▲ 마두금. 몽골의 대표적인 현악기인 마두금을 게르에 걸어두면 복이 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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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며 게르 내부를 둘러보는데 신기하게도 마두금(馬頭琴)을 게르의 천장에 푸른 천으로 묶어 걸어 놓았다. 몽골어로 '모린호르(Morin Khuur)'라고 부르는 마두금은 몽골의 대표적인 현악기이다. 마두금은 이름과 같이 현이 걸려있는 악기의 위쪽이 말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말을 사랑하는 말의 나라 몽골에서는 악기도 말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현은 두 줄밖에 되지 않는다. 어떻게 두 줄만 가지고 그 오묘한 소리를 내는지 신기할 뿐이다. 왜 마두금을 게르 천장 위에 걸어 두었느냐고 집주인에게 물으니, 몽골 사람들은 마두금을 게르에 걸어두면 집 안에 복이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험한 자연환경과 싸워야 하는 몽골인들의 샤머니즘은 이 마두금에도 연결되어 있다.

게르 바깥 날씨는 너무 더워서 나와 아내는 유목민의 게르 안에서 염치없이 계속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게르의 안주인과 딸은 무료한지 놀이기구를 가져왔다. 우리에게 자신들의 놀이문화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 이 집 딸이 게르의 양탄자 위에 동글동글하게 생긴 가축의 발목뼈인 샤가이(ШАГАЙ)를 늘어놓는다. 양의 뼈로 하는 공기놀이인 샤가이 놀이를 하려는 것이다.

'양뼈 놀이', 몽골에 대한 편견 깨줘

몽골의 공기놀이인 샤가이는 같은 모양의 샤가이를 튕겨서 맞추는 놀이이다.
▲ 샤가이. 몽골의 공기놀이인 샤가이는 같은 모양의 샤가이를 튕겨서 맞추는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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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샤가이에는 여러 명이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양, 말, 소, 낙타의 발목뼈가 함께 있다. 자세히 보니 놀이하는 방법은 우리나라 공기놀이와 조금 다르다. 가운데 모아 놓은 뼈 중에서 같은 모양의 샤가이를 튕겨서 맞추는데 다른 샤가이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다른 사람에게 놀이 순서가 돌아간다. 가장 많은 뼈를 획득하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이다. 이 샤가이로 윷놀이를 하기도 하고 점을 보기도 한다. 딸이 엄마에게 뼈를 더 많이 땄다고 자랑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져주는 것은 몽골이나 우리나라나 다를 바가 없다.

이 놀이문화는 혹독한 겨울밤에 게르 안에 오순도순 모인 한 가족이 즐기기 시작하면서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나 어릴 적 인기가 많았던 우리나라의 공기놀이도 원래는 몽골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나도 초등학교 다닐 때 여자 친구들과 함께했던 공기놀이 실력을 보여주었다. 신기하게도 수십 년이 지났지만 내 몸이 공기놀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공기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공기놀이를 좋아하는 이 집 딸은 외국에서 온 어른 남자가 공기놀이를 하는 것을 너무 신기해했다.

이 게르의 주인은 오랜만에 자신들의 게르를 찾아온 한국인을 굉장히 환대했다. 게르 주인은 몽골의 또 다른 전통 놀이를 보여주려고 양의 뼈를 가지고 열심히 놀이기구를 만들고 있다. 그는 양의 정강이뼈 양쪽 끝에 실을 통과시킬 구멍을 파기 위해 낑낑댔다. 구멍을 뚫는 데에 시간이 한참 걸렸지만, 날씨도 덥고 해서 밖에 나가지 않고 그의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그는 한참 만에 정강이뼈 양쪽 끝에 양의 복사뼈 2개를 실로 매다는 데에 성공했다.

양의 정강이뼈와 복사뼈를 가지고 노는 이 놀이로 집안의 총명함을 알 수 있다.
▲ 양 뼈 놀이 양의 정강이뼈와 복사뼈를 가지고 노는 이 놀이로 집안의 총명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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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어보니, 한쪽 끝에 있는 복사뼈를 여러 갈래의 실 가닥을 통과시켜 반대쪽으로 보내는 놀이라고 했다. 몽골 친구가 이 놀이에 대해서 아주 흥미 있는 이야기를 했다.

"몽골의 여자들은 시집을 갈 때 이 양 정강이뼈 놀이기구를 시댁의 시누이에게 건네서 해보라고 하지요. 시누이가 이 놀이를 한 번에 성공하면 시집 식구들이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고 판단했지요. 시집 사람들의 머리를 테스트하는 데에도 쓰였던 놀이에요."

이 양뼈를 갑자기 나에게 건네는데, 나는 워낙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손재주 좋은 아내에게 한번 해보라고 바로 넘겨주었다. 이 '양뼈 놀이'를 잘해야 머리가 좋은 총명한 집안이라고 하니 슬쩍 자존심도 걸린 일이 되어 버렸다. 손재주가 아주 좋은 아내도 처음에는 한참 고민을 한다. 게르 주인이 보고 있다가 실 한 가닥 통과시키는 것을 도와준다. 다행히 아내는 실 여러 가닥을 헤치고 복사뼈를 반대쪽으로 보내는 데에 성공했다. 갑자기 시작된 긴장감 있는 놀이를 아내의 도움으로 무사히 통과하였다.

나는 얼굴이 검게 그을린 투박한 몽골 아저씨가 보기와는 다르게 놀이를 하는 머리가 비상한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몽골의 유목생활이 아주 단순한 생활이고 몽골인들의 문화도 다양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손으로 하는 몽골의 놀이도 몽골 유목민들의 머리 개발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척박한 자연환경에 맞서서 살아온 몽골인들은 나름의 음식 문화와 놀이문화를 발전시켜오면서 풍성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경험하지 않고 그 나라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는 것은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번 몽골 여행에서도 나는 다시 한 번 느꼈다. 실제로 한 나라에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나의 지식의 한계와 편견을 절감하게 된다. 이러한 지식의 한계는 미지의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언제나 매력적으로 느끼게 한다. 나의 몽골여행의 앞길에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00 편이 있습니다.



태그:#몽골, #몽골여행, #엘승타사르하이, #게르,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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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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