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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개 매체 20여 명의 기자들과 문화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만든 비정규직 특별잡지 <꿀잠> 표지.
 10여개 매체 20여 명의 기자들과 문화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만든 비정규직 특별잡지 <꿀잠> 표지.
ⓒ <꿀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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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이 잡지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잡지 한 번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곧 환갑에 다다르는 당신은 평생토록 일만 했지요. 그런 당신에게 이 잡지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전쟁 직후 전라남도 보성의 한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지금도 서울에서 버스 타고 5시간 가까이 달려야 하는 먼 곳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갔습니다. 언니의 소개로 서울 천호동의 건빵공장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상경했던 언니는 모나미 볼펜공장에 넣어 줄 테니까 여기서 잠시 일하라고 했죠. 그때 공장 주변은 논밭이었다고 했습니다.

공장에서 건빵을 담아 봉지에 넣는 일을 했습니다. 그 일이 힘들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 서러웠을까요. 하루만에 "엄마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 다시 남도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전라남도의 섬 곳곳을 찾아다니며 옷을 파는 보따리 장수였습니다. 당신은 어머니를 돕기도 했고, 고향에서 조카들을 맡아 키우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대 중반의 꽃다운 나이에 동향의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곧 부산으로 이주했고,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참 가난했던 당신은 그 뒤로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두 갓난아이를 방 한 편에 두고 당신은 낚시 바늘을 꿰는 부업을 했습니다. 주변 쌀가게에 아이들을 맡기고 일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는 쭉 재봉틀로 밥벌이를 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서울에서도 쉬지 못했습니다. 반지하방에서 살며 열심히 일했지만, 그래도 늘 가난했습니다. 아이들 학원도 제대로 보내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당신의 아들에게 "그때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라고 합니다. 

당신의 남편이 'IMF 외환위기' 때 실직하자, 두 사람은 장사를 선택했습니다. 호프집을 하다 망했고, 이어 노래방을 했습니다. 잘 될 때도 있었지만, 어려운 때가 더 많았습니다.

두 아이를 결혼시키고 난 뒤, 당신은 다시 일을 구했습니다. 황혼을 맞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건물 청소뿐이었습니다. 파견·용역회사를 통해 들어갔습니다. 월급 120만 원 남짓의 비정규직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남편 역시 건물 경비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당신은 일을 하면서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단기 계약서를 썼는데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까." 파견·용역회사가 직원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직원들을 괴롭혀 퇴사하도록 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였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답을 주는 이는 없습니다. 당신의 아들에게도 하소연했지만, 그는 한쪽으로 흘려들은 것 같습니다.

비단 당신만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임금을 받고 생활하는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파견법을 밀어붙인다는데, 그렇게 되면 비정규직은 더욱 늘어나겠지요.

그래서 이 잡지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제로 한 특별잡지로, 이름은 <꿀잠>입니다. 10여 개 매체 소속 20여 명의 기자들이 모였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 일을 하는 문화예술인들도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힘을 모아 104쪽짜리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가 맞닥뜨린 현실을 보여주고, 당신은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잡지 판매 수익금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을 짓는 데 필요한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이 집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맘 편히 쉬고 연대하는 안식처가 될 겁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기차역 주변에 작은 단독주택을 매입해 꾸밀 예정입니다. 이 집을 짓기 위해서는 10억 원이 필요한데, 지금까지 절반가량 모았습니다. 많은 이들의 마음이 움직인 덕분입니다.

꿀잠은 당신의 안식처이기도 하고, 당신을 위한 잡지이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무심했던 당신의 아들도 이 잡지를 만드는 데 참여했습니다. 이번 추석, 이 잡지를 들고 당신에게 갑니다. "당신은 참 열심히 일했고,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을 하겠다고 합니다.

아들은 당신에게 이 잡지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의 어머니입니다.

비정규직 특별잡지 <꿀잠>은 어떻게 구입하나요?


10부 이상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웹사이트에서, 10부 미만은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문의하고 주문할 수 있다. 가격은 5000원이다. 지난 5일 발행 후 하루 만에 선판매분을 합쳐 1쇄 1만 부가 대부분 팔렸다. 곧 2쇄를 찍을 예정이다.

이 잡지는 전종휘 <한겨레> 기자가 편집책임을 맡았다. 김지환(경향신문), 구은회·제정남(매일노동뉴스), 이하늬(미디어오늘), 오세진(서울신문), 선대식(오마이뉴스), 최하얀·허환주(프레시안), 김민경·박태우·정은주(한겨레), 장재진(한국일보) 기자가 기사를 썼다. 노순택·정택용(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모임) 작가와 박승화(한겨레21) 기자가 사진을 맡았다. 김선식·신윤동욱·황예랑(한겨레21) 기자가 편집을, 장광석·손정란·박민서(디자인주)씨가 디자인을, 유홍상(한겨레) 부장이 사진리터치 작업을 담당했다. 잡지 기획·광고·판매는 송경동·박점규·오진호(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가 맡았다.



태그:#비정규직 특별잡지 꿀잠, #꿀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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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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