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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버스를 탈 때 여러 부류의 버스기사를 만납니다. 승객을 짐짝 취급하듯이 급정거와 급출발을 반복하면서 운전자 중심으로 승객을 철저히 대상화하는 기사를 만나면 기분이 언짢습니다. 반대로 부드럽게 정차하고, 길을 모르는 승객의 질문에 하차할 정류장을 기억해 두었다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기사를 만나면 감동을 받습니다.

저는 아침에 전철을 타고 출근합니다. 전철 기관사의 수고로 편하고 빠르게 학교에 옵니다. 마음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을 신성시하였던 칼뱅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노동은 신성한 것이고, 루터의 표현대로 교직은 성직만큼 성스러운 직업입니다. 성스러움과 노동이 겹치는 직업이 교직입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지만 제가 보기에 교직만큼 매력적인 직업도 없습니다.

괴물(?) 같은 아이들과 부대끼다보면 교직이 무슨 성직이고 천직이냐고 반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교육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이 가치를 지향하고 꿈을 간직한 채 선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분명 가르치는 직업은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거기다 피천득 선생의 표현대로 매달 돈까지 꼬박꼬박 쥐어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유형, 무형의 상품을 만들어 내는 일도 소중하지만 사람을 만들어 내는 일은 더욱 소중한 노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할 때 아이들도 진심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곤고하고 고단한 일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혼탁한 연못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이 교육은 정교하고 치밀한 예술이자 세상을 바꾸는 크나큰 사회적 활동입니다.

한국사회 청량제였던 '전교조의 탄생'

1989년 5월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약칭)의 탄생은 혼탁한 한국사회에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지금도 그 역할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1999년 1만 명 조합원에서 합법화 이후 조합원 수가 급증하여 2003년 10만 조합원 시대를 맞으며 정점을 찍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교조 운동노선에 회의를 느낀 선생님들이 실망하고 탈퇴하기 시작하여 4만 명 이상이 이탈하였습니다. 2015년 현재 전교조 조합원은 6만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운동에 대한 저의 생각과 성찰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전교조의 순수성과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젊음을 다 쏟아 붓고 심지어 건강까지 해쳐가면서 교육노동운동에 매진하는 교육운동가들을 적지 않게 만납니다. 그들의 선한 눈빛과 씩- 웃는 해맑은 웃음을 보면 전교조는 관제언론의 비난처럼 초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물론 운동하는 이들 중에서도 출세를 욕망하는 자들이 있고, 그들이 운동 권력을 잡았을 때 조직이 관료화되고 권위주의적인 집단으로 변질되는 것은 노동운동의 역사, 나아가 진보운동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입니다. 아직 전교조는 어느 운동 집단, 어느 NGO보다 건강하고 도덕적입니다.

전교조가 잘못된 운동노선을 걸을 때 조직을 탓하면서 이탈하기보다 내부에서 비판하고 견제하며 스스로 성찰하도록 견인해야 합니다. 전교조의 실체는 전교조 위원장이나 몇몇 운동 명망가들이 아닙니다. 전교조의 실체는 부박한 학교현장에서 민족교육, 민주교육, 생태교육, 전인교육, 노동교육, 인권교육, 평화교육의 꽃을 피우며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숱한 무명의 교사들입니다.

작은 생각의 차이, 상처와 모순을 넘어서서 함께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좀 더 인간적인 교육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급 당 학생 수를 감축시키는 등 열악한 교육환경을 변화시킬 때 동시대를 살아가는 교사로서 혼신을 다할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아이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인간성을 갉아먹는 교육모순을 폭로하고 해체시키는 일은 때론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OECD 청소년 행복지수 꼴찌, 어린이 행복지수 꼴찌인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음은 모든 교사들의 절절한 심정일 것입니다.

전교조 조합원 중에는 새누리당 지지자도 있고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도 있습니다. 나아가 정의당 지지자, 노동당 지지자, 녹색당 지지자, 심지어 무당파도 있고 시민운동에만 열중인 교사, 학술운동에 분투하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정말 다양하고, 저마다 정치적 색깔도 달라서 나름 충돌하기도 하지만 상호 존중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노동조합에 가입한 교사들이 하나같이 공통된 꿈이 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학급당 학생 수가 20명 이하로 줄어들고 수업시수가 12시간(고교) - 15시간(중학교) - 18시간(초등학교)으로 근무환경이 최적화되는 꿈, 나아가 오전 3시간 교실 수업과 오후에 특기적성을 살리는 특별활동으로 하루 5시간만 학습하고, 6시간 근무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좀 더 구석구석 민주화되고 인권과 생태 가치가 존중되며 타인을 배려하는 관용이 넘치는 사회를 꿈꿉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약간의 용기와 희생으로 전교조에 가입합니다.

전교조는 상근자, 전임자 100명과 지회-분회 활동가 1만 명 정도로, 생명력을 갖는 운동단체입니다. 나머지 5만 여명 선생님들이 조합비를 내면서 정신적으로 지지하고 든든한 실체로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마치 한국사회 최고의 NGO인 참여연대가 50명 상근자와 1만 3천 명 자동이체 일반회원으로 유지가 되듯이…. 저도 회비만 내는 참여연대 회원이지만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2000년부터 기초노령수당을 법제화시키기 위해 입법 활동을 하였고 그것이 토대가 되어 지금 65세 노인들이 노령수당을 지급받습니다. 정부가 알아서 해준 게 아닙니다. 역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서 보듯이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핸드폰 기본료 인하 운동, 작은 권리 찾기 운동, 삼성 비자금 등 재벌개혁운동, 자격 미달 국회의원 총선에서 떨어뜨리는 낙선 운동 등 그 빛나는 활동성과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언젠가 시민운동 10년차 된 40대 초반 활동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생계는 유지가 되느냐고. 2000년대 초중반 언론 운동하는 <한겨레> 기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임금으로 버틴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여력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육신의 힘이 넘치면 그 힘으로, 머리가 뛰어나면 그 머리로,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약간의 회비로 세상을 말갛게 씻어내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는 운동단체나 NGO에 힘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젊은 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나는 이유

학교마다 분회장 세우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지회장 역시 3D 업종이 된 지 오래입니다. 젊은 활동가 선생님들이 지금처럼 2년만 더 지회장, 분회장 하면 이 글을 쓰는 저보다 더 늙고 추레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젊은 활동가가 진이 빠지고 어느 날 가정이 흐트러져 있는 풍경을 젊은 날 저는 적지 않게 보아왔습니다. 운동의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 중에는 이혼을 경험한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과장이 아닙니다.

한 때 열정을 바친 활동가들이 2~3년 지나면 모두 나가떨어집니다. 집회 현장에서 얼굴조차 볼 수 없습니다. 최저 생계비에 한참 못 미치는 낮은 월급으로 버티다가 2~3년 뒤 나가떨어지는 시민운동단체 간사 분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삶이 고단하고 내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데 어떻게 사회를 생각하고 운동에 관심을 갖겠습니까?

노동조합이 선진국처럼 유니온 숍 제도(취업 후 자동으로 노동조합에 가입되는 제도)라면 조직력이 막강하여 정부 스스로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노동조합이나 시민운동 단체를 정책의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입니다. 노동조합이나 NGO의 목소리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기에 오늘날 선진국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 10% 정도입니다. 교사들의 노동조합인 전교조는 20% 정도입니다. 자본의 힘이 노동의 힘을 압도하는 국가입니다. 그런 탓에 노동운동을 삐딱한 시선으로 보고 불온시합니다. 이런 취약한 현실 속에서 활동가들은 지치고, 정치인들은 자본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더 살기 팍팍하고 힘든 세상을 물려줄 것입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교사는 어느 정도 교육운동가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의 선한 성품을 길러내고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위에 아이들을 둘러싼 교육모순을 이해하고, 거대한 모순의 실체를 해소하려는 사회적 노력 또한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반대 활동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한 분 두 분 전교조에 가입하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87년 6월 항쟁으로 5공 정권을 붕괴시켰을 때 그 환희와 맞먹는 기쁨을 느낍니다. 칸트의 고백처럼 밤하늘에 빛나는 별! 내 마음 속에 빛나는 도덕률처럼 우리는 오늘의 시대 어느 정도 의무의식을 간직한 채 살아가야겠습니다. 선생님의 작은 용기와 참여가 세상을 좀 더 말갛고 정의롭게 바꾸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태그:#노동조합, #전교조, #교과서 국정제, #교육운동, #시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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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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