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77년 명동이 국내 최초의 '차없는 거리'로 지정된 후, 역대 서울시장들은 보행자를 중심으로 한 거리를 만드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이와 같은 노력은 1995년 조순 당시 서울시장이 국내 첫 보행자 전담부서인 '녹색 교통계'를 조직한 것을 기점으로, 현재의 '보행친화도시'까지 이어졌다.

보행공간의 확대는 우리의 생활 여러분야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시민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을 확충한다는 의미를 넘어, 자가용에서 대중교통과 보행을 선호하는 도시로의 변화를 뜻한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편중된 부가 공유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가용과 대중교통이라는 사회의 계급은 '길의 불평등'을 초래했다. 걷는 권리가 보장되는 정책들은 '길의 불평등'을 해결해 대중중심의 평등, '일상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가치있는 공공정책으로 볼 수 있다.

걷는다는 행위는 감성이다. 빠름이라는 현대의 차가운 감성에서 벗어난 느림이라는 일상의 미학.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89~)는 "자본주의와 느림은 상극"이라고 그의 소설 <느림>에서 이야기했다.

자본은 언제나 속도를 동경한다. 빠르고 효율적인 생산체계와 소비, 그 안에서 자본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하지만 속도의 증가를 강요받는 대상은 언제나 삶의 거친 호흡을 내쉬는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다. 속도는 확장을 강요하지만 그 성급함에 뒤쳐진 사람들은 언제나 거친 호흡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왔다. 그리고 속도만이 미덕인 것처럼 포장된 현대는 계속해서 또 다른 소모품을 양산해낸다. 빠른 속도에 발맞추는 계급은 살아남지만 맞추지 못한 계급은 도태되어 갔다. 빠름을 강요하지 않는 걸음은 평등이다. 걸음은 모든 이의 감성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안다. 이것이 보행공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정책인가를 이야기한다.

현대사회 속, 숨쉴 틈 없는 일상에서의 피로와 이를 해결하려는 정책의 보급으로 보행공간의 중요성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일상의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걸음, 그 걸음을 보장하는 보행공간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생활에는 걸음이라는 키워드가 낭만의 키워드로 자리잡게 된다. 잔인한 현실의 비극속에서 '걷는다'라는 행위는 그 자체로 일상과의 단절과 휴식을 의미한다. 일상에서의 작은 걸음은 이제 사회변혁의 큰 걸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걸음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보행공간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한다. 이런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한다면 보행의 자유는 우리의 삶의 질을 더욱 높일 것이다.

보행공간은 차량과의 단절을 통해 보행을 중심 역할로 수행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이런 공간에서 차량의 진입을 통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차량과 보행의 혼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그만큼 보행자 중심의 쾌적한 보행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안전이 최우선조건임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국가정책을 중심으로 보행공간이 증가하자  발생가능한 사고의 종류도 증가하는 추세로, 이를 예방하는 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14년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판교테크노밸리에서는 공연을 관람하려는 사람들이 올라가 있던 지하주차장 환풍구덮개가 무너져, 인명사고로 연결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전 국민이 애도한 당시의 사고는, 안전이 미흡하게 고려된 시설물의 설치가 그 원인 중 하나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사고 이후에도 많은 보행공간에는 사고현장과 비슷한 구조와 설치위치의 환풍구가 산재해 있다. 이것은 잠재적 위험요인을 거리가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행공간 내에는 수많은 위험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거리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환풍구부터 차량의 영역침범으로 인한 교통사고, 보행공간과 공원 내에서의 각종 범죄 등 수많은 잠재적 사고요인들이 보행공간에는 존재한다.

느림을 통한 현실 속 판타지를 꿈꾸게 하는 낭만 있는 보행공간의 실상은 안전을 위협하는 수많은 존재들로 가득 차 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보행공간이 확대되며 진행된, 타 시설과의 공간공유, 혹은 다양한 위험을 고려하지 않은 시설의 난립이 원인으로 작용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안전시설의 미흡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진정한 보행자유를 위한 공간확대를 위해서는 이러한 위험요소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은 구조적 문제뿐만이 아니라, 공간을 사용하는 보행자가 직관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거나, 위험을 가하려는 원인 자체를 차단하는 안전디자인의 적용으로 최소화할 수 있다. 과거 각 지자체에서 실행한 공공디자인가이드라인에는 미흡하지만 안전에 관한 부분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통합적 시각을 도시의 미관개선 중심으로 마련된 가이드라인의 기본지침에, 디자인을 통한 안전정보의 전달은 우선순위에서 약간은 벗어나 있는 듯하다. 모든 분야에서의 안전은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될 수 없다. 특히 불특정다수가 불특정위험요소에 노출되어 이용하는 보행공간에서의 안전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보행공간에서 안전디자인시설의 보급은 시급하다.

1977년부터 시작된 보행자중심의 거리는 역사가 오래된 듯하지만, 보행공간에서의 진정한 평등과 보행자유를 찾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이제 사용자 중심에서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정책과 안전디자인의 동행으로 보행공간의 안전효과를 더욱 강화할 때가 왔다. 보행공간의 정비는 보행자의 자유권을 보장한다. 안전을 보장한 공간을 보행자에게 선물하는 것은, 느림을 통해 우리 생활 전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진정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태그:#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붕괴사고, #보행안전, #안전디자인, #걷고싶은거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