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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낮 시가현 미나미구사츠 역 부근에 있는 마을을 지나가다 멋진 글과 감을 발견했습니다. 집 앞에 있는 감나무 아래 놓인 감이 담긴 그릇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감이지만 누구나 먹고 싶은 사람은 가져가도 좋습니다. 이제 조금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감과 글이 놓인 그릇과 감이 열린 감나무입니다.
 감과 글이 놓인 그릇과 감이 열린 감나무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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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과 감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가방에 담아왔습니다. 집에서 와서 보니 단감이었는데 개수가 70개가 넘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베풀고 싶어도 집안이 가난하면 줄 수 없습니다.

요즘 일본 시골도 나이 드신 노인들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감나무 주인도 역시 나이 드신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냥 감나무에 남겨놓기는 아까운 감을 기꺼이 따서 글과 함께 집 앞에 놓아두신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도 겉으로 풍요로워 보이고 소비가 중심인 것처럼 보여도 나이 드신 70대 노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요즘 젊은이를 원망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은 전쟁과 어려운 때를 지나 지금 살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물건 귀한 줄 모르고 남기고, 버리는 일에 익숙해 있다고 합니다.

집 안에 높인 감 역시 70대 어르신이 주위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가져가라고 하는 자신의 한탄이 담긴 감이었을 것입니다. 감나무에 열린 감은 가지를 잘라서 따주어야 다음 해에도 감이 잘 열립니다. 감나무는 꼭 그해 새로 난 가지에서만 꽃이 피고 감이 열립니다.

그냥 감나무에 열린 감을 그냥 놓아두면 날짐승의 밥이 되고 가지만 무성해집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나이 드신 감나무 주인이 기꺼이 감나무에 올라서 수고롭게 감을 따서 글과 함께 집 앞에 둔 것입니다.  

산밤에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왼쪽이 재배하는 밤나무 잎이고 오른쪽이 산밤나무 잎입니다. 모두 비슷합니다. 입맥 가장자리에 가시가 나있습니다.
 왼쪽이 재배하는 밤나무 잎이고 오른쪽이 산밤나무 잎입니다. 모두 비슷합니다. 입맥 가장자리에 가시가 나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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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현에는 산 속에 야생 산밤나무도 많습니다. 가을철 멧돼지, 곰, 노루 따위 산짐승들의  먹이입니다. 9월 말부터 학교 교정 안 작은 산기슭에서 산밤을 주웠습니다. 원래 산짐승 먹이지만 학교 안에 산짐승이 들어오지 못하고 쓰레기로 버려지는지 줍기로 했습니다.

산밤은 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밤이어서 껍데기를 까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단맛은 큰 밤에 지지 않을 만큼 달았습니다. 이 때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땅에 떨어진 산밤을 거의 5 킬로그램 이상 주워서 껍질을 깠지만 그 가운데 벌레에 먹은 것이나 상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야생의 힘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산에서 저절로 자란 밤은 자연 속에서 병이나 벌레를 이겨내고, 적응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인간은 경제적인 생각으로 야생에서 얻은 씨를 바탕으로 크고, 맛있고, 잘 자라는 방향으로 품종 개량을 지속해 왔습니다.

           왼쪽이 재배하는 밤나무 줄기이고 오른쪽이 산밤나무 줄기입니다. 밤나무 줄기는 나이가 들수록 갈라집니다.
 왼쪽이 재배하는 밤나무 줄기이고 오른쪽이 산밤나무 줄기입니다. 밤나무 줄기는 나이가 들수록 갈라집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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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재배한 밤은 인간의 뜻대로 크고 맛있고 잘 자라고 큼직합니다. 그렇지만 껍질을 까보면 벌레 먹은 것도 있고, 썩은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이 추구해온 경제적인 생각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시가현은 비록 간사이의 오사카나 교토보다 해발고도(비와코 호수 평균 수면, 해발 85 미터)는 높지만 따뜻하여 과일 농사가 잘 되는 곳입니다. 감이나 산밤뿐만 아니라 감귤이나 비와 따위 과일도 많이 자랍니다. 그렇지만 이런 과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시가현 산에서 주운 산밤과 지금 나는 모과와 감귤입니다. 산밤은 12 cm 길이에 줄지어 놓은 것입니다.
 시가현 산에서 주운 산밤과 지금 나는 모과와 감귤입니다. 산밤은 12 cm 길이에 줄지어 놓은 것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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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정재민 외, 한국의 민속식물-전통지식과 이용, 국립수목원, 201.12
김종원, 한국 식물 생태 보감 1 -주변에서 늘 만나는 식물, 자연과생태, 2013.12.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태그:#시가현, #산밤, #감나무, #모과,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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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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