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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몸이 고단하거나 힘들어도 야무지게 견디곤 합니다. 아이도 몸이 고단하거나 힘들 적에 씩씩하게 버티곤 해요. 그런데 어른은 고단한 티나 힘든 낌새가 거의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기도 하지만, 아이는 고단한 티나 힘든 낌새를 잘 감추지 못합니다.

어른이면서 고단한 티나 힘든 낌새를 쉬 드러내는 사람을 보고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도 말하지만, 속마음을 가리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마음이란 무척 홀가분하면서 사랑스럽구나 하고 느껴요. 왜냐하면, 고단할 적에 고단하다고 밝혀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더 빨리 생각할 수 있습니다. 힘들 적에 힘들다고 밝혀야 얼른 손을 내밀어 도울 수 있어요.

아이들은 밥이 맛이 없으면 맛없다면서 고개를 돌리거나 수저를 내려놓지요. 어른들은 밥이 맛이 없어도 끝까지 먹곤 하지요. 아이들처럼 밥이 맛이 없다고 할 적에 곧 티를 내면, '어디에서 뭘 잘못해서 이렇게 맛이 없을까' 하고 돌아볼 만합니다. 어른들처럼 밥이 맛이 없어도 제대로 티를 내지 않으면 '맛이 없게 지은 밥'을 못 깨닫고 지나가 버릴 수 있어요.

"우와우와거리지 말고, 키에 너도 쫄지 말고 한번 노려 봐." "네? 아뇨, 그 정도 스펙이면 저랑은 다른 세계 사람인 걸요. 현실감이 안 들어요." (9쪽)

"히라노 씨, 괜찮으면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 안 할래요?" "네에에? 어, 어째서요?" "아니, 어째서긴요. 같이 먹고 싶으니까 그렇죠." (22쪽)

1권 겉그림
 1권 겉그림
ⓒ 삼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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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모토 코즈에코 님이 빚은 만화책 <코우다이 家 사람들>(삼양출판사,2015)은 '다른 사람 마음속을 읽는 힘'이 있는 '코우다이 집안 사람들'을 다룹니다.

마음 속을 읽는다니, 어느 모로 보면 대단한 사람들일 수 있으나, 다르게 보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며 지내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겉과 속으로 다른 마음과 몸짓이 되어 마주하는 모습을 늘 지켜보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네 마음을 읽고 싶지 않으나 네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가 늘 들리'기 때문에 '듣고 싶지 않아도 마음 소리를 듣는' 삶입니다.

'코우다이 씨는, 의외지만, 내가 지어낸 공상과도 같은 황당무계한 스토리를 좋아한다. 나는 웃거나 센스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목소리로 맞장구치는 것밖에 못 하지만.' (25쪽)

"근데, 그런 능력이 있다면, 불행하겠지." "응? 어째서? 엄청 편할 것 같은데." "타인의 속마음은 모르는 편이 낫지. 상대방의 안 좋은 점을 알게 돼 상처 받거나 실망할 일도 많이 생길 것 아냐." (27쪽)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읽으면 나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기에 다른 사람하고 한결 사이좋게 지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를 알기에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괴롭히거나 홀리는 짓을 할까요.

우리는 입으로 말을 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데, 입으로 하는 말에 속마음을 안 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과 마음이 달라요. 겉으로는 다른 사람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듯 말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사람을 안 아끼거나 안 사랑하기도 해요.

앞에서는 번드르르하게 말하지만, 뒤에서는 아주 사람을 괴롭히는 짓을 벌이기도 해요. 사람들 앞에서는 이렇게 하겠노라 다짐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물러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기도 해요.

겉으로나 속으로나 한결같이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지요. 남을 속일 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마음을 감추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남을 속일 줄 모르기에 남한테서 자꾸 속는 사람도 있고, 남을 속일 줄 모르기에 언제나 착하면서 참다운 살림을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치만, 코우다이 씨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전해진다면 좋을지도. 난 하고 싶은 말을 좀처럼 입 밖으로 못 뱉으니까. '좋아해'라는 말은 앞으로 몇 년이 지나도 못 할 것 같지만, 머릿속에서라면 큰소리로 외칠 수 있어.' (29쪽)

'그렇다면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난 연애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거야? 타인의 속마음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정작 나 자신의 속마음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 (51쪽)

만화책 <코우다이 家 사람들>에 나오는 코우다이 집안 세 남매는 할머니한테서 '마음 읽는 힘'을 물려받았습니다. 세 남매는 말없이 둘러앉아도 서로서로 어떤 마음인가를 훤히 압니다. 그래서 세 남매는 제 마음을 알려주기 싫어서 깊이 감추려 하지만, 세 남매 사이에서는 도무지 감추지 못해요. 감추려고 해도 훤히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세 남매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 말이 않는 사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작 마음 속으로는 어마어마하게 수다를 떨지요. 왜 내 마음을 읽느냐는 둥, 네 마음이 왜 그러느냐는 둥, 하면서 신나게 수다를 떨어요. 겉으로는 낯빛 하나 안 바뀌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세 남매는 '다른 사람 마음을 쉽게 읽기'는 하되, 누구보다 '내 마음'은 제대로 못 읽곤 합니다. 뜻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 마음속이 훤히 보여서 그 마음을 살피다 보면, 어느새 '나는 무엇을 생각했더라?' 하면서 잊거나 지나칩니다. 내 삶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다른 사람 삶을 바라보면서 제 앞길을 제대로 못 가기 일쑤라고 할 만해요.

2권 겉그림.
 2권 겉그림.
ⓒ 삼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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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헤이와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물론 그 역시 잡다한 생각을 많이 하지만, 마음속엔 항상 봄바다처럼 잔잔하고 부드러운 색이 있다.' (45쪽)

'처음 만났을 땐 깜짝 놀랄 정도로 감탄했었지. 남자들은 다 그랬었으니까. 그래서 난 손에 넣을 수 없는 벼랑 위에 핀 꽃이라고 생각해 곧바로 단념했지. 파란 눈, 이런 색에도 여러 계열이 있지만, 이 녀석 눈은 따스한 바다 같은 부드러운 색이야.' (82쪽)

나는 아이들 마음을 읽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읽습니다. 눈빛뿐 아니라 몸짓으로도 읽습니다. 눈빛이랑 몸짓뿐 아니라 기운으로도 읽습니다.

아이들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어떤 마음인지 읽을 테지요. 입으로 말을 해서 아는 마음이 있고, 입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아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서로서로 마음을 못 읽기도 해요. 가까이 있는 곁님 마음을 못 읽는다든지, 곁님한테 내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웃이나 동무한테 내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기도 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어떤 마음인가를 못 읽기도 합니다.

"한번 제대로 마음을 전해 보는 게 좋지 않겠어?" "이, 이제 와서 뭘, 미츠마사 오빠한텐 약혼자도 있다며?" "그러니까, 한번 제대로 차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잖아." "잠깐만, 차이기 위해 고백하란 거야?" (134쪽)

마음을 읽는 사이라면, 그야말로 한마음이 되어 살아가는 사이입니다. 마음을 못 읽는 사이라면, 그야말로 딴 생각으로 딴 자리에 있는 사이입니다. 한 집에서 산다고 해서 한마음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몸에 깃든 다른 넋인 목숨이라 하더라도 오직 사랑으로 기쁘게 하나되는 마음일 때에 비로소 한마음이라고 합니다. 즐겁게 웃을 때에 한마음이 되고, 스스럼없이 노래할 때에 한마음이 되어요.

즐겁게 웃지 못하기에 한마음이 되는 길을 가려고 말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스스럼없이 노래하면서 함께 기쁜 살림을 지으려고 애써 글도 쓰고 말도 섞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려고 해요.

두 가지 마음이 흐르는 잔잔한 바다라고 할까요. 내 마음이 흐르는 바다와 네 마음이 흐르는 바다가 만난다고 할까요. 찬바다만 흐르는 곳이나 더운바다만 흐르는 곳보다는, 찬바다와 더운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바닷물고기가 훨씬 많이 산다고 해요. 한쪽 마음만 흐르는 곳보다는 두 마음이 서로 사이좋게 얼크러지면서 어깨동무하는 곳에 시나브로 사랑이 흘러서 아름다운 삶자리가 되는구나 싶어요.

삶을 노래하면서 한마음으로 지내고, 삶을 꿈꾸면서 한마음으로 사귑니다. 삶을 빛내면서 한마음으로 손을 맞잡고, 삶을 새롭게 일구면서 한마음으로 웃습니다.

덧붙이는 글 | <코우다이 家 사람들 1>(모리모토 코즈에코 글·그림 /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 펴냄 / 2015.4.16. / 7000원)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코우다이家 사람들 1

모리모토 코즈에코 지음,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만화)(2015)


태그:#코우다이 家 사람들, #모리모토 코즈에코, #만화읽기, #만화책, #마음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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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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